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수 위원장 "성조숙증약, 키성장 근거 없다" 쓴소리

발행날짜: 2023-06-14 06:24:35 수정: 2023-06-14 08:13:06
  • 이진수 위원장, 급여기준 변경 보류 현실에 아쉬움 토로
    "성조숙증 치료 시장 성장 비정상적…국민계몽도 필요"

정부가 '키 성장'과 연관돼 임상 현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성조숙증 치료. 정부가 근거부족을 이유로 급여기준 변경을 시도했지만 일부 부모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며 '보류'했다.

부모들의 욕구와 비급여 수익이라는 의료계의 이해가 맞닿으면서 관련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고 보건당국은 '급여'권에서 만큼이라도 진단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하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급여기준 변경을 수년간 준비해온 정부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는 상황.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진수 진료심사평가위원장은 13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성조숙증 치료가 부모들 사이에서 키 크는 주사, 묘약으로 통하고 있다"라며 "성조숙증 치료제로 아이들의 사춘기를 늦추면 키가 커진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키 주사와 성조숙증을 연결 지어 마케팅을 하고 있는 일부 의료기관도 문제"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약제 급여기준 변경 과정에서 심평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산하 중앙심사평가조정위원회는 과학적 근거 등을 통해 약제 급여기준의 적정성에 대해 심의하는 역할을 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2일 6월 적용을 목표로 성선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GnRH-agonist) 주사제 급여기준 개선안을 담은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약제) 일부 개정 고시안을 행정예고했다.

교과서, 가이드라인, 임상논문, 학회 의견 등을 참조해 약제 투여 대상을 보다 명확히 한 것. 기존 '단순히 이차성징 성숙도(Tanner stage) 2단계 이상이면서 골연령이 해당 연령 보다 증가'라는 GnRH-agonist 투여 대상 기준에 '여아 8세(7세 365일) 미만, 남아 9세(8세 365일) 미만'이라는 나이를 추가했다.

현행 고시에는 중추성사춘기조발증(Central precocious puberty, CPP, 진성 성조숙증)에서 GnRH-agonist 주사제 투여 시작 시기(여아 9세, 남아 10세)와 투여 종료 시기(여아 11세, 남아 12세)만 나와 있다. 보건당국은 교과서, 가이드라인에서 말하고 있는 중추성사춘기조발증 진단 연령을 명시하기로 한 것.

즉, 2차 성징 발현 시점이 8세 이전이라는 점이 확인만 되면 GnRH-agonist 주사제 투여 시기와 종료 시기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확인은 의사의 문진 및 이학적 검사를 통한 진료기록만 있으면 된다. 확인만 되면 최초 요양기관 방문 시점이 8세를 넘어서더라도 급여를 인정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6월부터 바뀐 기준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관련 나이의 자녀가 있는 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보류'를 선택했다.

이진수 위원장은 진료심사평가위원회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성조숙증 치료 시장 성장이 비정상적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종 통계에서도 성조숙증 치료가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평원 청구 자료 기반 우리나라 성조숙증 발생률에 대한 한 논문에 따르면 2010년 GnRH-agonist 치료를 받은 여아는 인구 10만명당 178.3명에서 2014년 415.3명으로 폭증했다. 같은 기간 남아도 4.1명에서 14.7명으로 급증했다. 상황이 이렇자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은 성조숙증 청구가 늘어난 만큼 무분별한 호르몬 치료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지 점검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8세 미만에서 진단이 되고 치료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급여는 1년 뒤부터도 인정이 되니 8세가 끝나는 시점이 돼서야 치료를 시작하는 식이다"라며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만 8세 여아와 만 9세 남아가 성조숙증으로 오인돼 불필요한 치료를 받는 분위기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현상은 사노피가 성조숙증 진단 시약 공급을 중단한 것과도 관계가 있다. 사노피는 성조숙증 진단 시약으로 쓰이는 '렐레팍트' 주사제 공급을 2021년 3월부터 중단했다.

이 위원장은 "제약사는 통상 성조숙증 환자 발생 빈도 등을 고려해 약을 생산하는데 우리나라에 너무 많은 성조숙증 검사가 이뤄지다 보니 다른 나라에 공급을 할 수 없는 수준이 됐고 결국 공급을 중단했다"라며 "자체 데이터를 보면 우리나라 8세 여아의 16.9%가 성조숙증 치료를 받고 있다. 9세에서는 20.03%에 달했다. 조기 사춘기와 성조숙증은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정부가 급여 적용 연령을 1년씩 줄인다는 내용의 급여기준 변경 예고가 있었다. 이는 성조숙증의 적정 진료를 유도하기 위함"이라며 "지금 사회에서 말하고 있는 성조숙증은 진짜 성조숙증이 아니다. 국민 계몽도 함께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가 행정예고를 통해 변경하려고 했던 성조숙증 주사제 급여기준. 투여 대상에 날짜를 추가하고 투여기간은 그대로 뒀다. (2023년 5월, 복지부 행정예고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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