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동안 5번 이사한 의대생의 '중심 잡기'

박유진 학생(순천향의대)
발행날짜: 2023-03-06 05:10:00
  • 박유진 학생(순천향의대 본과 4학년)

어느덧 본과 4학년이 되어 실습을 돌고 있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교수님들의 질문에 나름 대답을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들은 어디에나 있고 나는 언제 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을까 하며 슬기로운 실습 기간을 보내고 있다.

순천향대 의과대학 학생들은 6년 동안 참 많은 이사를 다니게 된다. 18학번 기준으로 6년 생활은 다음과 같다. 새내기인 예과 1학년은 순천향대 본교인 신창에서, 해부학을 배우는 예과 2학년과 마지막으로 기초과목을 배우는 시기인 본과 1학년은 순천향대 천안병원 옆 의과대학에서, 처음으로 임상에 대해 배우는 본과 2학년은 순천향대 서울병원 옆 의과대학에서, 실습이 시작되는 본과 3학년은 천안병원이나 부천병원 둘 중 한 곳을 선택해서 실습을 돌고, 마지막 본과 4학년은 다시 서울병원에서 실습을 돌게 된다.

1년 단위로 옮긴다고 생각하면 최소한 5번의 이사는 해야 하는 셈이다. 물론 지금은 또 우리 때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몇 번의 이사는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남아있다.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의과대학 학생들도 실습을 도는 병원들에 따라서 이사를 많이 다닌다고 한다. 사실 원래 있었던 안정적인 곳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나에겐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새학기를 맞이해 입학식에 가기 바로 전날엔 어찌나 걱정이 되었는지 잠이 오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내가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친구들은 잘 만들 수 있을지, 선생님은 좋은 분일지 등 이런 저런 생각에 밤을 꼴딱 새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5번의 이사를 거치다 보면 어느새 짐을 한 시간만에 쌀 수 있는 이사의 신이 되어 있고, 새학기 전날엔 걱정은 커녕 친구들과 벌써 방학이 끝나 아쉽다는 소리로 수다를 떠는 학생이 되어 있다.

이렇게 새학기를 맞이하고 학교에 가거나 병원 실습을 돌면, 새로운 교수님들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특히 병원 실습을 돌 때는 교수님과 함께 회진을 돌기도 하고 소규모로 티칭을 받기 때문에 의과대학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때보다 훨씬 가깝게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 교수님뿐만 아니라 전공의 선생님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꽤 있기 때문에 가령 관심있는 과가 있다면 그 과에 계신 교수님이나 전공의 선생님에게 그 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망은 어떤지, 왜 그 과를 선택했는지 등 평소엔 질문할 수 없었던 것들을 폭풍처럼 질문할 수 있다.

신기한 건, 참 사람마다 자신이 정해 놓은 기준이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과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도 그 과에 대해 생각하는 점이 다를 때도 있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은 A 병원보다 B 병원의 수련 환경이 더 낫다 라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B 병원보단 A 병원이 더 낫다라고 이야기할 때도 있다. 아직 인턴도 돌지 않은 실습생(PK)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워 듣고 각자 자신만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다른 친구들이 갖고 온 이야기들까지 모두 짬뽕하여 생각의 나래를 펼치고 고심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들에게서 답은 나오지 않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고 무엇을 선택해야 최선의 선택이 될까 고민하게 된다. 다만,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과연 '나에게' 최선이 되는 선택이 무엇일지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변에서 듣는 수많은 이야기들도 한 사람의 의견이고 제안일 뿐이다. 그건 그 사람에게 최선이지, 그것이 곧 나에게도 최선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물론 나보다 먼저 선택을 하고 경험해본 사람들의 이야기이므로 내가 선택하는 데 있어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에 내가 하는 선택에 책임을 지는 건 나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본과 4학년이 되어보니 어느 병원에서 수련을 받아야 할지, 어느 과를 선택해야할지가 코앞으로 다가와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다. 그만큼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들에게도 조언도 많이 구하게 되고 건너 건너 지인들의 소식들도 묻게 된다. 이럴 때일 수록 중요한 건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만의 기준을 세워 중심을 잡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세워둔 중심이 있다면, 흔들리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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