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 현지조사 연기요청과 조사거부의 경계는?

전진표 변호사(법무법인 진솔)
발행날짜: 2023-05-01 05:00:00

병·의원을 운영하면서 어느 날 보건복지부의 현지조사팀이 내방하여 이런저런 사유로 현지조사를 나왔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당황스러울 수가 있다.

조사팀의 요구에 따라 자료를 제출하려고 하니 앞으로 벌어질 일에 걱정도 되고, 자료 제출에 응하지 않으려니 현지조사팀의 ‘조사대응 거부 시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업무정지에 의거 1년의 범위 안에서 업무정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라는 고지에 덜컹 겁이 날 수도 있다.

이때 조사연기 요청을 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가 있다. 하지만 조사연기 요청은 잘 받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사거부가 되어 업무정지 1년 행정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조사연기 요청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관련해 참고할 사례가 있다.

보건복지부 현지조사팀이 A의원에 갑자기 방문하여 조사명령서 및 의료급여 관계 제출 요구서를 제시하면서 현지조사 경위에 대하여 설명했다. A의원 원장은 조사팀에게 사무장, 간호원 및 직원도 없고, 본인도 어제(조사 전날) 혈액 투석을 한 2급 장애로 건강이 좋지 않아 자료 제출 등 현지조사에 협조할 수 없어 조사연기 요청을 하였다.

원장은 현지조사팀이 제시한 ‘현지조사 거부 시 업무정지 및 형사고발 된다는 설명을 들었으나, 현지조사를 받을 수 없음을 확인한다’는 사실확인서에 서명하였다.

또한 원장은 조사 당일 오후 1회, 다음날 오전 1회에 걸쳐 현지조사팀이 재방문하여 업무정지 및 형사고발 된다는 설명과 현지조사 받을 것을 권유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약 1년 후 원장은 보건복지부로부터 현지조사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1년의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의료급여법 제28조 1항 3호).

이 판례의 쟁점은 원장이 직원 퇴사와 자신의 질병 등으로 현지조사를 받을 수 없으므로 연기 요청을 하였으나 보건복지부가 현지조사 연기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현지조사 거부로 판단 후 업무정지 처분한 것이 적합한가 이다.

1심, 2심 및 3심 모든 판결에서 A의원 원장이 패소하였다. 법원에서는 원장이 조사 전날 혈액투석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투석 다음 날에 현지조사를 거부한 것이 신장 질환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현지조사를 도와줄 만한 직원의 부재와 같은 사정은 현지조사가 곤란하여 연기되어야 할 만한 사정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다음 두 가지를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첫째, 원장의 의사표시가 현지조사 거부가 아니라 단지 연기를 요청한 것이었더라도 요양기관(의료급여기관)의 위법 사실을 조사하려는 사실이 사전에 유출되면 피조사자가 자료 은닉, 변경 등의 행위를 할 수 있고 현지조사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밀행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현지조사의 연기 요청은 현지조사에 대한 거부 내지 방해·기피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둘째, 현지조사 지침 상 현지조사 착수 이전 혹은 조사 중 현지조사를 실시하기 곤란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 한하여 조사를 연기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데, 그 사유는 △천재지변, 화재, 기타 재해, 파업 등으로 조사가 실질적으로 곤란할 때 △요양기관 대표자의 질병, 장기출장 등으로 곤란할 때(이 경우 증거인멸, 자료의 위·변조 등에 대비하여 조사자료 우선 징구) △수사기관에 관련 장부·증빙서류가 압수 또는 영치되어 자료의 열람 조사가 불가능한 경우로 정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 판례에서 알 수 있듯이 병·의원에서 조사 연기요청을 꼭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음 사항을 유의해야 한다.

첫째, 조사연기 요청 사유가 현지조사 지침에서 정한 사유인지 면밀하게 검토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요양기관 대표자의 질병일지라도 실질적으로 조사 수감을 받을 수 없는 건강 상태인지가 중요하다.

둘째, 현지조사에 협조할 수 있는 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거나 자료의 위·변조나 증거인멸 의지가 없다는 증표로 가능한 조사대상 자료 등은 제공하여야 한다. 셋째, 조사거부 사실확인서에 서명·날인 요청을 받았을 때 신중하게 서명해야 한다.

본인이 조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조사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사실확인서에 앞에서 언급한 향후 조사 가능한 일정, 자료 제공 여부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사표시하여야 한다.

끝으로 현지조사팀이 방문하였을 때 당황하지 말고 조사팀 신분 확인, 조사 사유, 조사 범위 등을 꼼꼼히 확인하여야 하고, 필요시 각 의료단체 현지조사 대응팀이나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참고 관련법령)

의료급여법 제28조(의료급여기관의 업무정지 등) 1항 3호

의료급여법 시행령 제16조의2(행정처분의 기준)

(소송 법원)

1심 서울행정법원 2018구합4540(2018.8.11.)

2심 서울고등법원 2018누68270(2019.5.8.)

3심 대법원 2019두42242(2019.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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