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한 곳만 '255회' 위반…불법의료광고 관리 체계 구멍

발행날짜: 2025-11-25 12:15:00
  • 미심의 광고 87%·반복 위반 182곳… 사전심의 중심 규제 한계
    기준 전달 부재에 의료인 혼선 가중, 규제 의무만 남은 기형적 체계

의료기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의료광고도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의료광고가 원칙적으로 금지됐지만, 2007년 의료법 개정으로 허용 범위가 넓어지며 '원칙적 허용·예외적 금지;-'라는 네거티브 규제가 도입됐다.

그러나 제도적 완화 이후 실제 현장에서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의료인에게 제공되는 교육과 정보가 턱없이 부족해, 규제를 지키려 해도 명확한 기준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로 인해 법률 사각지대가 커지고, 의료광고 혼선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 불법의료광고 87% '미심의'…현장 이탈한 사전심의 제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최근 분석한 '의료광고 관리방안 연구' 자료에 따르면, 불법 의료광고의 87.09%가 사전심의 자체를 거치지 않은 '미심의 광고'로 드러났다.

의료법이 '심의 대상 매체에 광고할 경우 반드시 사전심의'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실제 시장에서는 대부분의 광고가 제도 밖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셈이다.

특히 SNS·유튜브·포털 광고 등 디지털 플랫폼에서 제작·노출되는 광고는 속도와 양에서 심의 체계가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확장됐고, 그 틈이 곧 불법광고의 온상이 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반복 위반의 구조적 방치였다. 분석 결과, 불법 의료광고를 적발당한 기관 중 일부는 최대 255회까지 동일 기관이 위반을 지속한 사례가 확인됐다.

대중에게 노출되는 불법 의료광고의 87.09%가 사전심의 자체를 거치지 않은 '미심의 광고'로 드러났다.

10회 이상 반복 위반한 기관만 해도 182곳에 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위반 기관에 대한 실제 처분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협회들이 모니터링 후 '1차 시정 안내' 공문을 보내는 단계에서 사건이 사실상 종결되는 경우가 절대다수였고, 지자체 보건소로 넘어가 행정조치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위반해도 손해가 없고, 반복해도 제재가 약한 구조가 그대로 방치되면서 규제의 실효성은 빠르게 증발하고 있다.

심의기구는 인력 부족으로 모니터링보다는 사전심의 대응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보건소는 광고 문구 하나하나를 해석해야 하는 현실적 부담에 막혀 적극적 단속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새로운 광고가 게시되며 기존 규제 체계를 빠르게 넘어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규제 주체의 역량과 광고 환경의 속도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의료광고 관리 체계는 구조적으로 공백과 지연을 반복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이나래 연구책임자는 "자율심의기구는 최근 자발적인 후기를 가장한 치료경험담, 비급여 진료 비용을 할인하거나 면제하는 내용 등의 의료광고를 중심으로 점검하고 있다"며 "하지만 제한된 인력 및 자원으로 인하여 증가하고 있는 유해성 의료광고에 대한 자율심의기구의 모니터링은 미비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불법의료광고 위반 사항 지도 및 감독 권한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관할 보건소가 갖고 있기 때문에 단속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며 "또한 광고 문구마다 각 지자체의 개별 판단이 필요하고 인력난 등을 겪고 있어 적극적인 단속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 광고 규제의 빈칸… 의료인이 몰라서 위반하는 구조

의료광고 규제를 둘러싼 또 하나의 문제는, 규제를 지켜야 하는 의료인들에게 제공되는 정보와 교육이 지나치게 빈약하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설문에서 의사 96.2%가 '규제를 준수하고 있다'고 응답했지만, 정작 '규제 이해에 필요한 교육·홍보가 충분하다'고 답한 비율은 14.4%에 불과했다.

규제를 지키겠다, 지키고 있다고 말하는 의료인의 태도와, 그들이 실제로 받는 정보의 양 사이에 뚜렷한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의료광고 규제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의료인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광고가 매년 새로운 플랫폼과 형식으로 변주되는 상황에서, 의료인은 제도를 정확히 이해하기보다 '대충 감으로' 규제선을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결국 규제 준수라는 행위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접근성의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의료인의 혼란은 단순한 인식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허점에서 비롯된다.

