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료기기 판로 열어줘도 문제?…희비 갈리는 업체들

발행날짜: 2026-01-27 05:30:00
  • 국제 표준 임상에 보안 부담 가중…시장 편향 우려 나와
    '원 스트라이크 아웃' 공포 "기업 최초 개발 지원책 절실"

정부가 혁신 의료기기 시장 진입을 최단 80일로 단축했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중소 스타트업 기업의 부담만 키우는 구조라고 지적하며 시장 편향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분명 진입 절차가 간소화된 것은 반길만한 일이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셈이다.

26일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시장 즉시진입 의료기술' 제도를 도입·시행한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혁신적 의료기기가 식약처의 국제적 수준의 임상평가를 거친 경우, 별도의 신의료기술평가 없이 의료현장에 즉시 진입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시장 즉시진입 의료기술' 제도를 도입·시행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기존 제도와의 비교

이 기준에 부합하는 새 의료기술은 기존 최장 490일 소요되던 의료현장 진입 기간을 최단 80일까지로 단축할 수 있게 된다. 완전히 새로운 원리가 적용된 신개발 의료기기라면 의료기기 인허가 및 기존기술 여부 확인 후 즉시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되는 것.

또 이 같은 의료기기는 신속 심사 대상으로 지정돼 우선적으로 허가받을 수 있으며, 허가 이후 3년간 비급여로 즉시 사용 가능하다. 이 기간 신의료기술 평가 및 건강보험 등재 등을 진행해 급여·비급여·선별급여 등에서의 계속 사용 여부를 결정한다.

의료 AI 역시 '시장 즉시진입 의료기술' 대상에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심혈관 영상 검출·진단 보조 소프트웨어 ▲위암·대장암·전립선암 영상 검출 보조 소프트웨어 ▲뇌영상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 등 고도의 분석 능력을 요하는 113개 소프트웨어 등이 그 대상이다.

이 같은 제도로 의료 AI 기업의 현금 흐름 개선과 투자 회수 속도 증가에 대한 기대감이 나온다. 식약처 허가 직후 80일 만에 수익 창출이 가능할 수도 있는 만큼, 기업의 R&D 재투자 여력이 강화될 여지가 큰 덕분이다. 또 공고된 대상 의료기기 품목 대부분이 디지털·AI·로봇에 집중돼 있어 관련 기술 개발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의료 AI 업계에선 시장 진입 문턱이 낮아진 만큼, 식약처 허가 단계에서의 검증은 더욱 까다로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의료 AI 기기가 즉시진입 혜택을 받기 위해선,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 기준에 부합하는 강화된 임상평가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술력에 더해, 기업 차원에서 고도화된 임상 데이터까지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선 의료기관과의 임상 네트워크가 필요한 만큼, 규모가 작은 중소 스타트업은 오히려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사이버보안 규정 명확화로 인한 개발 비용 상승도 난관이다. 이 제도로 유·무선 통신을 사용하는 의료 AI 기기는 정보 위변조 및 오작동 방지를 위한 사이버보안 검증 자료를 필수적으로 제출하게 됐다.

보안 시스템 구축 및 유지 보수에 추가적인 인적·물적 자원 투입이 불가피해지는 만큼, 초기 자본력이 약한 기업들엔 경영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즉시 사용 기간이 3년으로 제한되고, 연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즉시진입 의료기기는 제한 시간 내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유효성을 반드시 입증해야 하는 제약이 걸리게 되는 것. 만약 제품이 충분한 판매고를 올리지 못해 이 기간 내 충분한 데이터를 쌓지 못하거나 정부 직권평가에서 떨어진다면, 즉시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

이에 업계에선 이 같은 제도가 대형 기업 위주로 편향돼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임상 역량이 충분하지 않은 중소기업 입장에선,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같은 즉시 사용 기간이 오히려 더 부담이 클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오히려 즉시 사용 신청을 꺼리는 이유가 될 수 있는 만큼, 기업 최초 의료기기 지원 제도를 도입하는 등 소외된 중소기업을 보호할 방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 기업이 처음으로 의료기기 심사를 받을 때만큼은 유예 기간과 보완 기간을 충분히 부여하고, 재청구 및 정비 과정을 행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IVD위원회 안치성 자문위원은 "이번 제도로 허가 속도가 빨라지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정책 논의 과정이 대형 업체 위주로 흘러가는 점은 우려스럽다"며 "중소기업은 당장 눈앞의 현안을 처리하기 급급해 협의체 등에 참여해 의견을 낼 기회가 부족하다. 이대로라면 후발 주자들의 시장 진입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생애 최초 주택 마련 지원 제도처럼 기업이 처음으로 개발한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며 "최소한 첫 심사에서만큼은 유예 기간과 보완 기간을 충분히 부여하고, 재청구와 정비 과정을 지원해 중소기업이 바뀐 제도 환경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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