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기기 산업 발전과 병원의 역할

우세준 분당서울 의료기기연구개발센터장
발행날짜: 2022-05-30 12:04:35
  • 우세준 분당서울대병원 의료기기연구개발센터장

전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의료기술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 첨단기술의 발달에 따라 환자 중심의 예방, 맞춤형 치료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추세이다.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며 전방위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약품뿐 아니라 의료기기산업도 지속적인 성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의료기기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 65억달러(7.8조원)로,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규모(4,094억달러)의 1.59%를 차지해 세계시장 10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연평균 성장률의 경우 10.34%로 세계 평균인 5%를 상회하는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국내 기술 수준은 세계 1위 의료기기 시장인 미국 대비 3.5년의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 의료기기 시장은 2019년 기준 수입품이 전체의 62.1%로 수입의존도가 높으며, 특히 매출규모 10억원 미만의 소규모 기업이 전체 의료기기 제조업체의 80%로 국내 의료기기 총생산액의 5.3%를 차지하는 실정이다.

규모가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연구개발, 임상, 인허가, 마케팅 역량이 부족해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국내 의료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등재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 기술보다 현저한 개선을 입증해야만 혁신성을 인정받아 등재가 승인된다. 이는 영세한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에게는 높은 장벽으로 존재하게 된다.

많은 기업들이 국내 규제기관의 기업 비친화적 대응으로 인허가에 있어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한다. 덧붙여 우수한 국산 의료기기 제품도 국내 의료진의 외면으로 인지도와 사용경험이 부족한 상황이다.

사용경험을 잃다 보니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경쟁력이 저하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국내 대형병원 의료진 287명을 대상으로 국산의료기기 사용경험을 조사한 결과, 44%는 국산 의료기기 데모제품의 사용경험이 전무할 정도로 국산 의료기기들이 국내 병원과 의료진에게 외면 받는 것이 현실이다.

의료기기산업은 일반적인 공산품과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 산업이며 정부의 의료정책 및 관리제도와 밀접히 관련된 규제산업이다. 또한 연구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의료기기산업의 발전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의료기기 기업과 병원, 그리고 정부가 협력하여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육성책을 마련해야 한다.

영세한 국내 의료기기의 경우 사업 초기 단계에 내수시장의 활성화가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진출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 인공지능 등 새로운 융합의료기술의 경우 아직 글로벌 지배기업이 없기 때문에 우리 의료기기 기술로 시장을 선도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의료기기의 개발과 인허가, 판매의 모든 부분에서 병원 의료진과의 협업과 피드백은 필수적이다. 의료기기의 최종 사용자는 결국 의료진이기 때문에 의료진을 배제한 기술 개발은 성공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해외 의료기기 기업들이 병원, 의료진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이유다. 과거에는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이 병원과의 협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현재는 상황이 많이 좋아져 주요 병원들 안에도 의료기기 개발에 관심이 있는 의료진, 부서가 마련된 상황이다.

최근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부가 병원을 통해 시도하는 지원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실증(의료현장 실제 사용) 지원이다. 의료기기 기업들의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의료기기를 개발해 인허가를 받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의료진들의 외면으로 실제 시장에서 판매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분당서울대병원을 포함한 주요 병원에서는 의료기기실증지원센터를 통해 의료기기가 병원에서 실제로 사용될 기회를 주고, 의료진의 피드백을 회사로 전달해 의료기기를 개선, 판매로 이어지게 하는 선순환의 프로세스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모든 병원에 실증센터가 활성화된 것은 아니어서 아직은 기회가 제한적이지만, 정부와 지자체에서 의료기기 실증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지원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므로 향후 기업과 병원의 실증 협력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증지원은 영세한 의료기기에도 도움이 되지만 혁신의료기기 기업에도 필수적이다. 디지털치료제나 인공지능 의료기기의 경우 아직 개발 초기단계로 의료기기의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이다. 효과의 검증 없이는 건강보험 등재가 어렵기 때문에 실사용을 확대하는 것이 해당 기업에 반드시 필요하며, 국가 경쟁력 강화로도 직결될 수 있다.

올해 인공지능기반 의료기기에 대한 보건복지부 실증지원 사업이 시작되면 국내 혁신의료기기 기업들에게 중요한 실증 기회를 제공해 기업들이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기대되는 상황이다.

두 번째는 교육훈련 및 시뮬레이션 지원이다. 해외 의료기기 기업들은 교육훈련과 시뮬레이션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의사들이 자회사의 기기로 의술교육을 받게 한다.

이렇게 교육을 받은 의료진은 해당 기업의 의료기기를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초기단계의 교육 때부터 국산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판매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올해 광역형 의료기기 교육훈련 사업이 수행될 예정으로, 사업을 통해 여러 국산 의료기기가 교육훈련에 활용된다면, 의료기기 홍보와 마케팅으로 확장돼 최종적으로 시장에서의 판매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다른 중요 과정으로 사용적합성을 들 수 있다. 사용적합성은 의약품에는 해당 사항이 없지만, 의료기기에는 필수적인 특성으로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사용자(의료진, 환자)가 의료기기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을 나타낸다.

과거 사용적합성은 인허가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된 사항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1~4등급의 모든 의료기기에서 사용적합성 시험보고서가 필수 사항이 됐다. 특히 의료기기 수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항목이기도 하다. 사용적합성 시험을 수행하는 시험자는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의료진이기 때문에 병원이 아닌 기관에서는 검사를 수행할 수가 없다.

분당서울대병원은 현재 보건복지부 지정 사용적합성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 KOLAS 인증을 받아 공인시험기관으로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 사용적합성을 수행하는 병원이 많지 않고 높은 전문성을 가진 병원은 소수이기 때문에 향후 급증하는 사용적합성 시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많은 병원들이 사용적합성 센터를 설립하고 시험을 수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용적합성 시험은 단순히 인허가를 위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시험을 수행하며 의료진이 경험한 피드백을 의료기기 개선사항에 반영한다면 의료기기의 효과와 안전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품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고령화 사회에서 의료기기산업은 높은 성장 가능성을 가진 중요 산업이다. 병원 의료진과 의료기기 기업 간 협력은 개발초기 단계부터 인허가, 실증, 판매 등 사업화 전단계에서 긴밀하게 이뤄져야 하며,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기기 산업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병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 나아가 규제 등 제도적인 개선 및 국가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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