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준 변호사(법무법인 BHSN)
“우리 본사는 해주는게 전혀 없습니다. 사기를 당한 것 같아요. 네트워크 계약을 해지하고 싶은데 위약금 조항이 걸리네요. 방법이 없을까요?”
크고 작은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는 의료기관의 관계자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이다. 처음에는 A부터 Z까지 다 해줄 것처럼 말하더니, 정작 계약을 체결한 뒤에는 아무것도 해주는건 없고, 매달 거액의 수수료만 챙겨간다고 한다. 본사에서 파견 나와 있는 직원들도 전문성이 없을 뿐더러 조력자라기 보다는 감시자에 가까워서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이거 내 이야긴데? 하며 공감하는 병원들이 꽤 있으리라 본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네트워크 병원 사업
실제로 상담을 하다보면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네트워크 사업을 하겠다면서 무작정 MSO 계약서 샘플을 달라는 분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주로 직접 운영 중인 병원의 매출이 안정적으로 잘 나오고 있는 원장님들이 대다수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네트워크 사업을 해보겠다며 무작정 법인부터 설립해달라고 찾아온다. 하지만 여러 의료기관을 지원할 만한 인력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아서, 당장에 고객들(다른 의사들)에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심지어 원장 본인이 몰래 타 지점으로 원정 진료를 나가야 지점의 매출이 간신히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1개 병원을 성공적으로 세팅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은데, 사실 그 경험과 노하우는 개업 초기의 단기 컨설팅으로 충분히 전수할 수 있다. 초기 입지 선정부터 인테리어, 인력 세팅까지 1회성 “개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합당한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해주는 것 없이 3년, 5년의 장기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니 문제다. 입지선정과 개원에 자신이 있다면, 초기 개원컨설팅 수수료를 두둑하게 받고 이후 본인의 브랜드를 사용하게 해주면서 아주 소액의 로열티만 받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인 계약이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많은 의료인들이 개원 과정에서 1회성으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와 자신이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혼동하고 있다. 경영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미국에서 MBA를 취득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병원 경영에 있어 전문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직원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런 직원은 딱히 없고, “관리”를 해주겠다고 하지만 “관리”에 특화된 인력도 없다. 남들이 하는 서비스를 이리저리 살펴본 후 그에 필요한 인력을 마지못해 채용해서 급히 투입하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손발이 맞지 않고 본사에서 나온 인력이 무능하다는 뒷말만 무성하다.
그래서 한창 병원 매출에 물이 올라있는 의료인들이 네트워크 사업을 하겠다고 우리 사무실에 찾아오면, 일단 상표 등록부터 하시고, 상표권 사용료부터 소소하게 받으시라고 조언을 드리곤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대단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광고·홍보를 여려 병원이 함께하며 홍보 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드린다. 내 말이 전부 맞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차근차근 시작한 네트워크가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나름의 방향으로 성장해서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가입자의 입장에서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지
다시 논의의 시발점으로 돌아와서, 네트워크에 가입한 지점 원장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가입 후 몇 달이 지나도록 본사에서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과연 내가 이 계약을 조건 없이 해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대답하기 어렵다. 각자가 처한 상황, 계약서의 내용에 따라 case by case 로 처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신 아래 2개의 사례를 통해 대략적인 감을 잡아보시기 바란다.
첫 번째 사례에서 의사 A는 상당히 유명한 네트워크 병원 브랜드 파워를 가진 Z 의사와 네트워크 계약을 체결하고 매출의 10%를 수수료로 지급하기로 했다. 계약서도 단순했다. 제공하는 서비스는 본점 원장의 노하우 전수(특허 등록된 의료 기술), 그리고 상표권 사용뿐이었다. 초반에 몇 번의 코칭을 통해 노하우는 모두 배웠고, 병원도 입소문을 타고 금방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매출이 적었지만, 몇 달 만에 월매출이 5억 이상 나오게 되었다. 그러자 A는 매달 Z에게 지급해야 하는 5천만원의 컨설팅 수수료가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사례에서 A원장은 “불공정계약이다. 해주는 것도 없이 돈만 가져간다.”, “1인 2개소법 위반이다.” 등을 주장해 보고자 했지만, 검토 결과 이 사례에서 본사는 계약서에서 해주기로 한 것들은 모두 해주었기에 계약 위반 책임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특정 분야에서는 워낙에 유명한 병원 브랜드였기 때문에 상표와 특허 사용료를 높이 책정한 것이 “계약 무효”에 해당할 정도로 부당하다고 보이지는 않았다. A원장의 케이스는 파기할 수 없는 네트워크 계약의 대표적인 사례다.
두 번째 사례에서 피부과 원장 B는 입지 선정부터 인테리어, 인력 세팅, 코디네이터 파견, 콜센터 운영, 홍보, DB 마케팅 등 할 수 있는건 다 해주겠다는 X 법인(MSO)의 대표자이자 의사인 X’의 말을 듣고 네트워크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에서 해주겠다고 약속한 서비스만 20가지가 넘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콜센터나 통합 홈페이지는 준비되지 않았고, 현장에 보내주기로 한 인원도 계약서와 많이 달랐다. 그 와중에 X’ 대표는 사업수완을 발휘해 여러 지점과 계약을 체결하여, B를 점점 더 등한시했다. 결국 B는 계약서의 내용을 변호사와 꼼꼼히 검토한 후 본사에 내용증명우편을 보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처럼, 계약자가 기대한 서비스가 무엇이고, 계약서에 기재된 급부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에 대핸 대가는 합당한지 여부가 계약 해지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것이다. 다만, 불공정한 네트워크 계약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여러 사례들을 상담해 보면, 계약 해지나 기존 수수료 반환이 가능한 케이스는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최근 들어 우리 사무실에 MSO 계약서 검토를 의뢰하는 네트워크 본사들이 꽤 많은데, 법률 검토를 통해 여러 위법사항들을 제거하고 몇 가지 조언을 받아들여 결과적으로는 계약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으로 여러 네트워크들이 스스로 자정적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는 달리 “계약이 무효가 될 정도로” 허술하게 이루어진 계약은 흔치 않다. (과거에는 의료법 제33조 제1항, 제8항 위반 등을 이유로 무효로 만들 수 있는 네트워크 계약이 아주 흔했다.)
결국 억울함을 호소하는 지점 원장의 입장에서는, 일단 계약이 유효함을 전제로 상대방이 계약상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였는지, 계약 과정에서 약속했던 것들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법률전문가와 함께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하여 계약을 해지, 해제, 기타 방법으로 종결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