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학술팀 최선 기자
"이러다가 다 죽습니다."
드라마 대사가 아니다. 지난 2일 코엑스에서 열린 헬스테크 박람회에 참석했다가 모 업체 대표의 하소연에 30분을 붙들려 있었다.
요지는 이렇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수술 건수 감소 및 투자 중단이 '의료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직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쉽게 말해 의-정 갈등이 시작된 직후부터 매출이 급감해 30년간 잔뼈가 굵은 업체마저 재투자는 커녕 업체 운영도 빠듯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수 년을 투자해 올해서야 새로운 병원 내 물류 시스템을 선보였지만 이례적일 정도로 박람회를 찾는 병원 경영자들의 문의가 적어 적잖이 당황했다는 게 그의 하소연.
업체 대표는 정작 문제는 이런 영향이 장기적일 뿐더러 스노우볼처럼 커져 결국 생태계 구성원을 파괴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포기하고 떠나는 게 오히려 속 편하다는 걸 애둘러 표현한 셈이다.
"오늘만 산다"가 모토가 아니라면 직장인이 월급을 받아 탕진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어떻게든 저축하거나 투자하는 것은 미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에 해당한다.
기업이나 병원도 마찬가지. 이익을 모두 분배하지 않고 유보금을 남겨두는 것을 미래 환경 변화에 대비한 일종의 투자이자 보험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대학병원의 순이익률은 대체로 3% 안팎으로 매우 낮아 투자 여력이 크지 않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병원이 직접 겪게 되는 매출 상의 변화는 생태계 말단으로 갈수록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병원은 의료진뿐 아니라 다양한 직군과 산업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대한 생태계다. 제약사, 연구소, 의료기기 업체, IT 업체, 건축설비 업체, 청소소독 업체, 급식업체, 보험사, 금융업체, 미디어, 홍보대행사까지 맞물려 돌아간다.
치기 어린 시절에는 이런 구조가 보이지 않았다. 기업의 유보금을 '쌓아두는 돈'이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런 까닭이 지난 2월 시작된 의-정 갈등으로 인한 전공의 집단 사직과 이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지점이다.
정부가 병원을 둘러싼 거대한 생태계, 그리고 정책이 초래하는 생태계 구성원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더 이상 침묵을 유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의사와 환자만을 위한 결단이 아닌 모두를 위한 용단을 내려야 할 때다. 이러다가는 다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