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3학년 김성재
투비닥터 홍보팀장
<쇼미더머니>로 유명한 래퍼 자메즈(Ja mezz)는 2018년 첫 정규 앨범 <GOØDevi>을 발매한다. 예술가로서의 자아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과 그에 일조한 경험을 직설적으로 뱉어내며 다다르는 결론 중 하나는, 선악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며, 세상에 정답은 없기에 오히려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수록곡 <LOVE IN HEAVEN>의 '아마 저기 천국에선 악마도 사랑을 하네'라는 가사에는 그러한 사고가 잘 함축되어 있다. 1년 후인 2019년, 그는 두 번째 정규 앨범으로 사랑에 대한 메시지가 가득 담긴 <The pink album>을 발매한다. 앨범 소개 글은 다음과 같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랑이란 말은 아무리 외쳐도 과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다소 유치해 보이고 순진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특히나 '요즘 같은 세상'에는 더더욱 그렇다. 계층, 인종, 세대, 젠더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첨예한 대립의 뉴스를 목도할 수 있으며, 분노한 군중들이 만든 혐오의 단어가 팽배해 있는, '요즘 같은 세상' 말이다.
생각이 다른 존재를 만났을 때 서로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의견을 개진하고 상대도 그리하여 합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최근의 갈등 양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적으로 인식되는 순간 무조건적 혐오를 주고받는 행태뿐. 사실관계가 어떻건 간에 이름표가 달려있기만 한다면 누구든 사냥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보며 사람들은 작금의 세태를 '혐오의 시대'라고 칭하곤 한다. 모든 남자는 '한남', 모든 여자는 '한녀', 모든 의사는 '의주빈'이 되고만, 혐오의 시대.
그렇다면 2018년 일종의 영감으로 작용할 뿐이었던 '사랑'이 1년 후 자메즈에게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무기가 되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 어떤 인터뷰에도 그러한 도약이 가능했던 논리적 전개는 다뤄지지 않았기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의 생각에 열렬히 찬동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랑'이 이 시대의 해법이라는 그의 주장을 자전적 이야기를 근거 삼아 지지하고자 한다.
나는 2021년 휴학계를 제출했다. 유급이나 군대, 질병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기에 무수한 반대에 부딪혔고 나 역시도 고뇌했지만 2020년 시작된 1년의 고민 끝에 결국 휴학계를 제출했다. 누구에게나 그러하겠지만 결심부터 결말까지 결코 단순하지 않은 기승전결이었기에 누군가가 휴학에 대해 자세히 물을 때면 뭉뚱그려 답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결과적으로도 이력서에 남길 수 있는 것은 카페에서 음료를 제조한 반년과 꾸준히 했던 봉사활동밖에 없었지만, 그 목적 없던 1년여의 가장 큰 성과는 따로 있었다.
원인을 소상히 밝히기는 어렵지만, 휴학 이전에는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기 혐오적 성향을 가지게 되는 원인은 각자 다양하겠지만 행동 원리는 공통적으로 단순한데, 스스로에게도 못하는데 타인에게 실현할 방법을 알 리가 없으니 타인을 사랑하고 신뢰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불안하고 두렵기만 한 장소가 된다.
불안을 줄이려면 외부와의 교류는 피상적으로만 유지해야 하고, 두려움을 줄이려면 타인을 헐뜯고 배신하며 나의 우월성을 자위해야 한다. 이 모든 톱니바퀴는 서로 양성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더욱더 크게 맞물린다. 타인을 믿지 않으니 소통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으니 더 불신한다. 오히려 타인을 깎아내리고 배반하며 우위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늑하기까지 하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직접 가족, 친구, 연인, 타인 어떤 것도 가리지 않고 나와 다른 부분이라면 모조리 공격하며 겪은 일이니 확실함을 보장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때 누군가를 깎아내릴 때 겪는 부정의 감정, 불신에 동반되는 신경증, 증오의 표현, 배신의 불쾌함 등 모든 것은 결국 부메랑처럼 나를 향하고 있던 것이었다. 소통을 거부하고 내 안에 나를 가둘수록, 그 안에서 외부를 향한 불신과 증오를 뱉으면 뱉을수록, 사실 진정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어가는 것은 나였다.
