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디지털치료기기 사업 이대로 좋은가

발행날짜: 2023-06-16 05:30:00
  • 의약학술팀 이인복 기자

"일단 개발은 끝났는데 우선 지켜보려고요. 연말까지도 답이 없게 흘러간다 하면 플랜B를 가동해야죠 뭐."

국내에서 디지털치료기기 개발을 진행중인 한 기업 대표이사의 말이다.

실제로 이 기업은 이미 디지털치료기기 개발을 사실상 마치고 출시 시기를 조율중에 있다. 허가를 위한 준비는 90% 이상 마친 상태.

하지만 현 단계에서 이 기업은 더이상 허가를 위한 준비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약간의 마무리 작업만 진행하면 되는 상태지만 브레이크를 밟은 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표이사의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디지털치료기기로 출시할지 아니면 범용 어플리케이션 형태로 출시할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디지털치료기기로 출시하는 것이 돈이 될지 일정 부분 전문성을 가진 어플리케이션으로 내놓는게 수익이 될지 아직 판단이 안선다는 의미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수년전부터 불어온 디지털헬스케어 열풍에 힘입어 한국형 디지털치료기기 사업은 그 어느 분야보다 각광받은 것이 사실이다.

10여개의 기업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마침내 지난 2월 에임메드의 제품이 최초로 허가 문턱을 넘은 뒤 4월에 웰트가 또 다시 허들을 넘어서며 기대감이 커졌던 상황.

하지만 국내 최초의 디지털치료기기는 여전히 창고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후 절차에 시간이 소요되면서 허가는 받았지만 처방은 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 또한 패스트트랙을 약속하며 빠른 진행을 공언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부분들은 안개속에 가려져 있는 상태다.

디지털치료기기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처방할지에 대한 부분과 이에 대한 급여 적용에 대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한시적 조건부 급여적용이라는 일부 골자는 흘러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이 또한 불확실한 미래에 불과하다. 또한 한시적 조건부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급여가 적용된다 해도 매우 제한적인 곳에서 제한적 환자에게 처방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앞서 말한 기업의 대표이사가 출시를 망설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부분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속에서 굳이 기껏 허들이 높은 '의료기기'에 도전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원천적인 의구심에 빠져있는 셈이다.

이는 비단 이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빠르게 치고 나가 1, 2호 디지털치료기기를 개발한 기업이 선도적 위상을 갖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후발주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말 그대로 1호 기업도 성공 여부를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3호, 4호로 이 불확실한 시장에 뛰어들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관리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또한 이러한 강력한 규제가 있기에 이를 넘어선 제품은 타 제품에 비해 분명한 경쟁력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힘들게 수많은 산을 넘어봐야 그 끝이 안개속이라면 굳이 많은 돈과 인력, 시간을 들여 제품을 개발할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 돈과 인력, 시간을 홍보와 영업에 쓰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형 디지털치료기기 사업이 산으로 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들이 허가를 받아봐야 소용없다는 결론에 다다르면 이 분야는 그대로 침몰한다.

이미 수많은 기업들은 '의료기기' 허가와 범용 어플리케이션 출시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 서둘러 물길을 유도하지 않은 채 그 압력으로 엉뚱한 보가 터진다면 그때는 그 물길을 돌이킬 수 없다. 그것이 정부가 자주 인용하는 '생태계'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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