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백 원주의과대학 교수

기후변화는 이제 과학자들의 경고 속에서 머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체감하는 현실이 되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지구의 평균 기온은 꾸준히 상승해 왔고, 기후변화를 위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4차 보고서에 앞으로도 최소 1.8℃에서 최대 6.4℃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예측하였고, 최근의 보고서는 이 보다 더 높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상승은 단순히 계절이 조금 더 덥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생태계와 인간 사회 전체를 흔드는 거대한 변화이며, 특히 우리의 건강과 직결된 위협이다.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의 여파로 폭염과 재난, 감염병, 대기오염, 환경성질환 등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단일 국가나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다양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기온 상승이다. 여름철 평균 기온이 2~3℃ 높아지면 폭염의 빈도가 두 배로 늘어난다고 한다. 평소보다 높은 기온이 장기간 이어지면 인체는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다가 결국 열경련, 열피로, 일사병 등과 같은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노인과 만성질환자 그리고 건강 취약계층은 더욱 민감하다.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서는 닷새 동안 최고기온이 34~40℃에 이르는 폭염이 발생했는데, 이 기간 동안 사망자는 평소보다 85% 증가했고 병원 내원율도 11% 늘어났다. 영국에서도 폭염으로 호흡기질환 사망률이 12% 이상, 심장질환 사망률이 11% 이상 증가했다. 우리나라 역시 기온이 30℃를 넘으면 사망률이 크게 증가하며, 기저질환자의 응급실 방문 및 입원률도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기온과 사망률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U자 또는 J자 형태를 보이는데, 폭염 상황에서 급격히 증가한다.
기온 상승은 폭염만이 아니라 홍수, 가뭄, 태풍과 같은 극단적 기상현상의 빈도와 강도를 높인다. 이런 재난은 사망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주거지를 파괴하고 생필품과 깨끗한 물을 부족하게 만들며, 질병과 부상을 유발한다. 동시에 이런 재난은 정신 건강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집과 가족을 잃거나 재산을 파괴당한 사람들은 극심한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고,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확실성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재난은 단순한 물리적 피해를 넘어 사회적, 심리적 문제까지 일으키며 지역사회 전체의 회복력을 약화시킨다.
기후변화는 또한 감염병의 확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기온과 습도, 강수량의 변화는 병원체와 이를 옮기는 매개곤충의 서식지와 번식 속도를 바꾸어 질병의 전파 양상을 바꾼다. 모기를 매개로 하는 말라리아나 뎅기열, 쯔쯔가무시병, 설치류가 옮기는 렙토스피라증과 발진열 같은 감염병이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기후와 관련된 감염병이 늘어나는 반면, 기후와 관련이 적은 질병은 감소하는 추세다. 감염병의 발생은 기후뿐 아니라 삼림 파괴, 도시화, 댐 건설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단일 요인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기후변화가 중요한 촉발 요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대기오염 문제도 기후변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기후변화는 대기의 화학적 조성을 바꾸고, 기온이 높아지면 오존과 미세먼지의 농도가 상승한다. 전력 생산과 냉방을 위한 에너지 사용이 늘면서 인위적 오염물질의 배출도 증가한다. 꽃가루의 농도와 분포가 변해 알레르기와 천식 환자가 늘어나기도 한다. 대기오염은 이미 오랫동안 환경 보건의 중요한 과제였지만, 기후변화가 그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결국 호흡기질환과 심혈관질환, 및 만성질환의 부담이 늘어나고, 취약계층의 건강 불평등은 심화된다.
기후변화가 인간의 정신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점점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재난으로 인한 신체적 피해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불안과 우울을 높이며, 심한 경우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발전한다. 기후변화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도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IPCC는 기후변화가 이미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건강과 생존에 관한 문제이자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폭염과 재난에 대비한 조기경보 시스템, 노인과 아동, 만성질환자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건강정책, 감염병 감시체계 강화, 재생에너지 확대와 대기오염 저감 정책 등이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 더불어 재난 피해자와 불안과 우울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사회적 지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단지 북극곰이나 멀리 있는 열대우림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미래 세대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과제이다. 기후변화는 되돌릴 수 없지만, 지금 행동에 나선다면 피해를 줄이고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 과학과 정책, 국제 협력, 시민의 참여가 함께 어우러질 때 우리는 기후위기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와 건강의 문제는 결국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와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