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부외과 알리기에 진심…자진해서 만화 감수 요청"

발행날짜: 2025-01-17 05:30:00
  • [학회라운지] 대한수부외과학회 박일중 고시이사(부천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
    <수부외과> "한국어판 2권부터 감수…한 권당 200군데 교정·주석"

일본에서 열린 수부외과학회 학술대회에 참가했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근엄할 것만 같은 학술대회 행사장의 한편, 한 부스에서 수부외과를 소재로 한 만화가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릎을 친 순간이다. 일반 대중에겐 용어 조차 생소한 '수부외과'를 알리는데 굳이 방법론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이른 것. 오히려 만화라는 친근한 미디어라면 수부외과 홍보에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어판 발매 소식을 들었다. 자진해서 출판사에 연락해 감수에 나선 것도 '이왕이면 제대로 알리자'라는 인식에 맞닿아 있다. 의학 전문 만화 한국어판의 감수를 맡은 대한수부외과학회 박일중 고시이사(부천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의 이야기다.

■한 권당 200군데 교정·주석…자진해서 감수 요청

만화 <수부외과> 원작은 일본의 인기 만화 주간지에 연재되고 있는 메디컬 드라마다. 수부외과는 팔, 손, 손가락 등 잘린 부위의 접합수술을 관장하는 과. 타이틀이 드러내듯 수부외과 의사를 전면에 내세워 병원에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현재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7권까지, 한국에서는 3권까지 출간됐고 박일중 이사는 지난해 9월 말 출간된 2권을 시작으로 모든 단행본에 대한 감수를 맡게 됐다.

시작은 일어판 <수부외과>의 구입에서 비롯됐다.

박 이사는 "일본 학술대회장에서 수부외과 만화책을 판매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며 "대중들도 잘 알지 못하는 세부적인 내용을 어떻게 만화로 승화시켰는지 궁금증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일어판의 감수는 친분이 있는 일본 수부외과 교수가 맡았는데 향후 글로벌 판본이 발매된다는 걸 귀띔해 줬다"며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어판이 나와 바로 구입해 읽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래도 의학전문가가 번역을 하지 않은 까닭에 의학 전문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거 직역한 부분이 눈에 띄였다"며 "예를 들면 대사 중에 '수부외과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전이 없을 것'과 같은 부분이 그렇다"고 설명했다.

수부외과학회 박일중 고시이사(부천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가 의학 전문 만화 수부외과의 한국어판의 감수를 맡았다.

진전(振顫)은 떨림을 뜻하는 한자어. '진전이 없을 것'이라는 표현으로는 의미 전달이 어렵다. 원작의 느낌을 살린다면 '손 떨림이 없을 것'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게 박 이사의 언급.

그는 "수부외과에 대한 만화인데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면 오히려 대중을 상대로 한 인식 저변 확대에 장애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주저 없이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감수를 맡겠다고 자청했다"고 밝혔다.

처음엔 편집국도 당황했다. 이런 요청이 들어온 것도 처음이고 감수를 맡긴 것도 유례가 없었기 때문. 감수의 필요성에 대한 의아함은 교정 원고를 받아본 후 확신으로 변했다. 한 권당 200군데에 달하는 교정 및 주석을 보고야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박 이사는 "한 권을 감수하려면 보통 하루 3시간 정도를 할애해 꼬박 일주일을 매달린다"며 "솔직히 이를 통해 돈을 번다는 개념보다는 순전히 수부외과의 저변 확대를 위한 봉사 개념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번역은 반역…"재미와 전문성 균형 잡기, 하나의 도전"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번역 과정에서 원문의 의미나 뉘앙스가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다. 원문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언어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원작자의 의도나 감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나온 것이다.

특히 시나 문학처럼 뉘앙스와 미묘한 표현이 중요한 작품일수록 번역 과정에서 원문의 깊이나 의미를 완전히 살리는 것이 어렵다. 이런 점에서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은 번역의 한계와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 일상 용어가 아닌 의학 분야에서만 통용되는 메디컬 분야 컨텐츠라면 '반역' 가능성이 올라간다.

박일중 이사는 "원작 자체가 실제 의사가 여러 수부외과 의사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고증이 잘 돼 있다"며 "만화 장르라는 특성상 재미 요소에 빠지기 쉬운데 전문 영역에서의 사실성과 디테일한 요소의 현장감, 현실성 사이에 균형이 절묘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 까닭에 대중들에게 문맥적인 흐름을 잃지 않게 하면서 수월하게 읽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며 "쉽게 이해 되면서도 의학적 사실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일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다"고 밝혔다.

박일중 이사는 수부외과 2권부터 감수를 맡았다. 올해 국내에선 7권까지 발간될 예정이다.

의사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단어이자 용어일지라도 과연 독자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관점으로 고민을 이어나갔다는 것. 다양한 주석을 통해 수부외과 자체의 이해도를 높이는 역할도 잊지 않았다.

박 이사는 "마이너한 내용이기 때문에 소규모 출판사에 나온 만화로 오해할 수 있지만 원작은 명탐정 코난, 원피스를 연재한 일본의 3대 잡지사인 소년 선데이에서 나온 것"이라며 "현재 7권까지 발매가 될 정도로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했고, 향후 TV 드라마로도 제작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의과대생들이 해당 만화를 보면서 수부외과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는 피드백을 많이 준다고 들었다"며 "한국에서도 메디컬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전문과, 특정과의 주가도 덩달아 뛰는 것처럼 수부외과 한국어판이 재미적인 요소를 떠나 수부학과라는 전문과 자체의 인지도 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그간 수부외과 의사로 살면서 수부외과가 뭘 하는 곳인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공존했다. 이번 감수 작업은 사람들에게 수부외과를 알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기왕이면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염원의 발로라는 것.

딱딱하고 고지식한 인지도 향상 방법론 대신 학회 차원의 말랑말랑한 접근도 이뤄질 전망이다.

박 이사는 "작년 대한수부외과 연수강좌 때도 만화 부스를 설치해 판매하도록 다리를 놔 준 적이 있다"며 "이런 과정 자체가 미래의 후배들이 될 의대생들에게 관심을 환기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부외과 의사로서 항상 수부외과의 미래 비전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며 "공부할 것도 많고 어렵기도 해서 수부외과를 전공하면 우스갯소리로 외과 영역의 해결사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해결사가 되고 싶으면 수부외과로 와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흥미나 관심이 생겼다면 만화 수부외과를 볼 것을 추천한다"며 "손은 우리 몸에서 가장 복잡하고 섬세한 기관이기 때문에 이들을 접합하려면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누군가에게 새 생명을 주는 것에 비견될 정도로 보람된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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