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연세의대 교수

지속가능발전이라고 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후변화, 탄소 감축, 재생에너지 같은 환경 의제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21세기 중반을 향해 가는 지금, 국제사회가 점점 더 분명하게 확인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지속가능발전의 성공 여부는 결국 건강에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건강은 더 이상 발전 정책의 부수적인 결과물이 아니다. 건강은 사회·경제·환경 시스템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며, 미래 사회가 지속 가능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가장 민감한 지표가 되고 있다.
건강은 결과가 아니라 동력이다
세계는 팬데믹 이후 건강시스템의 취약성이 경제 회복에 중대한 도전을 제기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전 세계 GDP는 약 3% 감소했으며, IMF는 이를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충격으로 규정했다. 이는 건강 위기가 경제·교육·사회 인프라 전체를 순식간에 마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은 지속가능발전의 최종 성과이자 선행 조건'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건강을 단순한 복지 영역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기반 인프라로 재정의하는 전환점이다.
기후변화: 21세기 최대의 건강 위협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 문제로만 분류될 수 없다. 기후는 인류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WHO는 대기오염으로 약 700만 명이 매년 조기사망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는 흡연이나 영양결핍과 유사한 수준의 사망 부담이며, 기후 정책의 부재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국내 상황도 심각하다. 미세먼지(PM2.5)로 인한 조기사망자는 연간 1만 명이 넘고, 이는 교통사고 사망자의 수배에 달하는 규모다.
폭염 역시 치명적인 건강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2023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온열질환자는 약 2800명, 사망자는 32명으로 보고되었으며, 이는 기록적인 기온 상승과 함께 지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의 폭염 피해율이 현저히 높다. 폭염 피해는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며, 미세먼지는 심혈관 질환과 호흡기 질환을 악화시켜 국가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결국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건강 악화, 의료비 증가, 노동력 감소가 연쇄적으로 이어져 지속가능발전의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불평등과 고령화: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내부 리스크
건강 문제는 외부 위험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사회 내부의 구조적 요인도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첫째, 건강 불평등은 전 세계적 문제다. 소득·지역·교육 수준에 따라 기대수명과 질병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 한국에서도 소득 계층 간 기대수명 격차가 존재하며, 어느 지역에 거주하는가에 따라 평균 수명이 차이 나는 사례가 있다.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 계층 간 건강 격차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둘째, 초고령화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지속가능성 위기 중 하나다. 고령 인구 증가와 만성질환 확대는 의료비 폭증을 초래하고 있으며, 현 의료·돌봄 시스템은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다. 돌봄 부담은 가족과 사회를 압박하고, 장기요양 체계는 이미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처럼 불평등과 고령화는 단순한 보건의료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 시스템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위협이다.
지역사회 기반 돌봄과 디지털헬스: 새로운 해결 축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국가가 주목하고 있는 전략이 바로 지역사회 기반 돌봄과 디지털헬스이다. 지역사회 기반 돌봄은 환자와 노인이 병원 중심 의료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의 공간에서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이다. 이 접근은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입원과 의료비를 줄이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특히 관계망을 회복하기 위한 접근은 지속가능발전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 등장한 디지털헬스 기술 예를 들면 원격진료, 재택 모니터링, AI 기반 진단,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은 시설을 넘어 지역사회 건강모델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심부전 환자의 체중 변화와 부종을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악화를 조기에 발견하거나, 고령자의 낙상 위험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은 이미 실용화 단계에 있다. 한국은 디지털 기술 기반이 강하고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이 분야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 단순한 의료 기술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 모델을 구축하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건강 공편익: 가장 효과적인 정책 방향
최근 국제 정책에서 가장 주목받는 개념은 건강 공편익(co-benefits)이다. 이는 기후 정책과 건강 정책을 통합하여 하나의 정책으로 두 가지 이상의 효과를 동시에 얻는 접근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걷기·자전거 이용을 확대하면 미세먼지가 감소하고, 심혈관질환·비만·당뇨가 감소하며, 의료비가 절감되고, 도시 활력이 증가한다. 즉, 기후 정책이 건강을 개선하고, 건강 개선이 경제를 살리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 접근은 비용 대비 효과가 높고 시민들의 체감이 빠르기 때문에 정책 수용성이 매우 좋다.
건강 공편익 전략은 단순히 좋은 정책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경제·사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향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의 미래는 건강에서 결정된다
건강은 더 이상 지속가능발전의 결과가 아니라 핵심 동력이다. 기후변화는 인류 건강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소이며, 불평등과 고령화는 사회 내부에서 지속가능성을 잠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 속에서 지역사회 기반 돌봄과 건강 공편익 전략은 새로운 해결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속가능발전의 미래는 건강에서 결정된다. 건강을 중심에 둔 정책 전환이야말로 기후 대응, 사회적 형평성, 돌봄 체계 재구조화, 경제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전략이다. 건강이 지켜질 때 사회는 지속될 수 있으며, 건강을 중심에 둔 발전만이 미래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세계를 남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