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온교 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
최근 실손보험사들이 2019년 7월경 성분 논란으로 품목허가 취소된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에 관하여 제조사인 코오롱생명과학 뿐만 아니라 이를 처방하여 투약한 의료기관 총 126곳에 대해서도 채권자대위소송을 제기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와 의아함이 들었다.
실손보험사 주장에 따르면, 인보사는 법규를 위반한 의약품이므로 이를 사용하기로 한 의료기관과 환자 사이의 진료계약 역시 무효인바, 의료기관은 환자로부터 무효인 진료계약에 기하여 약제비용 및 진료비 상당의 법률상 원인 없는 이익을 얻었으므로 이를 부당이득으로서 환자에게 반환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에 따라 환자가 가지게 되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실손보험사들이 대신 행사(대위 청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논리는 채권자대위 소송의 성질상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채권자대위소송이 무엇인지 간략히 설명하자면, 채권자대위소송은 민법 제404조에 규정된 권리로서 '채권자(이 사건에서는 실손보험사)가 자기의 채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채무자(보험 가입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소송이다.
예를 들어 갑, 을, 병이 있을 때 갑은 을에게 대여금채권(피보전채권)을 가지고 있고, 을이 병에게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피대위채권)을 가지고 있다고 상정할 때, 갑이 책임재산이 부족한 을에 대한 대여금채권(피보전채권)을 집행하기 위해 먼저 을이 병에 대해 가지는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피대위채권)을 대신 행사하는 소송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채무자가 고의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 피보전채권의 집행을 방해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이다.
그런데 채권자가 위와 같은 채권자대위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들을 충족하여야 한다. ①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피보전채권의 존재) ②채무자에 대한 채권이 이행기에 있어야 하며(이행기의 도래) ③채권자가 자신의 채권을 보전하기 위해 채무자의 채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어야 하고(보전의 필요성) ④채무자가 제3채무자에 대해 채권을 갖고 있어야 하며(피대위채권의 존재) ⑤ 채무자가 스스로 이를 행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채무자의 권리불행사).
그러나 실손보험사의 인보사 소송에 있어서는 위 요건들 중 우선적으로 ③보전의 필요성을 구비했는지 여부가 매우 불분명하다.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지 않으면 채권자 자신의 권리를 충족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야 하는데, 특히 이 사건과 같이 피보전채권이 금전채권일 경우 채무자가 아무런 재산이 없는 무자력 상태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별 상황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실손보험사들이 대위하는 환자들이 모두 무자력 상태일지 여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다. 실손보험사들이 사전에 개별 환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재산명시신청을 한 것도 아닌데 과연 개별 환자들의 무자력 여부를 일일이 파악하고 있을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더불어 ① 피보전채권의 존재 여부와 ④피대위채권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도 매우 의심스럽다. 인보사는 당시 식약처로부터 정식 품목허가를 받고 사용 가능하도록 인증된 치료제였다. 따라서 의료기관이 이를 사용한 후 환자에게 그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당시에는 적법한 행위였다.
물론, 인보사는 이후 식약처에 의해 품목허가를 취소당하게 되었지만, 이는 법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수익적 행정행위(품목허가 처분)의 직권 취소에 해당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법적 안정성 내지 신뢰보호를 위해 장래에 대해서만 효력이 인정되고, 취소 이전 시점의 법률관계에 대해서는 소급효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인보사의 품목허가 처분 당시부터 취소될 때까지의 기간 동안 인보사의 품목허가는 유효했던 것이므로, 이를 사용하고자 했던 의료기관의 진료계약 역시 적법한 것으로서 이후에 발생한 품목허가 취소라는 사정때문에 별안간 무효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의료기관은 해당 시점을 기준으로 환자와의 적법한 진료계약에 따라 품목허가 된 약제를 사용했던 것이므로 환자에게 부당이득반환채무나 손해배상채무를 부담하지 않는 것이며(④ 피대위채권의 부존재), 실손보험사는 약관에 따라 국민건강보험법상 청구 가능한 법정비급여 진료행위 및 관련 약제비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므로, 환자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포함한 어떠한 권리조차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① 피보전채권의 부존재).
그렇기 때문에 실손보험사의 인보사 소제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권자대위소송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실손보험사들 역시 고문계약을 맺은 법무법인들로부터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이미 설명 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든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미 소송이 제기되었고, 이로 인하여 의료기관들에게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향후 실손보험사들이 패소할 운명에 처해져 있더라도 민사소송의 특성상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확정될 가능성이 높고, 그 기간 동안 의료기관들에게는 많은 물질적·정신적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혹은 법적인 무로 인해 조기에 합의하고자 하는 의료기관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번 합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 실손보험사에게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고, 이를 전례로 삼아 이후로도 제2, 제3의 인보사 사태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의료계는 이번 사태를 두고 단순히 개별 의료기관들의 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라도 보다 조직적·적극적인 자세로 단호히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