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이형철 헬스케어AI연구원 부원장 인터뷰
AI로 병원 업무 효율화…데이터 표준 및 피지컬 AI 확장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서울대학교병원 의료 AI 연구의 사령탑인 헬스케어AI연구원이 '에이전틱 AI'를 필두로 의료 현장의 AX(AI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의 단순 예측형 모델을 넘어, 의료 현장의 복잡한 지적 노동을 수행하는 실행형 인공지능을 통해 국내 의료 시스템의 체질을 개선한다는 목표다.
서울대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 이형철 부원장은 1일 메디칼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연구원의 설립 배경과 핵심 기술인 에이전틱 AI의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이 부원장은 인공지능의 암흑기부터 연구를 이어온 전문가로, 현재 서울대병원의 AI 전략을 실전 배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AI 버블 우려 뚫고 탄생한 대규모 연구 조직 "확신 있었다"
우선 이 부원장은 연구원의 설립 취지와 그동안의 성장 과정을 설명했다. 헬스케어AI연구원은 지난해 1월 23일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의 지시로 공식 출범했다. 당시만 해도 AI 기술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는 '버블'인지, 세상을 바꿀 혁신인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AI가 환자 안전과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 필수적인 도구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전문 조직을 신설했다.
현재 연구원은 장병탁 원장(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과 이 부원장을 필두로 서울대 공대, 자연대, 의대 기초 교수진이 참여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등 서울대병원 그룹 내 교수 140여 명도 함께하고 있다. 연구 교수와 연구원까지 포함하면 1000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조직으로, 의료 AI 연구의 전주기를 다루고 있다.
이와 관련 이 부원장은 "AI 기술이 의료 분야에 적용돼 환자 안전과 업무 효율성을 혁신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며 "병원 내에 이를 제대로 연구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전문 조직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관악 캠퍼스와 병원을 잇는 대규모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적 노동 수행하는 '에이전틱 AI'…'스누하이' 플랫폼 역할은
이 부원장이 꼽은 연구원의 핵심 연구 분야는 '에이전틱 AI(Agentic AI)'다. 이는 AI가 딥러닝을 기반으로 영상·생체 신호를 분석해 확률적인 예측값을 내놓던 기존의 '내로우 태스크(Narrow Task)' 모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이다. 외부 데이터와 도구를 스스로 활용해 사용자의 명령을 직접 수행하는 '행동하는 지능'이 특징이다.
이 에이전틱 AI는 병원 내 방대한 의무 기록 데이터를 요약하거나, 환자가 지참한 종이 차트를 읽어 텍스트로 변환하는 등 복잡한 임무를 수행한다. AI가 어떤 도구와 기술을 사용할지 스스로 판단하기 때문에, 의료진은 문제 정의와 결과물 검증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게 이 부원장의 설명이다.
이 부원장은 "에이전틱 AI는 기존 모델보다 훨씬 복합적인 임무를 스스로 도구를 찾아가며 수행할 수 있다"며 "현재 병원에서 중요한 것은 AI가 도와줄 수 있는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생성된 결과물이 임상적 유용성을 갖췄는지 확인하는 운영 역량이다. 이를 한곳에서 지원하는 플랫폼이 바로 스누하이(SNUHI)"라고 강조했다.
현재 스누하이 플랫폼에는 20여 가지의 다양한 AI 툴이 탑재돼 있으며, 병원의 의무 기록 데이터를 국제 표준인 파이어(FHIR) 형태로 연동해 실전 배치를 마친 상태다. 연구원은 이를 분당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등 서울대병원 그룹을 넘어 전국의 국립대병원 및 민간 병원으로 확대 공급해 국내 의료 AI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미흡한 의료 데이터 표준화 걸림돌…에이전틱 AI가 장벽 낮춰
의료 데이터 표준화가 문제다. 현재 국내에선 병원마다 데이터를 기록·관리하는 형식·규격이 제각각이어서, 서로 정보를 주고받거나 하나로 통합해 연구에 활용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습득해야 성능을 고도화할 수 있는 의료 AI 특성상, 이 같은 문제는 관련 산업 발전에 치명적이다.
이 부원장 역시 지난 10년간 데이터 표준화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현장의 진척이 더디다고 지적했다. 미국 사례처럼 어느 정도 제도적 강제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진단이다.
실제 미국은 2016년 '21세기 치유법'을 통해 국제 표준인 파이어(FHIR) 준수를 강제 규정화했다. 이를 지원하지 않는 전자의무기록(EMR) 회사는 인증이 취소되고, 병원은 수가 삭감 등의 페널티를 받는다. 반면 한국은 표준안은 마련돼 있으나 실제 현장 구현은 미흡한 수준이다.
