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생소한 '자살생존자'를 위한 따뜻한 배려

박수연 학생(연세원주의대)
발행날짜: 2023-03-20 05:00:00
  • 박수연 학생(연세대 원주의대, 본과 3학년)

우리나라 자살률은 10년 이상 OECD 국가 중 1위이자, 국내 10~30대의 사망원인 중 1위를 차지할 정도의 높은 비율이다(통계청 사망원인통계, 2018). 이러한 실정으로 정신과적 응급(자살 또는 폭력행동)은 전국 의과대학의 모든 정신과학 수업에서 시간을 할애해 가르치는 공통적 사항 중 하나다. 최근에는 자살유족 지원 사업에 관한 내용 역시 포함됐지만 아직 '자살생존자'는 의과대학생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선 단어다.

자살유족, 또는 자살생존자(Suicide Survivor)는 자신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람을 자살로 잃고 삶의 변화를 겪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는 일은 질병이나 사고로 떠나보내는 일에 비해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자살사망자의 유가족은 강간이나 전쟁,,범죄에 의한 피해 등과 같이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과 유사한 수준의 심리적 고통을 경험한다는 J. McIntosh의 말처럼, 자살의 발생은 남겨진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한 파급력을 가진다.

한 사람이 자살하면 그와 가깝게 지냈던 주변인 중 적어도 6-10명의 자살생존자가 발생하며 이들 모두는 심각한 심리적 상실의 충격에 빠지게 된다(American Association of Suicidology, 2007).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한 해 동안의 자살자는 1만3352명인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자살생존자는 무려 8만112명에서 13만3520명까지도 이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난 10년간 누적된 자살생존자는 130만여 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이들의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고통을 감소시키고 치유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2018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을 통해 자살유족을 위해 광역자살예방센터 내 전담 인력을 지정하고, 자살유족 자조모임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한편, 자살유족 서비스의 개발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또한 자살유족 원스톱 서비스 지원사업 체계를 마련해 2018년 당시 3개 시도 13개 시군구에서, 2022년 9개 시도 92개 시군구로 적용 범위를 확장했고 심리정서뿐 아니라 환경개선에 관한 지원을 포함시켰다. 가령 자살생존자가 자살이 발생한 공간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특수청소시설에 의뢰해 해당 공간을 정리하는 한편, 임시주거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덧붙여 사후 법률행정적 지원이나 가장의 자살 때문에 유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을 경우 장학금 지원 역시 시행되고 있다.
또 자살유족의 개인정보(성명, 연령, 연락처, 주소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자살예방센터 등에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자살예방법을 개정하고, 지난 8월 4일부터 이를 시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살유족 치료비 지원을 위한 민간 협력(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을 추진해 2022년까지 약 2160명을 지원했다.

그렇다면 개선되거나 보완되어야 할 점은 없을까? 지난 1월 12일 사단법인 LifeHope의 주최로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열린 자살유가족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자살생존자 분들을 직접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자살생존자 분들은 실제 유가족의 입장에서 필요한 사항과 지원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고찰을 들려주셨다. 우선, 도움을 요청할 곳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자살생존자들은 처리해야 할 감정이 많아 고립되고 무기력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현재 거의 모든 유가족 모임이나 케어 그룹은 유가족이 스스로 찾아와야 하는 구조라고 한다. 따라서 시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일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로를 알려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관 프로그램의 다양성 부재 역시 개선되어야 할 사항으로 꼽혔는데, 거의 대부분의 모임은 치유집단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2018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에서 개발된 프로그램 역시 마음건강교육, 도움서, 힐링톡, 아동청소년 애도프로그램 등으로 치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상처의 치유가 궁극적 목표이고, 여기에 아픔을 나눌 수 있는 동질집단의 존재는 절실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애도방식과 애도기간을 필요로 한다. 가령 절망스러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떤 사람은 취미활동에 몰두해 아픔을 승화하려 하고, 다른 사람은 인간관계를 통한 연결로 이를 잊으려 하며, 또다른 사람은 홀로 글을 쓰며 감정을 정리하고자 한다. 따라서 놀이집단, 활동집단 등 다양한 성격을 띤 집단이 만들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고, 여기에는 민간단체의 독려와 정부의 지원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관련 정부 기관과 사단법인 등 민간단체의 개입뿐 아니라 사회적 인식 개선 역시 강조하셨다. 자살생존자들은 주위의 시선에 의해 적절한 애도과정을 갖지 못하고 불가피하게 상실에 대해 의도적 외면을 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예컨대 울고 있으면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거냐는 질타가, 웃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냐는 날선 비난이 따라온다고 한다. 기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나 전문가와의 상호관계에서조차 애도과정에 있는 한 명의 인간이 아닌, 책임 소재를 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고도 한다. 현재 정부에서도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2018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의 일환으로 자살 유족 인식개선 캠페인을 추진 중이다.

의료관련 종사자로서 자살유족 지원정책이 보완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이웃으로서 자살생존자에게 줄 수 있는 개인적 도움은 결국 관심의 표현에서 출발한다. 면담학에서 배웠듯 상대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고 인정함으로써,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예를 들어, 유가족분들께는 "다 괜찮아질 거야", "빨리 극복해야지" 등의 조언을 삼가고 말없이 옆에서 기다려주는 태도가 가장 와 닿았다고 한다. 또한 다양한 애도 방식을 존중하며, 오랜 시간이 지났더라도 큰 상처로 남아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당신 옆에 있거나 혹시 당신 옆에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배려를 갖출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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