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의 채권자대위권 행사, 환자 재산관리에 부당한 간섭"
전원합의체 판단, 대법관 13명 중 5명은 반대 의견 눈길
실손보험사가 환자를 대신해 의료기관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이 보험사가 환자를 대신할 권한이 없다는 하급심의 경향과 일맥상통하는 판단을 내리면서 실손보험사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다수의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5일 S화재가 의사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을 취소하고 각하 판단을 내렸다.
의료기관이 임의비급여 진료를 했더라도 보험사가 이미 지급된 보험료를 돌려받기 위해 환자를 대신해서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염 환자에게 '트리암시놀론' 주사치료를 받은 환자에게 보험료를 지급한 S화재는 해당 치료를 실시한 의사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S화재는 A씨가 한 의료행위가 임의비급여에 해당해 무효라며 환자를 대신해 진료비를 반환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대전지방법원은 트리암시놀론 주사 치료가 임의비급여라서 의사와 환자사이 진료계약은 무효이며 채권자대위권 행사 요건도 충족했다며 S화재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전지방법원은 "보험사가 환자를 상대로 일일이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하면 보험금 회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라며 "보험사의 채권 행사가 보험금을 타간 환자의 자유로운 재산관리 행위에 관한 부당한 간섭으로 보이지 않는다. 의료기관은 환자를 대신해 부당이득금 반환을 행사하는 보험사에 진료비 상당의 금액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밝힌바 있다.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했다. 13명의 대법관 중 5명만 반대 의견을 내 다수 전원합의체 다수 의견에 따라 원심 판단을 취소하고 '각하' 결론을 내렸다.
김명수 대법관은 "실손의료보험 계약의 보험자가 보험금을 잘못 지급함으로써 입은 손실을 회복하기 위해 환자의 자력과 관계없이 환자의 요양기관에 대한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며 "보험사에게 환자의 일반채권자에 우선하는 사실상의 담보권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가 위법한 임의비급여 진료행위를 이유로 의료기관에 대해 진료비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채권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를 행사할 것인지 여부는 환자 의사에 달려있다"라며 "환자는 무자력이 아닌 한 그 행사 여부를 직접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의 결론은 각하였지만 5명의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보험사가 환자의 재산관리에 부당한 간섭을 한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보험사가 환자를 대신해 의료기관을 상대로 소송에 나서면 환자는 분쟁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고 보는 것이 환자의 의사나 거래관념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채권자대위권 존재의 의의와 행사 범위를 분명히 했다는 데서 이번 판결의 의미를 찾고 있다.
대법원은 "채권자대위권 행사를 확대하면 보험금을 잘못 지급한 보험사가 환자의 일반채권자보다 우선해 보험금을 돌려받아 보험사에게 사실상 담보권을 부여하게 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며 이를 부당하다고 했다.
또 "환자와 의료기관 사이 진료계약의 특수성을 고려해 환자의 진료비 반환 여부를 환자가 결정할 권리임을 확인했다"라며 "보험사의 채권자대위권 행사가 환자의 재산관리행위에 부당한 간섭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