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라운지] 대한폐고혈압학회 정욱진 회장(가천대길병원 심장내과)
"건강강좌 개최 지원 당근책…의료진 인식 개선→조기 진단 기대"

보통의 건강 강좌는 환자나 가족 같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대한폐고혈압학회가 11월 한 달간 전국에서 진행하는 ‘폐미리 희망 캠페인’은 성격이 좀 다르다. 강좌를 통한 인식 개선, 인지도 향상 대상에 의료진까지 포함한 것. 의료진조차 잘 모르는 병, 폐고혈압의 조기 인지율을 높이겠다는 목적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학회가 건강강좌를 개최하고자 하는 기관에 신청서를 받아 강연료부터 인쇄, 대관료, 배너 제작비 등을 지원키로 했다. 건강강좌 결과 보고서를 기반으로 '캠페인 우수 진행 기관'에 시상한다는 점 역시 강좌의 성격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
전국 강좌를 기획한 폐고혈압학회 정욱진 회장을 만나 강좌 진행의 배경과 기대 효과 등에 대해 물었다.
■"의료진들조차 모른다…진단까지 평균 3년"
폐고혈압은 폐동맥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질환으로, 초기에 숨참, 피로감 같은 비특이적 증상만 나타난다. 감기, 천식, 심장질환 등으로 오인되기 쉽고 이는 진단 지연으로 이어진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심초음파나 우심도자 같은 정밀검사가 필요한데, 이런 검사까지 연결되지 못해 진단은 수년씩 늦어져 '골든타임'을 허무하게 날려버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
일부 환자는 계단을 오르기 어려울 정도의 호흡곤란을 겪으면서도 심장검사·폐기능검사에서 정상이라는 말만 반복해 들으며 1~2년을 허비하는 경우도 흔하다.

정욱진 대한폐고혈압학회 회장(가천대길병원 심장내과)은 이번 캠페인의 출발점을 '인지도 부족'으로 꼽았다.
그는 "폐동맥고혈압 환자는 증상 발생 후 진단까지 평균 3년이 걸리고 병원을 찾아간 뒤에도 1년 반 이상 지나서야 제대로 진단된다는 미국의 보고가 있다"며 "국내 상황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도 폐고혈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라며 "증상은 있는데 진단이 이뤄지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고혈압은 진단 과정 자체가 까다롭다. 흉부 X-ray나 폐기능검사 같은 기본 검사에서는 정상 소견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혈액검사만으로도 단서를 찾기 어렵다.
결국 심초음파나 우심도자처럼 보다 고난도의 심폐 순환 평가까지 이어져야 진단이 가능한데, 1·2차 의료기관에서는 이러한 정밀검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의료진이 초기 단계에서 질환을 떠올리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정욱진 회장은 "환자가 계속 숨이 찬다고 해도 심장도 괜찮고 폐도 괜찮아 보이면 의사가 폐고혈압을 떠올리지 못한다"며 "이유 없이 숨이 차는 환자를 보면 심장질환, 폐질환, 빈혈 등이 아니면 폐고혈압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진들의 진단 프로세스에 폐고혈압 가능성을 추가하기 위한 기제가 이번 전국 건강강좌"라며 "일반 강좌가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번 강좌는 의료진 주도의 강좌를 통해 의사들의 인식 개선을 촉구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했다.
의료진의 인식 변화가 곧 조기 발견으로 연결되고, 조기 발견이 난치성 질환의 예후를 바꾸는 핵심이라는 것.
■질환 인지율 개선→조기 진단·치료→예후 개선 선순환
폐동맥고혈압은 치료가 어려운 질환이지만 최근 치료 옵션이 늘며 생존율이 크게 개선돼 왔다. 한국 등록 연구에서는 PAH 환자의 1년 생존율이 약 93%, 3년 생존율은 80%대, 5년 생존율은 약 71% 수준으로 유럽 대규모 레지스트리(COMPERA)의 5년 생존율(약 71%)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일본(95%)와는 격차를 보인다.
정 회장은 "폐고혈압은 조기진단과 환자 아형 평가, 적절한 초기 치료 전략 선택이 예후를 좌우하는 대표적 질환"이라며 "의료진의 인식 개선과 이를 통한 조기 진단, 초기 적절한 치료가 이어진다면 생존율 제고는 어렵지 않다"고 자신했다.
그는 "이번 캠페인을 대학병원 중심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전국 주요 의료기관으로부터 건강강좌 신청을 받아 15개 기관을 선정했다"며 "선정 기관에는 강의 자료와 함께 강연료 및 실비를 최대 150만 원까지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강좌가 끝난 뒤에는 결과 보고서를 기반으로 우수 기관을 선정해 시상해 의료진들의 참여 열기를 고조시킬 계획"이라며 "11월은 세계 폐고혈압의 달로 지정돼 있어 이번 한 달을 집중 강좌 진행의 달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폐고혈압 조기 진단이 환자의 예후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증거는 최근 학계에서도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진단이 지연된 환자 집단은 진단이 빠른 환자에 비해 이벤트 발생율(event-free survival)이 유의하게 낮았고, 통계적으로 보정한 뒤에도 진단 지연이 불리한 예후와 독립적으로 연관된다는 연구에 이어 조기 치료의 타당성을 뒷받치는 유럽 및 기타 레지스트리 데이터도 존재한다.
비침습적 진단 및 선별을 기반으로 한 조기 개입이 장기 생존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내용이 여러 문헌에서 반복된다. 조기 기능 상태(WHO 기능 등급 I/II)의 환자들은 후기 등급(III/IV)에 비해 장기 생존율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 프랑스과학자들이 참여한 레지스트리 코호트 역시 WHO 기능 등급 I 또는 II 환자의 사망률이 더 낮았음을 보여, 이는 조기 발견 후 적절한 치료가 생존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든다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번 캠페인은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국내 폐고혈압 진단 지연을 평균 3년에서 단축시키는 데 직접적으로 목적을 둔 사실상 '조기진단 개입 프로젝트'에 가깝다는 게 그의 판단.
정 회장은 "폐고혈압을 미리 찾고 제대로 치료하면 환자뿐 아니라 가족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며 "이번 캠페인을 통해 의료진과 대중 모두의 인식 수준을 끌어올리고, 그 결과로 더 많은 환자가 골든타임 안에 진단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