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총파업 투표 알리며 9일 대정부 투쟁 선언 예고
정부 입장 변화에 의료계서도 "전략 수정 필요" 목소리
이날부터 대한의사협회 전 회원 대상 총파업 찬반투표가 시작된 가운데, 일선 회원들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날 있었던 보건복지부 전공의 사직서 발표 역시 지뢰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4일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증원 절차 전면 중단을 목표로 '큰 싸움'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이날부터 전 회원 대상 온라인 투표를 실시해 총의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또 오는 9일 전국 의사 대표자 대회를 개최해 의대 교수, 봉직의, 개원의, 전공의, 의대생과 함께 대정부 투쟁을 선포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투표율은 이날 오후 6시 기준 10%를 넘겼다.
특히 의협은 이날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전공의 사직서 수리 금지 및 진료유지·업무개시명령 철회를 두고, 스스로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의료·교육 농단임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의협은 이로써 정부는 의료 정상화를 위한 능력도 의지도 없음을 국민 앞에 드러냈다"며 "아무런 근거 없이 2000명 의대 증원만 고집하며 일으킨 의료 사태의 책임을 각 병원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정부를 사직한 전공의들이 어떻게 믿고 돌아오겠는가"라며 반문했다.
이어 "이번 수가 협상을 통해 정부가 저수가로 왜곡된 필수의료를 실릴 의지가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며 "이에 전 회원의 뜻을 모아 정부의 의료 농단, 교육 농단을 막아내고 의료 정상화를 반드시 이루겠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의료계 일각에서 정부 발표가 의료계 총파업을 앞두고 지뢰를 깐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이는 국민에게 "비판을 감수하며 의료계 요구에 한발 물러났다"는 인식을 심어 의료계 총파업 명분을 흔들려는 목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 행정처분을 미루며 이를 단행하는 조건으로 국민 여론을 건 역시 노림수라는 분석이다. 이는 의료계 총파업 조건 중 하나였던 전공의 행정처분을 방어하는 한편, 총파업 이후 국민 여론 악화를 빌미로 행정처분을 내리고 그 책임을 의료계에 지우려는 의도라는 것.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단체 임원은 "이제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총파업을 통해 의료계가 국민이나 정부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총파업을 한다고 해도 국민이나 정부가 의사에게 줄 수 있는 게 없다면 오히려 그로 인한 피해로 의사가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행정처분을 하거나 면허를 취소하라는 여론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정부가 위축된 상황인데, 총파업은 오히려 그들이 더 강하게 나올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의료계 총파업에 대한 정부의 방해 공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의료계 요구로 전공의 사직서 수리를 허용한다고 밝혔지만, 먼저 의사를 물은 것은 정부 측이라는 것.
이와 관련 의료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부는 특별한 출구 전략이나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정부도 이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같은 강 대 강 대치의 결말을 예견한 것 같다"며 "그래서 선택한 것이 병원장들에게 재량권을 주고 한발 물러서면서 현재의 전선을 무마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고 전했다.
이어 "그동안 있었던 초법적 조치에 대한 행정소송 가능성도 낮추고 싶은 것 같은데, 실제 전공의 사직서 수리는 병원장들이 먼저 요청한 게 아니라 복지부가 제안한 부분"이라며 "하지만 이번 조치로 얼마만큼의 전공의가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결국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데 전공의들도 '이렇게 돌아갈 거면 왜 사직했지'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 역시 "정부가 갑자기 지난 수개월 동안 지속했던 전공의들에 대한 복귀 명령을 해제한다는 소식을 흘렸다"며 "지난 수개월 간, 기본권을 무시하며 전공의들에 대한 협박을 멈추지 않던 정부가 큰 싸움이 현실로 다가오자 김을 빼기 위해 갑자기 전략을 급히 수정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 변화가 있었던 만큼, 의협 역시 기존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기존에도 의협 총파업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는데 참여율까지 떨어진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
대한전공의협의회·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가 의협과 독자 노선을 선언한 상황에서, 의협 주도로 총파업이 이뤄진다면 2020년 때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많은 찬성표가 나올 수 있지만, 총파업을 실행하는 것은 두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한 시도의사회 회장은 "이렇게 총파업이 거론되는 것이 시기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좋지 않다고 본다. 국민 역시 의대 증원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국민을 불편을 키우는 투쟁 방식이 적합한지 의문"이라며 "결과가 예상되는 싸움보단 차라리 각자의 직역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정부의 태도 변화는 그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어떤 정책을 제시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심사숙고해야 한다"며 "오는 전국 의사 대표자 회의에서 이 문제를 어떤 절차로 가져가 대처할지, 더욱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