현행 심의 기준과 법적 기준은 항목은 비슷하나 해석이 미묘하게 다르고, 매년 늘어나는 사례별 가이드라인을 빠르게 확인할 통합 창구도 없다.

이 때문에 일부 의료인은 무심코 금지 표현을 사용하거나, 사전심의 면제 기준을 오해해 광고를 게시했다가 뒤늦게 위반 통지를 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게다가 의료광고 규제는 제도 자체가 방대해 의료인의 일상적 진료환경에서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환자를 치료하고 병원을 운영하는 가운데, 새로운 규정과 판례를 추적하고 최신 심의 기준을 숙지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의료계에서는 의료 광고 규제의 정확한 기준을 알려주는 곳이 없다는 불만이 꾸준히 누적돼왔다.

서울시개원내과의사회 관계자는 "교육과 안내를 책임지는 국가, 심의기구, 지자체의 기능 부재가 본질적 문제"라며 "의료광고 규제가 현장에서 제 힘을 발휘하려면 의료인이 규제를 알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 병행돼야 하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주변 위반 사례 중에는 고의가 아니라, 기준을 제대로 몰라서 발생한 경우도 적지 않다"며 "그런데도 현 체계는 단순히 위반 여부만 따질 뿐,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광고 환경에 맞춘 안내나 업데이트가 거의 없다. 의료인이 현장에서 혼란 없이 운영하려면 규제 정보가 실시간으로 보완·제공되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해외는 실시간 모니터링-한국은 사전심의 중심…규제 격차 벌어졌다

해외 주요국의 규제 사례를 살펴보면, 한국 의료광고 관리 체계가 어디에서 뒤처지고 있는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난다.

일본은 의료기관 웹사이트·인터넷 광고를 대상으로 하는 전담 모니터링 조직을 운영하며, 국민 누구나 허위·과장 광고를 신고할 수 있는 온라인 신고 시스템을 별도로 구축했다.

이는 광고의 양과 속도가 빠른 디지털 환경을 전제로 한 구조다. 실제로 일본 후생노동성은 매년 위반 사례를 정리해 공개하고, 이를 교육·가이드라인 개정에 활용한다.

규제가 '사전심의' 중심이 아닌, 지속적 모니터링과 정보 공유에 기반한 순환형 시스템에 가깝다.

호주는 규제 체계의 방향성이 더욱 선명하다. AHPRA가 의료광고를 관리하며, 위반 유형을 분류하고, 실제 조치 내용을 담은 연례 보고서를 공표해 시장에 강한 경고를 보낸다.

특정 의료인이 광고 규정을 반복적으로 위반할 경우, 의료면허와 직접 연계될 정도의 강도 높은 제재도 가능하다.

또한 성형·미용 분야는 별도 가이드라인을 두어 전후 사진, 시술 영상, 이상적 신체 이미지 조장 등 위험 요소를 엄격히 제한한다. 광고로 인해 환자가 오인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예방 중심 모델을 지향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의료광고 규제를 '허용 기준'이 아닌 '금지 원칙' 중심으로 설계했다. 전후 사진, 체험담, 비교 우위 표현 등 대부분의 위험 요소가 아예 금지 대상이며, 온라인·SNS 광고 역시 동일한 수준으로 규제한다.

의료기관은 광고를 게시할 때 치료비용, 부작용, 치료기간 등을 명확하고 완결된 정보로 기재할 의무를 갖는다. 이러한 엄격한 기준은 한편으로는 숨이 찰 정도로 촘촘하지만, 최소한 환자가 광고를 보고 오인할 여지 자체를 줄이는 데는 확실한 효과가 있다.

이 세 나라의 공통점은 의료광고 규제를 디지털 시대에 맞는 모니터링과 투명성 확보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사전심의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고, 심의 이후의 관리·추적·정보 공개는 사실상 공백 상태에 가깝다.

의료계 관계자는 "인터넷 광고의 양적 폭증과 새로운 광고 방식의 등장을 고려하면, 한국의 현행 체계는 이미 한계선에 도달했다"며 "이제는 심의 기준의 확대 여부보다 전담 모니터링 조직 구축, 데이터베이스 기반의 위반 관리, 플랫폼 사업자 책임 강화 등으로 규제의 축을 이동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정책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