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신장실 세부기준안 반대…인력·시설 강화 사실상 백지화 요구
투석 전문의·병상 면적 확대 '불가'…복지부 "의료단체와 지속 협의"
보건당국이 혈액투석 질 관리 제고 차원에서 추진 중인 인공신장실 인력 및 설치기준 권고안이 의료단체의 강한 반발로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의료단체는 신장내과 전문의 등으로 제한된 인력기준과 병상 면적 확대 등 강화된 기준안에 심각한 우려감을 표시해 정부와 협의 과정에 난항이 예상된다.
3일 메디칼타임즈 취재결과, 의사협회와 병원협회는 최근 보건복지부의 '인공신장실 설치 및 운영 세부기준 권고안'(초안) 의견 제출을 통해 사실상 전면 백지화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해당 권고안을 마련하고 의료단체 의견수렴을 거쳐 올해 초 시행을 목표로 했다.
의료단체가 반대하는 이유는 의료현장과 괴리감이다.
복지부 권고안 초안은 인력기준과 시설, 운영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장내과·투석 수련 의사로 '제한'…병협 "진료 불평등과 갈등 유발"
의료단체는 의사 인력기준에 '수용 불가' 입장을 개진했다.
권고안에서 인공신장실 의사 기준을 신장 분야 분과 전문의 그리고 내과와 소아청소년 전문의 취득 후 혈액투석 분야를 1년 이상 수련한 의사 등으로 규정했다.
혈액투석 의사 자격을 진료과와 무관한 의사에서 신장내과 전문의 또는 내과와 소아청소년과 혈액투석 수련 의사로 제한한 셈이다.
병원협회는 "신장내과 분과 전문의 배출 규모와 양성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객관적 검토를 우선해야 한다면서 "신장내과 전공 의사 수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투석환자 진료에 불평등과 기관 간 갈등 유발 소지가 있다"며 신중한 검토를 요구했다.
협회는 "내과 전문의 중 투석 진료를 하고 있는 숙련된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신장내과로 국한된 투석의사 자격에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의료단체는 강화된 시설기준 기준 '삭제'를 요청했다.
권고안에 담긴 인공신장실 시설 기준은 병상 1개당 면적을 최소 6제곱미터 이상으로 규정했으며, 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별도 단위 독립과 비상구 확보 그리고 종합병원 이상은 1개 이상 격리실 설치 등을 의무기준으로 했다.
운영기준의 경우, 응급처지를 위한 후두경을 비롯해 엠부백(마스크 포함), 산소 및 산소 공급 장치, 흡인기, 심전도 감시 장치, 심실제세동기를 갖추도록 명시했다.
병원협회는 "인공신장실 시설 현황 파악 후 적정수준 시설기준을 권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의료법 시설기준보다 높은 수준의 시설기준을 권하는 것은 규제"라고 비판했다.
■의사협회 "투석 의사 자격 제한과 시설 기준 강화 수용 불가"
의사협회 입장도 병원협회와 대동소이하다.
의사협회 박수현 대변인은 "인공신장실 권고안을 놓고 토의를 벌인 결과 부정적 의견이 강했다. 신장내과 의사 인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투석의사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또한 중소 병의원을 감안하지 않은 일률적인 시설 기준 강화도 수용하기 힘들다"며 권고안의 전면 수정을 주장했다.
이번 권고안은 신장학회와 복지부 협의에 따른 결과물로 알려졌다.
2018년 기준, 외래에서 혈액투석을 시행한 의료기관은 783개소로 상급종합병원 42개소, 종합병원 221개소, 병원 85개소, 요양병원 55개소, 의원급 380개소 등이다.
이중 신장내과 전문의는 75%에 그치고 있다. 병원과 요양병원의 경우, 52.3%와 39.7%로 집계됐다.
신장학회 측은 미국과 독일, 싱가포르 등 선진국 예를 들며 투석환자 치료와 질 관리를 위해 혈액투석 의사 자격을 신장내과 전문의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현장 반응은 차갑다.
■병원계, 코로나 재난 사태 불구 신장내과 못 구해 "지방 병원 의사난 가중"
코로나 전담병원을 운영 중인 수도권 중소병원 병원장은 "신종 감염병 재난상황임에도 신장내과 전문의를 구할 수 없는데 평시에는 오죽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신장학회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나 의료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기전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협회 이성규 정책위원장은 "투석치료 질 관리를 위해 인력과 시설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문제는 의료현장과 정책의 괴리감"이라면서 "지방 병원의 의사 인력난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복지부는 의료단체 반발을 의식해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의료기관정책과 공무원은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모두 인공신장실 권고안에 많은 문제점을 개진했다. 인력과 시설 기준 등 일정부분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인공신장실 실태조사와 의료단체 협의 등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방향으로 권고안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의료단체가 인공신장실 권고안 임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반대하는 배경에는 현재의 권고안이 향후 고시 지침으로 강제화 된 사례를 수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