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채영 학생(가천의대 본과 3학년)
의과대학 실습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 그 중에는 환자도 있고, 간호사 선생님도 있으며, 동료 학생도 있고 실습을 담당하시는 레지던트 선생님들과 교수님들도 계신다.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 환경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변화에 무뎌지곤 하지만, 가끔씩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퍼뜩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실습 케이스로 맡았던 환자분이 돌아가셨을 때였다. 날것 그대로의 죽음을 접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그분이 숨을 거두신 현장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의무 기록을 통해 그분이 돌아가시는 순간을 접하며 마치 그 곳에 함께 있었던 것처럼 생생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은 생경했다. 그분의 질병으로 케이스 발표를 준비하며, 마치 그 분께서 생명을 바쳐 내게 지식을 남겨주고 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느때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발표를 수정했다.
두 번째는 정신과 실습을 돌고 있을 때였다. 사실 실습을 돌면서 환자들과 얘기할 기회는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COVID-19 감염을 우려해 실습 학생의 출입이 제한되는 병동이 몇 군데 있기 때문이다. 환자를 마주할 때는 양해를 구하고 환자분을 찾아 뵈어 history taking(환자의 질병과 관련한 과거력을 확인하는 과정)을 하거나, 교수님의 뒤를 따라 회진을 돌 때를 제외하고는 많지 않다.
정신과 실습은 달랐다. 폐쇄 병동 안에 일정 시간동안 들어가서 입원 환자들과 얘기하고 놀잇거리를 찾아보고 함께 TV를 본다. 그러다 보면 남들보다 조금 더 자주 얘기하는 환자가 생기기 마련인데, 나의 경우에는 어린 여자 환자였다. 나보다도 나이가 어린 그 환자를 보며 처음부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폐쇄 병동이 답답하게 느껴질까, 하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그 나이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신변잡기적 얘기들 뿐이었지만, 실습이 거듭되고 얘기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환자가 내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이 느껴졌다. 실습이 끝날 때 즈음에는 본인의 과거력에 대해 매우 진솔하게 내게 털어놓으며, 수줍게 장래희망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였다. 그때 나는 실습을 돌며 두 번째로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 있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이다.
마지막은 산부인과 실습을 돌때였다. 운좋게도(?) 첫 날부터 분만을 참관할 기회가 주어진 나는, 가족 분만실에 들어가 분만을 진행하는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을 돕게 되었다. 산모의 진통이 이어지고, 분만실에 있던 교수님과 간호사 선생님들 모두 입을 모아 산모를 응원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힘 주세요, 아이 머리가 보여요. 아이가 완전히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등허리에 소름이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 손에 땀이 흥건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산모가 힘을 주고 있을 때 나도 무의식적으로 같이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생명의 탄생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깨달았다.
정현종 시인의 이라는 시를 좋아한다. 짧은 두 줄로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 소외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시인데, 그 시를 읽으면 적막에 잠겨 서로 먼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병원 현장에서 본 사람들은 달랐다. 비록 스쳐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사람들은 뜨겁고 강렬한 감정을 공유하곤 한다. 의사라는 직업의 소중함은 바로 그러한 강렬한 감정의 순간에 함께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시작과 끝, 기쁨과 슬픔의 순간에 의사는 옆에 서 있다. 반 년간 실습을 돌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내게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