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격의료학회, 공청회 통해 진료 지침 초안 공개
의견 수렴 및 논의의 장 의도…"패러다임 변화 알릴 것"
한국원격의료학회가 비대면 진료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며 공론화의 장을 마련했다.
의료계 내부의 반발을 우려해 비대면 진료 도입에 목소리를 삼가는 분위기였지만, 학회가 나서 지침을 마련한 만큼 찬반은 물론 내용에 대한 의견 교환 등 논의가 활성화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비대면 진료를 대면 진료의 대체재로 보거나 두 방법론 사이의 대결 구도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어 건설적 논의를 위한 기제로 가이드라인이 기능할 수 있다는 게 학회 측 판단이다.
23일 원격의료학회는 서울의대 암연구소 이건희홀에서 공청회를 개최하고 비대면진료 가이드라인 초안을 공개했다.
그간 비대면 진료 시 발생 가능한 의료 분쟁에 대한 우려가 팽배했던 만큼 학회는 의사뿐 아니라 환자, 설비제공자 모두에게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했다.
의사의 경우 환자 확인의 의무에 이어 비대면진료의 한계와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에 관한 고지 의무가 권고된다. 이어 참여를 주저하는 의료진을 설득하기 위한 다양한 방어 기제 항목도 구체화했다.
백남종 부회장(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은 "비대면진료의 특성 상 환자가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할 경우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며 "환자가 비대면으로 한정된 정보만을 제공할 경우 종양∙감염병∙심혈관질환 등 중증질환에 대한 진단이 누락될 수 있다는 한계를 고지토록 했다"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 우려점 해소…의사·환자·설비제공자 역할 제시
그는 "비대면진료를 받은 사실이 이러한 진단을 배제하는 근거가 될 수 없고, 중증질환에 대한 진단 지연이 초래되지 아니하도록 환자 스스로가 정기적인 건강검진 또는 대면진단을 실시해야 한다"며 "비대면진료 이후 증상이나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 즉시 대면진료를 실시해 한다는 내용도 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보기술의 오류로 인해 비대면진료 과정에서 장해 또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고 의사가 이에 대해 책임 지지 않는다는 점, 의사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이 없는 점 역시 고지 사항에 들어갔다. 의료계가 제기해온 비대면 특성상 발생하는 문제의 책임 소재 및 우려 지점은 해소한 셈.
환자는 본인 확인 정보 및 자신의 증상∙병력∙특이체질∙환경 등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정보 제공을 거부 또는 지연하거나 부정확하게 제공할 경우 진료가 거부될 수 있다.
의사가 대면진료∙처방 전환 사유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진료거부에 해당하지 아니함을 분명히 하기 위한 유권해석이 필요하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가이드라인에는 초진 비대면 진단에 적합하지 않은 증상 및 초진 비대면 처방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의약품 항목이 제시됐지만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비대면 진료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과의 경우 부적합 항목은 숨막힘 또는 호흡 곤란부터 각혈, 격렬한 기침, 급성 목소리 변화, 흉통 압박감, 갑작스런 두근거림, 증상을 통반한 혈압 상승, 강한 복통, 구토, 혈변, 설사, 강한 통증, 발열을 동반한 허리통증, 배변장애 등 사실상 내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의 다양한 증상을 포함하고 있다.
백남종 부회장은 "해당 항목은 일본의사회연합의 온라인진료의 초진에 관한 제언 2021년 판을 참조했다"며 "향후 국내 각 학회별, 과별 제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상철 법제도분과위원장(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은 "비대면 진료 가이드라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적용하고 있던 다양한 나라의 경험, 사례, 지침, 판례를 반영한 것으로 학회는 이번 지침을 통해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 국가마다 보건의료 환경과 보험 제도, 의료 인력 등이 다르기 때문에 각 과별로 어떻게 적용하고 논의할지는 전문과가 보고 의견을 취합해야 한다"며 "이번 가이드라인 공개는 초안이기 때문에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보통 타과가 연관되는 가이드라이인 제정에는 연관 학회, 유관 학회의 지지 승인(endorsement)을 거치지만 원격의료학회는 학회 내부 분과 위원들의 의견 수렴으로 갈음했다.
학회 관계자는 "원격의료학회는 다양한 진료 과 회원들이 분과 활동을 하고 기술과 학술 분과가 총 18개에 달한다"며 "개별 분과 위원들은 다른 전문학회의 학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가이드라인이 자연스레 각 전문과로 퍼져나가고 검토 과정을 거치게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의료 패러다임 변화 화두 제시…"대면-비대면 대결 구도 아냐"
이날 학회는 가이드라인 현지화 및 적용은 타 과에 공을 넘기는 대신 학회가 주도적으로 가이드라인 제정에 나선 이유 설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해외에서 수십년 전부터 적용된 원격 방식의 진료가 한국에서만 법제화에 난항을 겪는 것은 그만큼 비대면을 둘러싼 오해와 우려가 본질을 흐리고 있단 판단 때문이다.
강성지 정책기술분과위원장은 "학회에서 학술적 관점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을 자꾸 국회의 입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어 곤혹스럽다"며 "공청회는 비대면 진료가 어떤 효용을 가지고 있고 이를 잘 담아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과정인데 이것이 정치적 대결로 쟁점화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면 진료와 비대면 진료를 대결 구도로 보지 말아줬으면 한다"며 "질병은 항상 있고, 의사는 항상 환자를 보기 때문에 비대면 진료는 환자 입장에서 의사와 항상 맞닿아 있는 느낌을 들 수 있도록 하는 방법론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백남종 부회장은 "가이드라인은 완성이 아니라 논의를 위한 초석"이라며 "비대면 진료는 의료 접근성 강화라는 측면도 있지만 사실 의료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 의료가 질환 발생에 따라 병원에 와서 진료 받고 약을 받으면 끝나는 에피소드 케어였다면 지금은 지속적으로 환자와 의사가 소통하고 방법론을 찾는 컨티뉴어스 케어로 바뀌고 있다"며 "대면과 비대면을 이분법으로 본다든가, 아니면 비대면을 대면 진료의 대체재로 본다든가하는 건 잘못된 시각"이라고 덧붙였다.
학회는 지속적인 공론화를 위해 다양한 학회의 의견 수렴은 물론 의학회, 복지부와도 논의를 이어간다는 계획. 학회는 가이드라인을 대한의학회 및 보건복지부에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