기획①총파업 트라우마 현재진행형...파업 소리만 들어도 PTSD
의사부족 지역의료 현실 체감 위해 지방행 파격 선택하기도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지역의사제도 도입 등 의사증원. 불법의료 근절'
지난 2일 보건의료인력 파업 5시간 전에 극적 타결했다는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합의문에 들어있던 내용이다.
꼭 1년 전인 2020년 9월 4일, 대한의사협회와 복지부가 합의했던 내용과는 반대다. 당시 복지부는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협과 협의하기로 약속했다.
젊은의사들의 총파업으로 만들어진 합의문의 결과를 뒤집는 내용이 1년 만에 다시 등장한 셈이다. 정부와 '합의'를 하기 위해 젊은의사와 의대생은 병원을 떠나 길거리고 나왔고, 보건의료노조는 파업전 합의를 끌어냈다는 차이가 있겠다.
총파업 후 1년이 지났지만 젊은의사들은 여전히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9.4 의정합의 이후 오히려 젊은의사들의 방황은 시작됐다. 구심점이었던 조직은 분열됐고, 현실에 염증을 느낀 젊은의사들은 뒤돌아섰다.
지난해 파업을 주도했던 대한전공의협의회 서연주 당시 부회장은 노정 합의를 지켜본 후 "너무 착잡하다"라며 "공공의대 설립, 의사증원 문제는 코로나19 안정화 이후에 논의하기로 했는데 노조와의 합의문에 넣었다는 것 자체가 의사 직군을 패스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도 젊은의사들은 지난해 총파업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의사 단체에 남아서 목소리를 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에 계속하고 있지만 노정합의를 접하고 지난해 생각이 특히 많이 났다"라고 털어놨다.
파업 후 1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
지난해 젊은의사 총파업에 동참했던 한 전공의는 1년 사이 전문의 자격을 따고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내과 전임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파업이후 염세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파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불러일으킬 정도다. 노정 합의는 특히 내용 자체가 지난해 그렇게 반대했던 내용들이 있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지난해 파업으로 많은 사람들의 진로나 인생이 조금씩 바뀐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반적으로 의료현안, 사회적 문제에 무관심해졌다"라며 "앞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두려워졌다. 진보 성향으로 현 정권을 지지했었는데 권력의 실체를 접하고 아예 돌아섰다"라고 말했다.
파업 이후 실제로 의료취약지로 달려가는 파격 선택을 하는 젊은의사도 있었다. 당시 비대위에서 파업을 주도했던 일원 중 하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전라남도 끝으로 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가 연고도 없는 곳에서 의사가 부족하다는 의료취약지 현실을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 지원한 것.
영상의학과 전문의인 K씨가 선택한 병원은 1년이 넘도록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뽑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보다 연봉도 더 많았고 관사까지 제공해 주는 조건이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이 전문의는 "의료소외 지역은 생각보다 인력문제를 떠나서 인프라 자체가 부족하다"라며 "의사인력 배치가 확실히 문제이며 인프라 부족을 몸소 느끼고 있다. 의사들이 지방, 그것도 작은 소도시는 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의사 증원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절대 아니다"라며 "인력 증원을 얘기할 때는 납득할 수 있는 근거와 프로세스를 같이 제시해야 하는데 모두 단편적이다. 노조와 정부의 합의문만 봐도 설득력이 전혀 없다"라고 꼬집었다.
의대생에게도 또렷한 기억 "장래에 대한 고민 커졌다"
예비의사 신분으로 휴학, 국시 거부까지 했던 의대생들도 지난해 여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휴학계를 냈던 가천의대 학생은 "노정 합의를 접하고 지난해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라며 "합의 속도 자체가 너무 차이 났다. 우리는 파업도 하고 동맹휴학도 하며 몇 달을 끌었는데 파업 시작 5시간 전에 합의문을 발표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파업 이후 장래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라며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면 굳이 한국에 남아서 의사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든다. 회의감이나 무기력감이 많이 커졌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해 빗속 1인 시위로 눈길을 끌었던 차의학전문대학원 최재호 학생도 "파업 이후 의대생은 당장 국시 문제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완전 멘붕 상태였다"라며 "의대생을 이끌던 조직이 분열되고 책임을 서로 전가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직도 그 후유증은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일 보건의료인력 파업 5시간 전에 극적 타결했다는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합의문에 들어있던 내용이다.
