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인가, 사직인가

이동직 노무사(노무법인 해닮)
발행날짜: 2023-09-18 05:00:00 수정: 2023-09-21 10:17:19
  • 이동직 노무사(노무법인 해닮)

근로기준법과 대법원 판례는 근로자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는 사용자의 해고 처분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그 정당성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먼저 해고의 정당한 사유가 존재해야 하고, 30일 전에 해고를 예고해야 하며, 사용자는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근로자에게 통보해야 합니다. 사용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근로자가 있더라도 함부로 해고 처분을 하지 않고, 해고처분 결정을 내리더라도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반면, 근로자가 개인적인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 사직의 경우엔 이렇다 할 법적 절차가 정해진 바 없습니다. 사직의 의사를 어떻게 표시해야 하는지, 사직일로부터 며칠 전에 사직의 의사를 표시해야 하는지, 무엇을 사직 의사의 징표로 볼 것인지 등 사용자-근로자 공히 각자의 입장에서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직 의사 존재 여부를 주장해 볼 수 있는 여지가 큽니다. 사직과 관련해 어떠한 법적 쟁점이 있길래 노사가 다툴 만한 계제가 있다는 것일까요?

사직 의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근로자의 주장은 곧 사용자의 해고처분이 있었다는 주장으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사직 의사를 표시한 적 없었고, 남은 계약 기간까지 회사에 다니고 싶었는데 사용자가 본인에게 일방적으로 결별을 통보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사용자는 근로기준법상 정해진 해고 절차를 밟은 바가 없고, 근로자에게 회사를 나가라고 등 떠민 적이 없었으며, 근로자가 본인에게 구두로 사직 의사를 표시해서 이를 수리했을 뿐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녹취, 문자, 카톡 등 노사 양측에게 확실한 증빙이 없을 때 사용자가 본인을 해고처분 했다는 근로자 주장이 맞을까요, 아니면 근로자가 본인에게 사직 의사를 표시했다는 사용자 주장이 맞을까요? 이는 해고처분의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와 관련 있는데, 당연히 입증 책임을 부담하는 쪽이 질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대법원 판례는 아직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양 당사자의 지위와 입증의 부담을 고려하면 사용자측에게 근로관계의 종료 원인이 사직이나 합의해지라는 점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다."(대법원 2016.2.3. 2015두53237)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에서 해고가 있었다는 점, 즉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일방적인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행위를 하였다는 점에 대한 증명 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있다."(대법원 2014.2.28. 2013두23904)

등 사용자와 근로자를 모두 희망고문하는 서로 다른 취지의 판결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명백한 증빙이 서로에게 없는 경우 그때 당시의 구체적인 정황을 고려해 사직 또는 해고처분의 존재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항의나 이의제기를 했는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출근을 지시했는지, 근로자가 본인 물품을 정리하고 회사 물품을 반납했는지, 근로자가 동료에게 작별 인사를 했는지, 근로자가 퇴직금이나 전별금을 별 소리 없이 수령했는지 등 사직 또는 해고처분이 있었다면 으레 벌어졌을 노사 양측의 행동이나 발언을 토대로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사직과 관련한 법적 절차가 불비하고, 해고처분의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대법원 판례가 아직 정립돼 있지 않은 현재 상황에선 해고와 사직은 한 끗 차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용자는 근로자의 사직 의사를 구두로 받을 게 아니라 가능한 한 문서(사직서)로 남겨야 하며, 근로자의 무단결근 등에 따라 사직 의사를 문서로 남기는 게 힘들다면 사용자는 증빙을 남기기 위해 지속적으로 통화, 문자, 카톡 등을 통해 근로자의 사직 의사를 재확인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업무에 당장 복귀하라는 지시를 해야 합니다.

사전에 노사간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뒷맛이 씁쓸해지는 건 저 뿐만이 아닐 듯합니다. 사용자는 사직서 작성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근로자는 사직서 작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쓸데없이 정력을 낭비해야 하는 위와 같은 상황은 사라질 겁니다. 속히 사직과 관련한 법적 절차가 완비되길 기원해 봅니다.

관련기사

오피니언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