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휴학을 통한 성찰

단국대학교 의대 본과 3학년 박정은
발행날짜: 2025-03-31 05:00:00
  • 단국대학교 의대 본과 3학년 박정은

[메디칼타임즈=단국대학교 의대 본과 3학년 박정은] 우리 집엔 수학의 정석 같은 다이어리가 많았다. 흑심 자국이 삼월을 넘어서는 다이어리를 찾기가, 중고서점에서 집합 단원 이상으로 필기 된 수학의 정석을 찾는 일만큼 어려웠다. 그러다 작년에 드디어 (혹은 기어코) 나는 일 년간의 일기 쓰기 완주에 성공했다. 디지털로 기록해 아날로그 다이어리들은 이번에도 아쉽게 되었지만.

최근 궁금한 마음으로 내가 쓴 일기를 들춰봤다. 그새 많은 일, 생각, 감정이 시간을 메웠기에 몇 개월 전의 내가 얼마나 낯설까 설레기도 했다. 슥 훑자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5월, 6월, 7월, 10월… 성장 이야기를 하지 않는 달이 없었다.

귀신이 씌어도 어떤 이름을 가진 것이 씌어야 이렇게 줄곧 '성장, 성장' 염불을 외우려나 고민을 잠깐 해봤다. 일기의 첫 장에서 내가 세운 가장 높은 목표는 좋은 성적을 받아 큰 병원에서 수련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나는 더 큰 꿈을 진심으로 이루고 싶어 했다.

또 하나 발견한 사실은 나의 고민의 결이 항상 비슷하다는 것이다. 성장을 향한 열망과 다른 중요한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주기적으로 풍랑에 휩싸인다. 벌써 올해 새 일기장에서 비슷한 갈등 구조를 가진 고민이 등장했다. 부끄럽지만 함께 페이지의 내용을 엿보러 가자.

휴학 중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경험, 독서는 내 진로의 청사진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특히 내가 해외 수련이라는 가능성을 고려하게 된 것은, 모순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스스로에게 큰 충격이었다.

나는 금요일만 되면 본가로 갔다가 월요일 아침에서야 수업시간을 맞춰 학교로 내려왔을 만큼 유독 가족애가 끈끈했다. 이것이 한반도 해안선을 따라 결계를 친 것도 아닐진데, 나는 한국을 벗어나 산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탄생과 죽음은 내게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그런데 내 세상이 넓어지자 '가장 먼저 적용되는 신약, 합리적인 규제 체계, 열려있는 연구 환경'이 실로 얼마나 매력적인 조건인지 강력하게 체감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 안에서 '외국에서 살 수도 있는 거지 뭐'하는 입장이 등장했다. 곧바로 '가족은?'이라는 질문이 이제껏 그랬듯 간단히 반동을 제압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놀랍게도 내 머릿속에서는 성장하기 위해서라면, 더 큰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라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고통을 불가피한 희생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 우세했다. 스스럼없이 성장이라는 가치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런 낯선 내 모습에 곧 죄책감과 두려움, 회의감이 수묵처럼 번졌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해? 무엇을 위해서? 성장만으로 삶이 충족될 만큼 이 가치가 절대적인가? 생각이 충돌하고 갈등이 발생해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지금 알을 깨고 있어서 아픈 건지, 알이 아닌 것을 깨고 있어서 아픈 건지 혼란스러웠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무한경쟁 시대는 성장을 신앙처럼 권장한다. 미디어는 꿈을 크게, 그리고 거침없이 꾸는 것이 논의의 여지없는 선이라고 주입한다. 허풍 같은 목표를 내뱉고 끝내 그를 실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경제경영 매대에 놓여 있을 뿐, 독자의 태도를 보면 신화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꿈이 자애롭다는 생각은 순진한 믿음이다. 꿈이 주는 황홀한 이미지에 지나치게 빠지면, 꿈은 그사이 우리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슬쩍 차간다. 바로 현실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이다. 그것을 빼앗기면 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현재의 행복과 즐거움을 계속해서 미루게 된다. 그리고 미룬 것들은 친절하게 적립되지 않는다.

전부 소멸될 운명일 뿐이다. 겸연쩍은 고백으로 예를 들면, 내 주변에는 성장과 일에서 순수한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이 편향성은 내가 그런 친구들을 찾아 나선 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성향을 가진 친구들과의 만남을 미루고 늦추다 결국 잃게 된 소산이기도 하다.

하나의 가치는 세상을 바라보는 제한된 렌즈일 뿐, 결코 절대적 진리가 될 수 없다. 인간의 삶은 다채로운 색상이 어우러진 팔레트다. 사랑, 신의, 친절, 지적 탐구, 예술적 감상, 유머, 자연과의 교감 - 이 모든 경험이 성장과 “함께”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충만한 삶이 완성된다.

성장은 이 가치들 사이에서 특별히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위치에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위치 조정에 실패하고 하나의 가치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인생의 결말은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안전하게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의 터널을 지나 내 일기장을 들춰보며, 나는 뜻밖에도 내면의 갈등 패턴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현재의 행복을 미루는 습관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내 삶에 자리 잡았는지 깨닫고, 현재는 이를 쫓아내 그 자리에 여유를 다시 심으려 노력 중이다.

무한히 이어지는 성장의 계단을 오르며 그 속도를 유지하거나 가속하는 데 집착하기보다, 이제는 계단 곳곳에서 멈춰 주변을 둘러볼 여유와 지혜를 얻게 된 것이다. 성장은 여전히 내게 중요한 가치이지만,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않는다. 현재에 단단히 뿌리내린 꿈만이 진정으로 실현되며, '최대'가 아닌 '최선'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당장 깨달음이 생생하더라도, 결국 가치 사이 최적의 균형점을 잡기 위한 흔들림은 삶의 전반에 걸쳐 계속될 것이다.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한쪽으로 기울더라도, 하지만 나는 이 두 세계 사이에서 나만의 중심을 찾아가는 여정을 명랑하게 이어갈 것이다. 삶의 방랑자로서, 목적지 만큼이나 그 길 위에서의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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