꼭 1년 전인 2020년 9월 4일, 대한의사협회와 복지부가 합의했던 내용과는 반대다. 당시 복지부는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협과 협의하기로 약속했다.
젊은의사들의 총파업으로 만들어진 합의문의 결과를 뒤집는 내용이 1년 만에 다시 등장한 셈이다. 정부와 '합의'를 하기 위해 젊은의사와 의대생은 병원을 떠나 길거리고 나왔고, 보건의료노조는 파업전 합의를 끌어냈다는 차이가 있겠다.
총파업 후 1년이 지났지만 젊은의사들은 여전히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9.4 의정합의 이후 오히려 젊은의사들의 방황은 시작됐다. 구심점이었던 조직은 분열됐고, 현실에 염증을 느낀 젊은의사들은 뒤돌아섰다.
지난해 파업을 주도했던 대한전공의협의회 서연주 당시 부회장은 노정 합의를 지켜본 후 "너무 착잡하다"라며 "공공의대 설립, 의사증원 문제는 코로나19 안정화 이후에 논의하기로 했는데 노조와의 합의문에 넣었다는 것 자체가 의사 직군을 패스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도 젊은의사들은 지난해 총파업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의사 단체에 남아서 목소리를 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에 계속하고 있지만 노정합의를 접하고 지난해 생각이 특히 많이 났다"라고 털어놨다.
파업 후 1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
지난해 젊은의사 총파업에 동참했던 한 전공의는 1년 사이 전문의 자격을 따고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내과 전임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파업이후 염세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파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불러일으킬 정도다. 노정 합의는 특히 내용 자체가 지난해 그렇게 반대했던 내용들이 있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지난해 파업으로 많은 사람들의 진로나 인생이 조금씩 바뀐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반적으로 의료현안, 사회적 문제에 무관심해졌다"라며 "앞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두려워졌다. 진보 성향으로 현 정권을 지지했었는데 권력의 실체를 접하고 아예 돌아섰다"라고 말했다.
파업 이후 실제로 의료취약지로 달려가는 파격 선택을 하는 젊은의사도 있었다. 당시 비대위에서 파업을 주도했던 일원 중 하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전라남도 끝으로 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가 연고도 없는 곳에서 의사가 부족하다는 의료취약지 현실을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 지원한 것.
영상의학과 전문의인 K씨가 선택한 병원은 1년이 넘도록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뽑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보다 연봉도 더 많았고 관사까지 제공해 주는 조건이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이 전문의는 "의료소외 지역은 생각보다 인력문제를 떠나서 인프라 자체가 부족하다"라며 "의사인력 배치가 확실히 문제이며 인프라 부족을 몸소 느끼고 있다. 의사들이 지방, 그것도 작은 소도시는 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의사 증원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절대 아니다"라며 "인력 증원을 얘기할 때는 납득할 수 있는 근거와 프로세스를 같이 제시해야 하는데 모두 단편적이다. 노조와 정부의 합의문만 봐도 설득력이 전혀 없다"라고 꼬집었다.
의대생에게도 또렷한 기억 "장래에 대한 고민 커졌다"
예비의사 신분으로 휴학, 국시 거부까지 했던 의대생들도 지난해 여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휴학계를 냈던 가천의대 학생은 "노정 합의를 접하고 지난해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라며 "합의 속도 자체가 너무 차이 났다. 우리는 파업도 하고 동맹휴학도 하며 몇 달을 끌었는데 파업 시작 5시간 전에 합의문을 발표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파업 이후 장래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라며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면 굳이 한국에 남아서 의사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든다. 회의감이나 무기력감이 많이 커졌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해 빗속 1인 시위로 눈길을 끌었던 차의학전문대학원 최재호 학생도 "파업 이후 의대생은 당장 국시 문제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완전 멘붕 상태였다"라며 "의대생을 이끌던 조직이 분열되고 책임을 서로 전가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직도 그 후유증은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