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억 원 추징금으로 병원 포기한 개원의 A씨와 인터뷰
세수 부족으로 개원의 표적…전방위적 압박에 미래 불투명
최근 개원가를 중심으로 고강도 세무조사가 본격화했다. 그 원인으로 법인세 감소로 인한 세수 결손과 의대 정원 증원으로 인한 의료계·정부 갈등이 지목되면서 의료계 한숨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17일 개원가에 따르면 고액의 매출을 올리는 개인 병·의원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이미 시범 케이스로 십수억 원의 추징금을 맞고 이를 납부하기 위해 병원을 포기하는 곳까지 나올 정도다.
■십수억 원 추징금으로 병원 포기한 A씨 "세수 부족으로 표적"
이렇게 병원을 매매하게 된 개원의 A씨는 이번 세무조사가 압수수색을 방불케 하는 고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여러 단체에 속하는 등 의사 사회 내외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인사 중 하나다.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정 갈등 사태에 적극 목소리를 내는 한편, 알게 모르게 사직 전공의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경 예고도 없이 세무조사가 이뤄졌는데, 컴퓨터까지 가져가는 등 그 강도가 압수수색을 방불케 했다는 설명이다. A씨는 10년 가까이 병원을 운영하며 세무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에 조사 과정에서 담당 직원에게 세무조사 이유를 물어보니 세수 부족 때문이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것.
실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1~5월 걷힌 국세 수입은 151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조 1000억 원 감소했다. 이는 같은 기간 15조 3000억 원 줄어든 법인세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기업실적이 악화하면서 분납분이 줄었고, 중소기업 자금 사정이 예상보다 더 안 좋았다는 것. 지난해 총세입 역시 497조원으로 전년 대비 77조원 감소하는 등 역대 최대 세수 결손(56조 4000억 원)이 발생했다.
국세청은 이렇게 빈 세수를 고수익을 올리는 개인사업자에게서 채우고 있는데, 개원의 역시 그 표적이 됐다는 것. 실제 A씨는 세무조사 이유를 말해준 직원에게 향후 의사들을 집중 세무조사할 예정이라는 얘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또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정 갈등으로 의료계에 대한 정부 압박이 연일 거세지는 것을 고려하면, 개원가 세무조사 역시 그 일환일 것이라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A씨는 "추징금을 올리려면 규모가 있는 병원이어야 하고 그중에서도 의대 증원 투쟁 활동을 한 사람이 대상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심증이 있다"며 "의료계에 경종을 울리는 시범 케이스인 셈이다. 이 역시 담당 직원에게 물어봤지만, 절대 대답해주지 않더라"고 말했다.
■납세자의 권리인데…면허취소법에 조세 불복도 못해
그가 십수억 원대 추징금을 맞은 주된 원인은 법인카드 사용액과 이에 대한 가산세다. 그의 자택은 병원과 많이 떨어져 있고, 이 외에도 운영 중인 사업이 있어 카드를 사용한 지역이 광범위하다. 하지만 국세청은 병원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지역에서 사용한 내역에 대한 비용 처리를 모두 불인정했다는 것.
10년 가까이 병원을 운영했던 탓이 그 비용이 상당했고 이에 대한 가산세까지 붙으며 어마어마한 추징금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또 그는 이렇게 불인정된 항목 중에 불법적인 문제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A씨는 "명백히 불법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지만 비용 처리에 대한 불인정이 컸다. 다른 지역에서 사용한 비용이나 병원 전단지 홍보처럼 비용은 지불했지만 세금 처리를 제대로 못 한 항목들도 모두 불인정 됐다"며 "이런 비용이 모두 소득으로 분류되고 여기에 1년마다 5%의 가산세가 붙으니 추징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조세 불복 소송을 제기하기도 어려웠다. 조세불복제도는 국가의 조세권 남용을 막기 위해 납세자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제도다. 이의신청, 심사청구, 심판청구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해 구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A씨는 추징금이 커 조세 탈루에 엮인 상황이었고 소송 제기 시 검찰 기소가 이뤄질 수 있어 손 쓸 도리가 없었다는 것. 변호사 자문 결과 조세 불복 소송은 납세자가 승소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면허취소법으로 패소 시 면허가 취소될 수 있어 리스크가 더 컸다는 판단에서다.
A씨는 "아쉬운 점은 이렇게 추징금이 커지기 전에 세무조사를 했거나 카드 사용 거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며 "그동안은 융통성 있게 처리하던 부분도 갑자기 엄격해졌는데, 개인 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는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세무조사를 받아보니 면허취소법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세무 통지를 받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라며 "하지만 의사는 이에 대해 제대로 된 항의를 못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큰 병원은 운영하는 사람일수록 더 큰 비용을 쓰니 불리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미래 암울한 개원의들 "의료 가치 하락에 경제적 피해"
그는 이렇게 병원을 잃게 된 개원의는 다시 봉직의로 돌아가거나 대학병원에서 촉탁의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다시 개원한다면 세무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의대 교수에 지원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엔 어불성설이라고 답했다. 앞서 정부는 개원의 경력을 의대 교수 채용에서 100% 인정해주는 제도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개원의 경력은 교수처럼 학술적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을 가르칠 순 없다는 지적이다.
A씨는 세무조사 외에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의 현지조사가 급증했다고 우려했다. 이에 더해 개원가 규제를 담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는 등 개인 병·의원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또 그는 이 같은 정부 기조의 저변엔 개원가를 위축시켜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으로의 인력 유입을 꾀하겠다는 구상이 깔려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렇게 개원가 인력이 다른 종별이나 필수의료로 유입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A씨는 "만약 정부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간다면 의학적으로 긍정적인 순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개원가가 50만 일자리를 창출하는 의료산업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폐업하는 병·의원이 늘어나면 결국 직원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는 의료 분야의 경제적인 가치가 급감은 물론 국가 경제의 피해로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세무조사가 이뤄지고 있거나 이뤄질 예정인 개원의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또 특정 집단이 잘못된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이런 식으로 압박하는 것은 부당한 공권력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인터뷰 역시 이런 문제를 알리고자 응했다는 설명이다.
A씨는 "예전엔 추징 대상이 아니었던 항목도 이젠 굉장히 엄격하게 처리하고 있어 회계 처리를 더 확실하게 해야 할 것 같다"며 "세무사와 더 자주 소통하고 빌미를 주지 않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어떤 정책에 대한 특징 직역이 반대 목소리를 이렇게 국가 권력을 이용해 억압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사회적 합의로 풀어가야 할 일을 이런 식으로 누르기만 하는 것은 굉장히 전근대적인 발상이다"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