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연구소 20주년…수동적 역할 탈피 역량 키운다

발행날짜: 2022-08-18 05:30:00
  • 기존엔 정책 방어만 하던 의정연…"새 패러다임 제시"
    우봉식 "의료계도 책임 있어…효용적 정책 제안해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기존에 수동적으로 이뤄졌던 연구방식을 탈피,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틀어 귀추가 주목된다.

그동안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의사의 인력 공급, 근무환경, 수익 등 의사들의 권익 향상에 집중된 연구를 진행해왔다.

실제 10년 전인 2012년 이뤄진 의정연 연구를 보면 ▲의료관광 활성화 ▲의료사고 피해구제 ▲진찰료 산정 구조 개선 ▲OECD 수가 비교 ▲FTA에서의 의료계 영향력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로 인한 의료계 영향 ▲교육·진료·연구 만족도 조사 등이다.

이와 함께 한의사 등 타 직역의 영역침범에 대응할 근거를 마련하는 연구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 의료계 반발이 심한 정부 정책을 방어할 논리를 구축하는 연구가 병행됐다.

■당정대응 활발한 집행부에 대외적 자료 필요성 커져

의정연의 변화는 이번 집행부 들어서 대외적으로 활용할 범용성 높은 자료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이뤄졌다. 그동안은 의협이 먼저 제안한 주제를 의정연에서 연구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젠 의정연이 자체적으로 연구주제를 설정해 먼저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의정연 우봉식 소장은 "현안에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거 의정연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연구에 치중된 경향이 있었다"며 "하지만 의정연은 의협이 정부 정책을 끌고 갈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곳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방어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역할이 아니라, 정책의 허점을 보완한 대안 제시로 상황을 주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의정연은 향후 핵심 연구과제로 초고령 사회 대비와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꼽았다. 현재 우리나라 커뮤니티케어는 보건의료가 빠진 채 시행돼 반쪽짜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약 정책 수립 당시 의료계가 먼저 나서 방향성을 제시했다면 보다 나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게 의정연의 판단이다.

■"수동적인 반대는 그만…먼저 대안 제시해 이끌어야"

의정연은 그동안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설계 없이 단기적인 논의로 끝나는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같은 문제가 계속된 것엔 의료계 책임도 있다고 봤다.

일례로 회복기 재활 수가를 만든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제도처럼 의료계가 먼저 명분이 있고 국민 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면 정부 역시 반대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

우 소장은 "그동안 의료전달체계의 정의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정부의 잘못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의료계가 이를 좋은 방향을 끌고 갈 수 있는 선제적인 제안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 관련해 문제가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연구를 진행했다"며 "선진국 사례 등 실질적인 데이터 소스를 토대로 우리나라에 맞는 정책을 만들었으며 이를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타 직역의 영역침범 대응이나 정책 방어를 위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일례로 간호법으로 인한 범의료계와 간호계 대립이 심했던 당시 대한간호사협회의 주장을 방어하기 위한 연구가 있었다.

당시 간협은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에만 간호법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의정연은 38개국 의료법을 전수조사해 11개 국가에만 간호법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회원 권익 증진을 위한 ▲의료법 개정 ▲건강보험제도 연구 ▲의사표준근로계약서 개발 ▲평생교육 계획 수립 등의 중장기 목표도 제시했다.

■운영기준 개정해 방향성 유지…역량 강화 로드맵 제시

의정연은 이 같은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 운영 및 평가 기준을 전면 개정했다. 기존엔 규정하지 않았던 연구사업지침을 보수하고 새로운 연구과제 발굴을 위해 직원 평가 기준 및 규정을 손봤다.

외부수탁연구를 활성화한 것도 큰 변화다. 의협이 수탁한 연구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연구를 병행해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가용예산을 마련해 의협 회비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연구소 규모를 확장한다는 목표다.

연구역량 강화를 위해 산하에 임상연구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연구성과물 홍보 및 타 연구기관과의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또 향후 빅데이터실, 통합정보 시스템, 통계 패키지 등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마지막으로 우 소장은 "본 연구소의 방점은 중장기 연구에 있다. 현재보단 5년, 10년 후 어떤 현상이 의료계에 나타날 것인지 예측하고 그 방향에 맞는 기초 연구를 많이 해놓는 것"이라며 당장 필요한 연구도 있겠지만 미리 쌓아놓고 나중에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위한 여러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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