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다학제 급여화·적정성평가 이후…교수들이 변했다

발행날짜: 2023-05-16 11:56:19
  • 한림대동탄병원, 22년 상반기 대비 하반기 58% 증가
    교수들 마이크 들고 브리핑…환자 치료 이해도 높여 만족

"안녕하세요. 미리 설명을 드렸지만 박종수 환자분의 병을 같이 진단하고 계획을 하기 위해서 오늘은 흉부외과 이희성 교수님, 핵의학과 한유미 교수님, 방사선종양학과 하보람 교수님이 와주셨습니다."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김정현 교수는 목요일 오전 외래진료 마지막 환자의 진료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2층 호흡기내과 외래에서 지하 2층 다학제진료실로 뛰어갔다. 12시 30분부터 다학제진료가 잡혀 있었는데 시간은 벌써 12시 4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오전 외래진료에서 X-ray 촬영 후 확인해야 하는 환자가 많아서 진료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다학제진료실에는 벌써 폐암 다학제팀 교수들과 지난주에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박종수(남·75, 가명)씨와 그의 가족들이 도착해 있었다. 사전에 다학제팀 교수들이 논의한 결과 수술과 항암방사선치료 모두 가능했고 최종적으로 환자가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학제통합진료가 마련된 것이다. 김 교수는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마이크를 잡고 간단한 인사와 함께 다학제진료를 시작했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 다학제 통합진료 모습. 사진제공: 한림대동탄병원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의 다학제 통합진료 모습이다. 호흡기내과 김정현 교수는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와 치료법의 종류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핵의학과 한유미 교수가 PET검사 결과를 토대로 영상의학적 결과에 대해, 흉부외과 이희성 교수가 수술적 치료에 대해, 방사선종양학과 하보람 교수가 방사선치료에 대해 설명했다.

박종수 씨는 수술적 치료가 생존율이 좀더 높기 때문에 수술을 가장 우선순위에 뒀지만 다학제진료가 끝난 후 박종수 씨는 나이가 많고 수술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며 최종적으로 항암방사선치료를 선택했다.

김정현 교수는 "환자가 최종적으로 의료진이 1번으로 권유한 치료법과 다른 치료법을 선택했지만 이것이 다학제진료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며 "다학제진료에 참여한 환자들은 여러 진료과 교수들이 제공하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들을 비교해 최종적으로 자신이 어떤 치료를 받을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2022년 7월부터 모든 암에 대한 다학제통합진료를 급여기준에 포함함에 따라 의료현장의 변화가 시작됐다. 이와 함께 위암·대장암·폐암 적정성평가에 다학제 진료비율이 포함된 것도 한몫했다. 올해는 간암과 유방암도 포함됐다.

심평원이 인정하는 다학제통합진료는 3인 이상의 서로 다른 전문과목 전문의가 동시에 환자 대면진료에 참여해야 한다. 앞서도 다학제 통합진료를 흔히 시행하고 있었지만 급여화와 적정성평가 도입으로 변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같은 정책적 변화는 병원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환자와 함께 하는 다학통합진료를 시행해야 하기 때문에 진행방식이 환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먼저 점심시간 다학제진료실을 예약하기 위한 예약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러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여야 하지만 외래진료, 시술, 수술 등으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또 환자와 보호자의 시간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점심시간을 선호한다.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에는 2개의 다학제진료실이 있지만 점심시간에는 붐벼 이용이 어려울 정도다.

교다학제진료에 나선 교수가 마이크를 들고 환자에게 설명을 하는 모습.

고령이 많은 암 환자의 경우 치료법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가족들의 의견도 중요하게 고려해 학제통합진료의 또다른 장점은 환자의 보호자 누구라도 인원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환자의 직계가족은 물론 사위, 며느리, 심지어 대학생 조카까지 일가친척들이 참여해 대여섯 명의 인원이 다학제진료실을 가득 채우는 경우도 많다.

교수들도 변했다. 초반에는 여러 명의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돌아가면서 설명하는 방식을 낯설고 어색해했다. 교수들끼리 얘기할 때와 달리 암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정제된 언어로 설명을 해야 해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김정현 교수는 "처음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다학제통합진료를 할 때 마치 내가 방송프로그램의 사회자가 된 것처럼 진행을 해야 해서 어색했고 사소한 말실수라도 하지 않기 위해서 신경이 곤두섰다"고 전했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의 만족도가 높아지며 교수들의 생각도 변하기 시작했다. 30분내외로 진행하는 다학제 통합진료를 통해 환자들은 여러명의 교수가 자신의 질환에 대해 심도깊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신뢰도가 쌓였다. 교수들도 이를 통해 환자들의 치료 순응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점차 다학제통합진료를 선호하며 실시건수도 늘고 있다.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의 경우 2022년 하반기 다학제통합진료 건수는 상반기 대비 58% 증가했다. 9개 진료과가 8개 암종에 대해서 다학제통합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다학제통합진료 대상인 환자에 대한 진료 실시비율은 위암 92%, 대장암 63%, 폐암 53%를 기록했다. 이는 적정성평가 만점 기준인 위암 7.6%, 대장암 12.2%, 폐암 12.6%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다.

암센터 박일석 센터장(이비인후과 교수)은 "암 다학제통합진료의 활성화로 환자 중심의 병원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던 교수들도 환자들을 위한 긍정적인 변화라는 점에 공감하며 다학제통합진료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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