타인을 혐오하는 것은 스스로를 혐오하는 행위와 동일했고 나는 안에서부터 썩어갔다. 그런 나를 악순환의 고리에서 꺼내준 것은 만화에서나 봤던 단어 '사랑'이었다.
첫 단추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계획이라곤 없던 휴학 기간이었기에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마다치 않고 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닫자 그들의 이야기는 조금 더 흥미롭게 들렸고, 세상엔 사람 수만큼의 생각이 있음을 깨달았다.
옳고 그른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는 불완전한 나 또한 긍정될 수 있는 것이었다. 경험을 통해 얻은 나의 선호, 나의 윤리, 나의 욕구에 대한 정보는 세상에 똑바로 설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나는 나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겨우 세상에 진정한 나를 내세울 자신이 생겼기에 그제야 소통을 회피하기보다는 다르더라도 맞서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적인 일부터 업무까지 모든 영역의 갈등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며 존중하려 노력했다. 허나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불신이 주는 거짓된 편안함에 익숙했던 데다가, 무엇보다도 수학문제처럼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백 번의 일화 속, 어느 날은 기분이 좋아서, 어느 날은 해야 할 일이 급해서, 어느 날은 상대가 소중해서, 그런 날에는 먼저 감싸 안는 것에 성공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없었지만 그런 일상이 조금씩 쌓여갔다. 물론 어려움을 뚫고 손을 내밀었을 때가 모두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먼저 듣고, 먼저 포용하고, 먼저 이해하는 것에 성공하였을 때, 단 한 가지 확실하게 발생하는 현상은, 머릿속에서 회전하던 부정의 감정과 신경증이 사라져 나 자신에게 안식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운 좋게 상대방도 호혜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제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생각이 달라 대립하고 갈등했던 대상을 이해하고 소통하여 서로를 용서하는 순간 겨우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알아차렸다. 똑같이 두렵고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가시 돋친 나의 존재조차 먼저 사랑하고 포용해주었던 이들의 존재를. 결국 그들이 나의 수많은 삽화에서 내 손을 함께 잡아주었기에 내가 사랑할 수 있었음을.
나는 여전히 미숙해 때때로 무언가를 혐오하지만, 혐오는 반격의 메아리만을 낳을 뿐 어떤 것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반면, 사랑은 역설적으로 스스로에게 이로운 행위였다는 점만은 잘 알고 있기에, 들으려, 존중하려, 끝내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랑은 현실에 만연해 있지 않다.
2024년의 뉴스는 여전히 혐오와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 현실에서 신뢰의 너머에 배반이 따라온 이야기를 수없이 들을 수 있는 이유는, 나만 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며, 혐오가 쉽고 자극적이기 때문이고, 사랑은 너무나도 어렵고 귀찮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이해하고 소통하자는 문장은 다소 이상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하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의 저서 <협력의 진화>에 따르면 게임이론에서 상대를 기꺼이 용서할 수 있는 전략인 팃포탯(Tit-for-Tat)이 가장 성공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진화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의 저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 따르면 협력과 친밀함이 진화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라는 등의 과학적 근거도 충분히 언급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사실 그냥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랑이 얼마나 좋은지를. 또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사랑으로 지탱되고 있는지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작전과 무시로 일관하는 대응은 증오의 전염을 막지 못했기에, 이제 남은 방법은 하염없이 미련해 보이는 두 글자, 사랑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감히 말하건대 모두가 이따금 꿈꾸곤 할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세계를…
2023년 자메즈는 2집 <The pink album>의 후속편 격으로 3집 <더 찐한 핑크 앨범>을 발매한다. 노랫말 속에 담긴 사랑의 농도가 더욱 깊어진 것으로 보아 그의 생각은 견고해지기만 한 듯하다. 가족, 친구, 연인, 스스로, 심지어는 세상까지도 사랑하려 노력하는 그는 수록곡 <n 3A07 ! " os>의 말미에서 이렇게 전한다.
'자존심, 동정심, 두려움, 오만과 편견, 과거의 트라우마, 입에 차마 담기조차 힘든 욕설, 오해와 진실, 거짓말 섞인 변명, 다 뒤로 하고 입 밖에 튀어나올 건, 이 말밖에 없어' 그 말이 무엇인지는 어느 날 우연히 제목을 뒤집어 본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