다만 이 부원장은 에이전틱 AI 기술이 이러한 표준화의 장벽을 낮춰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데이터가 어떤 형태든 AI 에이전트는 이를 이해하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며 "기술적 표준 여부보다 병원이 어떤 데이터까지 접근을 허용할지 결정하는 정책적 의사결정이 더 중요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표준화 문제로 자료 제출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AI를 통해 상호 운용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병원은 데이터 접근 권한과 AI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운영 경험을 쌓아야 하며, 이것이 향후 의료 질 향상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글로벌 빅테크 종속 우려 어쩌나…'한국형 의료 AI'가 대항마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의료 AI 플랫폼 시장을 선점하려는 움직임도 위협이다. 이와 관련 이 부원장은 '의료 주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의료 데이터는 국가 안보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초민감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해외 서비스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매년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막대한 공익적 비용을 지출하는 만큼, 의료 시스템을 해외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보안과 정책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며 "국내에서 안전하게 데이터를 처리하고 활용하기 위한 자체 기술 개발은 연구원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연구원은 네이버와 공동 연구를 통해 신뢰성 있는 출처 기반의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인 '케이메드 AI(KMed AI)'를 개발하고 있다.
에이전트 AI가 업무를 수행한다면, 케이메드 AI는 최신 논문과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의사의 진단과 치료 결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는 글로벌 모델이 한국의 고유한 의료법이나 보험 규정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이와 관련 그는 "환자나 의사 모두 생성형 AI를 권위자로 맹신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투명한 근거에 기반한 시스템을 활용해야 한다"며 "국내 규제와 임상 현장에 맞는 AI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한국형 의료 AI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인구 구조 변화 속 AI의 역할은…'노동 대체' 아닌 '수요 대응'
AI가 의료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대한민국 인구 구조의 변화와 고난도 의료 서비스가 증가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의료 AI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급격한 고령화로 20년 뒤 의료 수요가 3배까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며, 복합 질환자 증가로 관련 치료 난이도 역시 수직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부원장은 "인구 고령화는 확정된 미래다. 만성 질환자와 복합 질환자 증가 역시 피할 수 없다"며 "미래의 폭발적인 의료 수요를 기존 인력만으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AI의 도움을 통해 복잡한 의료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우리가 처한 절호의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 분야에서 AI는 인력을 대체해 해고를 유발하기보다, 늘어나는 수요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해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라며 "지적 노동의 상당 부분을 AI가 분담함으로써 의사는 더욱 본질적인 진료와 복합적인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능형 에이전트 넘어 '피지컬 AI'로 확장…병원의 물리적 혁신은
연구원의 시선은 이제 소프트웨어를 넘어, 물리적 실체를 가진 '피지컬 AI(Physical AI)'로 향하고 있다. 지적 노동의 혁신을 이룬 에이전틱 AI가 로봇 기술과 결합해 병원의 물리적인 업무 구조를 바꾸는 단계다.
이미 연구원은 융합의학과 등과 협력해 로봇 수술을 지원하는 지능형 로봇, 원내 물류를 담당하는 자율주행 로봇, 환자 응대 및 잡무를 수행하는 로봇 등을 연구하고 있다. 에이전트 AI의 발전이 로봇의 제어 지능을 높이면서 피지컬 AI의 도입 속도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원장은 "당분간은 에이전틱 AI에 집중하겠지만 다음 단계는 지적 노동을 넘어서는 물리적 혁신"이라며 "로봇 기술과 자동화 시스템이 병원에 안착하게 되면 외과 의사의 업무 환경이 개선되고 병원의 운영 효율이 극대화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로봇이 병원의 일상을 지원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공지능의 겨울' 견딘 10년 연구…'함께 만드는 미래' 방점
마지막으로 이 부원장은 인공지능의 암흑기부터 현재의 비약적인 발전을 지켜본 소회를 전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제약사 인턴십을 거치며 AI 연구를 시작했던 그는, '인공지능'이라는 용어조차 낯설던 시절부터 이 분야에 몸담아왔다. 2016년 알파고 사태를 기점으로 딥러닝 연구에 매진해 온 결과가 현재의 에이전틱 AI 연구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수천 년간 이어온 의사의 역할과 의학 교육이 AI로 인해 바뀔 것이다. 에이전트 AI의 정확도가 인간을 능가하는 시점이 머지않았다고 본다"며 "하지만 이런 변화가 파괴적인 방식이어선 안 된다. 모두에게 득이 되는 공존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연구원의 슬로건인 '함께 만드는 미래'처럼 지속 가능한 헬스케어 시스템을 열어가는 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