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뿐 아닌 정치권도 대화 차단…"의정사태, 자괴감 느낀다"
"전공의 1만명 빠져도 큰 문제 없다는 정부, 의대증원 근거 찾기 어려워"
국내 보건의료 분야 최고 권위 석학 단체인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의대증원정책은 의료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하며, 의정갈등 장기화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의학한림원은 21일 성명을 통해 "무리한 의대증원 정책으로 인한 의정사태에 석학 의학자 단체로서 자괴감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의대증원 발표 초반부터 정부가 과학적 근거로 삼은 보고서에 대한 해석의 오류 및 의대정원 증원 집행정지 가처분에 대한 대법원 판결 과정에서 모순점을 지적하며 사법부 결정에 의한 해결을 촉구해왔다.
한림원은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는 의대증원 정책에 대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고 우려를 표명해 왔으나 법정 원로 석학단체로서 가급적 의사 표현을 절제했다"며 "하지만 의학교육평가원에 대한 조치 등 작금의 상황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 입장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의 의대증원 2000명 정책은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한림원은 "정부는 OECD 통계를 인용할 때 인구 당 의사 수만 언급하는데, 사실 그 숫자도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같은 OECD 통계에 제시된 많은 항목의 우수한 의료지표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한 정부가 함께 추진하는 의료전달체계 및 수가개조 개편, 국민들의 의료소비행태 변화 등이 중요한 변수"라며 "변수가 확정되지 않아 과학적 근거를 제대로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의료계에 과학적 근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당시 의사협회장은 의사 수 부족에 동의하지 않지만 국민과 정부의 우려를 감안해 350명 증원을 제시했다"며 "이를 거부한 것은 정부"라고 말했다.
또한 의학한림원은 의대증원 사태로 필수의료에 종사하던 의사들이 자긍심을 잃어 향후 대규모 인력부족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여러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필수, 지역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은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 자긍심과 보람을 찾는다"며 "하지만 의정갈등을 겪으며 이들은 '낙수과'로 하됐을뿐 아니라 각종 명령으로 옥죄며 노예화돼 근로 의욕이 꺾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래의 희망을 잃은 전공의와 학생들은 모두 이탈했고, 전문의들도 전직하고 있다"며 "정부는 사전에 이러한 사태를 충분히 예측했음에도 소위 의사 카르텔을 격파하겠다는 정면돌파로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림원은 "정부는 2025년 정원 절대 불변을 전제로 입시를 진행해 전공의와 의대생 등 의료계와 대화 단절을 지속하며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만 명의 핵심 인력이 빠져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대규모로 의대증원을 진행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외에도 한림원은 의대증원 정책이 불러온 의학교육에 대한 퇴행정 조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이미 의대생들이 휴학하고 8개월이 흘러 정상적 진급이 어려운데 정부는 이들을 최소한의 교육도 없이 강제진급시킬 계획"이라며 "당장 4개월 후 닥칠 7500명의 교육을 준비할 시간이 없다. 의학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은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결국 교수임용규정을 하향 조정하고 의평원의 기준을 완화하려 시도하고 있다"며 "십 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의학교육을 국제 의학교육 수준에 올려놓은 의학교육 인증체계를 근거가 약하고 절차도 문제가 있는 150% 증원을 위해 무너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한림원은 "의학교육 현장에서 집단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과대학 교수들만 걱정하는 의학교육의 앞날은 매우 위태롭다"며 "140년 전 근대의 의료와 의학교육을 이 땅에 도입한 이래 오랜 세월 어려움을 극복하며 쌓아 온 공든 탑을 무너뜨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 모두가 받게된다"고 밝혔다.
이어 "갑작스런 대규모 의대증원에 대한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됐다"며 "의대증원은 의료계뿐 아니라 정치권조차 대화를 차단당하고 있어 오히려 의료개혁의 절대적 걸림돌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