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산업2팀 최선 기자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최근 교육부가 주관한 현장체험학습 관련 간담회 영상을 보다가 낯익은 장면을 마주했다. 현장체험학습을 둘러싼 교사들의 토로는 생각보다 절박했다. 소풍으로 대표되는 야외 체험은 학창 시절에 누릴 수 있는 의례적 행사라고만 생각했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현장체험학습의 명맥이 끊겼다는 이야기가 교사의 입에서 나왔다. 학생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배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감당해야 할 책임이 너무 크다는 것.
2022년 11월 속초의 한 테마파크 주차장에서 현장학습을 하던 초등학생이 이동 중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건으로 담임교사는 금고 6개월의 선고유예라는 최종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 사건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한 초등교사는 "면책을 준다고 해도 나는 현장학습을 안 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위험뿐 아니라 민원, 행정업무, 소송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구조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사들이 반복해서 사용한 표현이었다. "그 사고를 우리가 막을 수 있었습니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었다. 의료 현장에서 수년간 반복적으로 들었던 의사들의 하소연과 같았다.
의료계는 오래전부터 '불가항력 의료사고 면책'을 요구해 왔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모든 위험을 제거할 수는 없다. 충분한 설명과 적절한 술기, 표준 진료지침을 준수했음에도 예기치 못한 합병증과 사망은 발생한다. 특히 분만, 외상, 응급의료, 중증수술과 같은 필수의료 영역은 더욱 그렇다.
문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다. 결과가 나쁘면 의료진은 형사고발을 당하고, 수년간 수사와 재판을 견뎌야 한다. 그런 구조적인 상황이 필수의료의 기피라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내가 이 위험한 수술을 꼭 해야 하나. 내가 이 환자를 꼭 받아야 하나. 굳이 분만을 계속해야 하나." 이런 질문이 바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필수의료 붕괴 현상이다.
분만실은 사라지고, 외상외과 전공의는 부족하며, 고위험 수술을 기피하는 현상이 점점 심해진다고 의사들을 탓할 순 없다. 의사들이 게을러서도, 사명감이 부족해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행동한다. 위험은 무한대인데 보상은 제한적이고, 사고가 나면 개인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라면 누구도 자발적으로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다. 이건 인간 본성의 문제다.
현장체험학습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교사들이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해도 학생 수십 명을 인솔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는 무수히 많다. 교사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돌발 상황은 발생한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하면 언론 보도와 수사, 재판, 민원은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애초에 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이 만들어낸 합리적 결과다.
의료계에서 불가항력 의료사고 면책을 주장할 때 일부에서는 특권을 요구한다고 비판했지만 의사들이 요구하는 건 무조건적인 면책이 아니다. 충분한 주의 의무를 다했고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까지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지 말자는 것이다. 교사들의 주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전에 요구된 안전조치를 모두 이행했고, 교육 활동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한 사고가 발생했다면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 핵심은 같은 질문으로 귀결된다. 불가항력적 사고의 책임을 어디까지 개인에게 물을 것이고 어디까지 사회가 분담할 것인가.
만약 그 답이 "결과가 발생했으니 누군가는 처벌받아야 한다"라면, 앞으로 더 많은 교사들이 현장체험학습을 포기할 것이고 더 많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학생과 환자, 국민에게 돌아간다.
사회적 효용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에게 무한 책임을 묻는 사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현장체험학습을 떠나는 교사가 사라지는 모습은 어쩌면 필수의료를 떠나는 의사들의 뒷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
다음에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잃은 것은 소풍이 아니고, 분만실이 아니다. 타인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수고로움을 감수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채울 사람은 없다. 제도가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