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학생의사 OOO입니다"

조윤아 학생(경북의대)
발행날짜: 2023-06-12 05:00:00
  • 조윤아 학생(경북의대 본과 3학년)

"안녕하세요? 학생의사 OOO입니다."

의사 국가고시 합격을 위해 모의환자 앞에서 수도 없이 내뱉는 말이다. 환자가 어떤 이유로 병원에 오게 되었는지, 그 증상의 양상은 어떠하고 동반증상은 없는지, 환자가 과거에 앓거나 현재에 앓고 있는 질병은 없는지 자세히 파악해야 한다. 환자의 대답을 바탕으로 환자의 병명을 추측하고 이에 맞는 추가 진단과 치료 방법, 생활 개선 방법을 환자에게 추천한다. 문진의 기본이며 그렇기에 다양한 상황에 맞추어 연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모의 환자 역시 적절히 증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주기적으로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병원에서 만나는 실제 환자는 사뭇 다르다. 모의 환자와는 다르게 그들은 내가 스스로를 '학생'이라 칭하지 않는 이상 나를 의사라고 생각한다. 하얀 가운에 가려져 'PK실습생'이라고 적힌 명찰은 간과되기 십상이다. 환자들은 내게 종종 길을 묻기도 하고, 간단한 의학지식들을 질문하기도 한다. 알고 있는 것이 있을 때도 있지만, 섣불리 대답하기는 망설여진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담당의사 선생님께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정도이고, 이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자연스럽게 숙인다.

이런 와중에 "안녕하세요? 학생의사 OOO입니다"를 시도해야 할 순간이 가끔씩 나타난다. 외래에 초진으로 방문한 환자의 예진을 해야 하거나, 회진을 참관하다가 환자에게 궁금한 점이 생기는 경우가 그러하다. 특히 증례발표 준비를 위해 환자의 전반적인 문진이 필요할 때는 비상이다. 주치의도 아닌 사람이 와서 환자에게 질문을 하니 환자의 마음속에 불신을 심어주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하다. 마음씨 좋은 어떤 교수님이 "제 학생인데 이 학생이 오늘이나 내일쯤 찾아갈테니 잘 대답해주세요"라고 말씀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뜬금없이 잘 치료받고 있는 환자에게 찾아가 "안녕하세요 학생의사 OOO입니다", "병원에는 어떤 문제로 오셨어요?"라고 묻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이미 주치의 선생님들과 교수님이 다녀간 상황이라면 환자는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게 만든다고 짜증낼 수도 있다. 한 번은 당신은 돈이 없으시다며 잡상인 취급을 받아본 적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 한다. 환자의 마음이 이해는 가면서도, 깊이 있는 배움에 필수적이라 놓칠 수 없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는 문진을 비롯한 진료과정과 수술을 비롯한 치료과정이 도제식에 가깝게 교육된다. 임상의학의 이론만 배워서는 적절히 의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으며 환자와의 관계 형성이 최근 더욱 중요시되고 있는 가운데 병원에서의 실습을 필수적이다. 이것이 병원이라는 공간에 환자와 의료인 외의 '학생'이 존재하게 된 이유다.

다만 대부분의 환자는 PK실습생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듯하다. 유행했던 드라마인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잠깐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 확인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소위 빅5 병원이나 내가 있는 경북대병원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상급 병원은 수련병원이다. PK실습생들이 환자진료와 치료과정을 참관하며 배우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고, 의료서비스 발전에 필수적이다. PK교육에 관심있는 교수님들이 때로 적극적인 자세로 환자를 자세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지만 학생에 대한 낮은 인지도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할 때가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니 환자들이 병원에 교수님이 있고, 레지던트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PK실습생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지해주시길 희망한다. 외래에서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 외에도 열심히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면 좋겠다. 혹시 언젠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안녕하세요? 저는 학생의사 OOO입니다"고 말하는 학생을 만난다면, PK학생들인가 보다 하고 학생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대답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PK학생들은 환자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 어느 날 병원에 다녀오신 할아버지께서 치료를 받는 도중 학생들이 쳐다보니 당신이 마치 마루타가 된 것 같았다는 말씀을 듣고 화들짝 놀란 경험이 있었다. 환자분는 수치심이나 불편감을 느끼실 필요가 없다고, 미래의 자신을, 미래의 지인을, 미래의 가족들을 위해 투자하고 계신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이해해 주셨다. 환자의 의식이 조금씩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오늘도 조심스레 책임감을 높이는 주문을 되뇌어본다. "안녕하세요? 저는 학생의사 OOO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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