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부터 의사까지, 6년의 여정

박유진 학생(순천향의대)
발행날짜: 2023-09-25 05:00:00
  • 박유진 학생(순천향의대 본과 4학년)

총 6년이라는 의대생 생활, 하루로 따지자면 2190일을 지내왔고, 시간으로 따지자면 5만2560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엔 눈물이 날 정도로 재밌는 일들도 있었고, 정말 슬퍼서 눈물이 펑펑 난 적도 있었습니다. 여느 의대생과 다름없이 열심히 공부를 할 때도 있었고 마음껏 놀다가 시험 직전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공부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국가고시 실기 시험을 이틀 앞둔 지금 '내가 과연 의사가 될 수 있을까' 혹은 '이제 진짜 의사가 되는 건가', '시험 때 떨지 않고 잘할 수 있겠지?' 등 여러 생각과 고민이 스쳐가며 만감이 교차합니다. 지나갈 것 같지 않았던 6년의 시간이 이렇게 쏜살같이 흘러갔다는 것도 믿기지 않지만 이제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나 의사가 된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어깨가 무거워지는 오늘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의 의대생 시절은 열심히 경험하고 느끼고 기록하며 어떤 의사가 될지 고민하는 시절이었습니다. 처음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다는 부푼 기대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예과생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드럼을 배워보고자 무작정 밴드에 들어가 동기들과 밤새 연습을 하면서 공연 준비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연습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 느껴지는 전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글을 쓰고 싶어 들어간 의대생신문에서는 학교 밖 소중한 인연을 쌓을 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되었고 가끔은 글을 쓰면서 하루 종일 쌓였던 케케묵은 감정을 털어내기도 했습니다.

예과생 2년동안 젊음과 청춘을 느끼며 (가끔은 음주가무도 곁들이며) 재밌는 나날들을 보내던 중 드디어 본과생이 되었고 수많은 과목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해부학부터 시작해서 생리학, 생화학, 미생물학, 약리학까지… 대학생이 되었다는 명분 아래에 무작정 놀았던 저에게 이렇게 많은 과목들을 공부한다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듯 다시 찬찬히 수업을 들어가며 공부를 시작하니 나름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고 드디어 의학적인 지식을 배운다는 기분에 들뜨기도 했습니다. 해부학의 꽃인 소위 '땡시(한 문제당 시간을 짧게 주고 바로 다음문제로 넘어가는 시험 방식)'라 불리는 시험을 치르며 의대생의 공부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기도 하였고 본과 2학년 때 총 17과목의 임상과목을 배우면서 '의대생 공부량'에 대해 절실히 느끼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수업과 2주마다 치뤄지는 시험이 가끔은 숨막힐 때도 있었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의사'라는 직업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마지막 본과 3학년, 4학년에는 병원에 임상실습을 나가면서 '가운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병원에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됩니다. 처음에는 무언가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어 숨어 있기 급급했습니다. 그럴수록 스스로 '빈껍데기'가 되기 싫어 더 열심히 배우고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나 병원 실습을 돌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깨달은 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병원에서 환자를 진찰하며 어떻게 검사하고 치료할 것인지 결정해야하는 직업입니다. 그 과정에선 정말 위급한 환자를 대하며 다음 스텝을 정해야하는 결정적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 순간에 조금 더 나은 결정을 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선 먼저 내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하는 것이 나와 환자에게 올바른 선택인지 평소에 잘 생각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어떤 걸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를 안다면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신념대로 올곧이 나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저의 의대생 시절은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막연히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의대,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의대생 시절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 되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할걸, 조금만 더 열심히 놀걸 하는 후회는 약간씩 있지만 의대에 들어온 걸 후회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게 얼마나 고귀한 일이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는 게 얼마나 값진 일인지 알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앞으로도 저는 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저 자신을 돌이켜보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윤곽이 분명하지 않은 의사의 모습이 그려지지만 고민을 하다 보면 차차 그 윤곽이 선명해지는 날이 올거라 생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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