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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률 98% 자랑 아냐…한국형 ARPA-H, 실패해도 OK"

발행날짜: 2026-08-20 12:20:02
  • KHF 2026, AI로 여는 한국형 ARPA-H 진단 혁신 기조 강연 마련
    "실패 위험 감수 필요…난제 해결 위해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 필요"

2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KHF 2026에서는 '디지털병리와 'What If': AI로 여는 한국형 ARPA-H의 진단 혁신'을 주제로 한 기조 강연이 마련됐다.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국내 보건의료 연구개발(R&D)이 '실패하지 않는 연구'에서 '실패를 감수하고도 도전할 가치가 있는 연구'로 방향을 틀고 있다.

논문과 특허 등 연구 성과는 쏟아지지만 정작 기술이 제품과 시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죽음의 계곡'이 여전히 깊다는 점에서 성공할 것만 골라서 연구하는 풍토를 벗어나 남들이 안 해본 것을 하는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2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KHF 2026에서는 '디지털병리와 'What If': AI로 여는 한국형 ARPA-H의 진단 혁신'을 주제로 한 기조 강연이 마련됐다.

선경 K-헬스미래추진단장(고려대 명예교수)은 "한국형 ARPA-H는 첨단 기술이나 제품을 만드는 사업이 아니"라며 "국민의 건강 안보를 위협하는 사회적 난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한국형 ARPA-H는 미국의 ARPA-H를 모델로 2024년 출범한 임무중심형 보건의료 R&D 사업이다. 정부는 9년간 약 1조 2000억원을 투입해 보건안보, 미정복질환, 바이오헬스 초격차 기술, 초고령사회 대응, 지역완결형 필수의료 등 5대 임무에 도전한다.

선 단장이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한 핵심 배경은 국내 R&D의 높은 '성공률'이다. 그는 "최근 5년간 국내 정부 지원 과제 성공률이 무려 98% 이상"이라며 "미국은 성공률 15% 이하의 고위험·고성과 R&D를 통해 인터넷, GPS, 스텔스 기술, 코로나19 백신 같은 세상을 바꾼 기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선경 K-헬스미래추진단장(고려대 명예교수)

문제는 국내 R&D가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과제에 집중하면서 '추격형 R&D'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선 단장은 "성공률 98%라는 것은 실패가 2%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처음부터 성공할 것만 골라서 했다는 뜻"이라며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남들이 안 해본 것을 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형 ARPA-H는 이 같은 구조를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연구자가 먼저 기술을 들고 와 정부에 연구비를 요청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정부가 먼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난제를 제시하고 이를 풀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경쟁적으로 찾는다.

특히 과제 기획 단계부터 '하일마이어 질문'을 적용한다. 선 단장은 연구자에게 가장 먼저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전문용어 쓰지 말고 30초 만에 대답해 보십시오"라고 묻는다고 했다.

이어 "기존 방법에 뭐가 문제가 있길래 이걸 하려는가", "성공할 것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성공하면 누가 문제를 해결하는가"까지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과제 운영 방식도 기존 R&D와 다르다. 하나의 연구팀을 선정해 끝까지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팀이 서로 다른 방법론으로 경쟁하고, 마일스톤에 따라 'Go/No-Go'를 결정한다. 필요하면 각 팀의 강점을 결합해 새로운 컨소시엄을 구성한다. 이 전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 프로젝트 매니저(PM)다.

선경 단장은 PM을 "연구자가 아니라 정부 돈을 투자하고 전 과정을 관리하는 '버추얼 CEO'"라고 표현했다. 연구비를 집행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과제의 방향을 바꾸고 연구팀을 재구성하며 기술의 사업화와 글로벌 확산까지 책임지는 역할이다.

이 같은 구조가 필요한 이유는 바이오헬스 산업의 '죽음의 계곡'이 특히 깊기 때문. 연구실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도 임상시험, 인허가, 실증, 보험 등재를 거쳐 실제 시장에 진입하기까지 막대한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다.

선 단장은 이를 '펀딩 갭'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가능성이 발견되면 공공 펀드가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어주고, 그다음에는 프라이빗 섹터가 들어와서 막아줘야 한다"며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 부분의 구조가 특히 약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한국형 ARPA-H의 목표는 기술 개발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판단. 국내 연구자들이 강점을 가진 아이디어와 초기 기술을 실제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와 산업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R&D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다.

선경 단장은 "기술이 아무리 훌륭해도 규제를 통과하지 못하고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면 끝"이라며 "맨날 기술 개발 쪽으로 가서 낙차가 큰 기술을 개발하면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이오헬스 산업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AI 역시 이 같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한국형 ARPA-H는 AI를 별도의 목표로 삼기보다 각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로 결합하는 방식이다. 선 단장은 "첨단 방법론일 수도 있고, 죽음의 계곡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자체가 과제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연구자와 산업계에 "대한민국의 사회적 난제를 우리에게 제시해 달라"며 "좋은 기술을 찾는 것에서 출발하는 R&D가 아니라,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먼저 정하고 기술을 불러오는 방식으로 보건의료 R&D의 방향을 바꾸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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