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장에서 배운 따뜻한 온기

오예지 학생(차의학전문대학원)
발행날짜: 2023-06-19 05:00:00
  • 오예지 학생(차의학전문대학원 3학년)

겨울코트를 입고 추위에 떨며 출근했던 것이 얼마전 같은데 어느덧 초록빛이 무성한 여름이 되었다.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5개의 과를 돌았고 지식과 함께 의료인이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를 거쳐 내과 첫 실습을 류마티스 내과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소아와 비교적 젊은 여성 환자를 보다가 내과에서 거동이 불편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인 환자를 처음 만났다. 노인 환자 진료시에는 청력이 좋지 않은 분들을 위해 큰 소리를 내야하고 같은 이야기도 여러번 해야하는 고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류마티스 내과는 다양한 과에서 협진 의뢰로 진료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그만큼 다양한 기저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방문했다. 환자의 수가 정말 많은 상황속에서도 모든 환자분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안내책자로 질환과 앞으로 치료계획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는 모습을 통해서 최근 국시에서 강조하는 PPI(환자-의사 관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다.

노인 환자 진료는 난이도가 매우 높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많았다. 일례로,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계신 할머니 환자가 따뜻한 물을 사용하라는 교수님 말씀에 버럭 화를 내시며 돈이 얼만데 따뜻한 물을 사용하느냐고 하셨다. 뒤에서 듣고 있던 나는 환자의 저런 반응에 어떻게 답해야 하나 당황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은 웃으며 "따뜻한 물을 사용해야 뻣뻣한 것이 더 잘 풀리니깐 아침에라도 꼭 따뜻한 물로 손 푸세요"라고 말씀하시며 진료를 이어나가셨다. 노인 환자가 화를 내더라도 더 잘 이해시켜 드리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의료인이 갖춰야 할 자세는 비단 교수님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친절함이 무엇인지 심전도실 간호사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바쁜 와중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고 나이가 지긋한 환자의 말씀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친절하게 답했다. 지팡이를 잃어버린 어르신의 지팡이를 찾아 주기도 하는 등 모든 행동과 말투에 온기가 묻어나왔다. 많은 환자와 업무량, 같은 업무를 매일 반복하다 보면 타성에 젖을 법도 한데 볼때마다 한결같이 환자를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에 지켜보는 사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삭막하고 예민할 수 있는 병원 분위기를 작은 친절함으로 따뜻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며 진심을 담은 친절함은 환자를 넘어 주변 사람들까지도 물들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의사가 외래에서 환자를 어떤 사명감으로 봐야 하는지 심장내과 실습을 돌며 배우게 됐다. 교수님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환자를 대하는 친절함과 의료 전반에 관한 자세한 설명에 내 가족이 심부전으로 아프게 된다면 교수님께 진료를 받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기 전공분야가 아닌 질문, 혹은 무리한 약 처방 요구를 단칼에 거절할 수도 있을 텐데 인자하게 웃으며 자세히 하나하나 설명했다. 환자가 나간 뒤에 교수님이 "나는 환자를 오래 보는 편인데 외래에서 환자를 빨리 빨리 보고 싶어하는 의사들도 많아. 오래 이야기하고 환자를 보면 나도 힘들지만, 외래에서 환자를 자세히 보고 진료해야 이분들이 응급실을 통해서 오는 일이 없지 않겠어?"라고 하신 말씀이 큰 울림을 주었다.

외래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러나 교수님의 말을 듣고 올바른 의사란 내게 온 환자가 내가 놓치는 부분으로 인해 응급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해야 하기에 지식과 더불어 환자를 대하는 자세도 배양해야 한다. 실습은 의료적 술기와 지식을 배움과 동시에 의료인 선배의 자세와 가치관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실습 기간 중 성실히 보고 배우며 지성과 더불어 친절함의 온기가 배어 나는 의료인으로 성장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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