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times

태그로 보는 뉴스

언어 (Language)

진정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는 1차 의료다

손문호 칼럼위원
  • 가
발행날짜: 2026-10-19 05:00:00
  • 손문호 원장
    메디칼타임즈 칼럼위원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정책고문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칼럼위원]우리나라에서 '필수의료'라는 용어는 응급의료, 중증외상, 분만, 소아진료, 심뇌혈관질환 등 주로 중증·응급 분야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지역의료 정책 역시 지역 거점병원의 육성, 대학병원의 역량 강화, 공공병원의 확충 및 의료인력의 지역 배치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이러한 정책은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본질을 이러한 영역에만 한정하여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필수의료는 중증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고혈압과 당뇨병을 꾸준히 관리하여 뇌졸중과 심근경색을 예방하고, 감염질환을 초기에 진단하여 입원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으며, 근골격계 질환을 적절히 치료하여 불필요한 검사와 수술을 줄이는 것 또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필수적인 의료이다.

이러한 역할의 상당 부분은 1차 의료기관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의료정책은 중증질환이 발생한 이후의 치료에는 많은 관심과 재정을 투입하면서, 중증질환으로 진행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1차 의료의 역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충분한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였다.

이는 의료체계를 거꾸로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증환자를 치료할 병원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중증환자의 발생을 줄일 수 있는 의료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만들기 어렵다.

필수의료는 응급실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응급실에 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1차 의료에서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

지역의료 역시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지역의료를 이야기할 때마다 지역 대학병원과 거점병원의 병상, 장비, 의료인력 확충이 중심에 놓인다. 그러나 지역 주민이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의료기관은 대학병원이 아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허리가 아플 때, 아이에게 열이 날 때, 고혈압과 당뇨병을 관리할 때 주민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가까운 동네의원이다.

평생 대학병원을 몇 차례밖에 이용하지 않는 국민은 많지만, 동네의원을 이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국민은 거의 없다.

따라서 지역의료의 건전성을 평가하려면 지역에 몇 개의 대학병원이 존재하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이용할 수 있는 내과, 외과, 정형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등 1차 의료기관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지역의 동네의원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면 경증환자는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이동한다. 병원에는 더 많은 환자가 몰리고, 검사와 입원이 증가하며, 중증환자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의료자원까지 경증질환에 투입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1차 의료의 약화는 동네의원의 경영 문제가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전체의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의료정책은 그동안 의사의 숫자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왔다. 의사를 몇 명 더 배출할 것인지, 어느 지역에 몇 명을 배치할 것인지, 특정 진료과 의사를 어떻게 늘릴 것인지가 정책 논의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의료는 의사의 숫자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한 명의 의사가 지역에서 오랫동안 진료하기 위해서는 그 의료기관이 지속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절한 환자 수요가 유지되어야 하고, 의료인이 과도한 행정업무에 매몰되지 않고 진료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의원급 의료기관은 건강보험 심사, 각종 행정규제, 진단서와 보험서류, 자동차보험과 산재보험, 실손보험 관련 업무 등 수많은 행정적 부담을 감당하고 있다.

반면 규모가 큰 의료기관은 원무, 심사, 보험, 상담, 고객관리 등의 전문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 일부 병원은 의료코디네이터와 전문 상담인력을 통하여 진료와 검사, 입원, 비급여 치료, 보험서류 발급에 이르는 과정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보험상품이 복잡해지고 의료이용이 보험과 더욱 밀접하게 연결될수록 이러한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대형병원과 전문병원은 충분한 행정인력을 활용하여 제도에 대응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동네의원은 의사와 소수의 직원이 모든 업무를 감당하여야 한다.

그 결과 의료기관의 경쟁력이 진료의 질뿐 아니라 행정조직의 규모와 보험 활용능력에 의하여 좌우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1차 의료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동네의원의 쇠퇴를 단순히 개원의의 경영난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1차 의료가 약화될수록 사회 전체의 의료비 부담은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경증환자가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이동하면 진료비와 검사비는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만성질환이 적절히 관리되지 못하면 합병증과 입원, 수술이 증가한다. 환자가 자신의 병력을 잘 아는 의사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동일한 검사가 여러 의료기관에서 반복될 가능성도 커진다.

따라서 1차 의료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의료비 지출이 아니라 향후 더 큰 의료비를 줄이는 예방적 투자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고가의 검사와 시술에는 높은 경제적 가치가 부여되는 반면, 환자의 병력을 듣고 생활습관을 교정하며 만성질환의 악화를 예방하는 의료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어 왔다.
이러한 구조가 지속되는 한 1차 의료의 쇠퇴를 막기 어렵다.

이제 필수의료의 정의부터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필수의료를 단지 즉각적으로 생명을 구하는 의료에 한정하여서는 안 된다.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악화를 예방하며 국민이 중증환자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의료 역시 필수의료이다.

예방접종, 만성질환 관리, 감염질환의 조기치료, 노인의 다질환 관리, 소아의 일상적 진료, 근골격계 질환의 적절한 치료 등 국민이 일상적으로 필요로 하는 의료도 필수의료의 중요한 영역으로 보아야 한다.

지역의료 역시 지역에 거대한 병원을 세우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역 주민이 아플 때 가까운 곳에서 의사를 만날 수 있고, 그 의사가 오랫동안 같은 지역에서 환자를 돌볼 수 있으며, 필요할 경우 적절한 시점에 상급 의료기관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의료전달체계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고자 한다면 정책의 시선을 바꾸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의 시설과 인력을 확충하는 정책과 함께 1차 의료기관의 진찰, 상담, 만성질환 관리, 예방의료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강화하여야 한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행정부담을 줄이고 의료인이 환자의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여야 한다.

또한 경증환자가 대형병원으로 집중되지 않도록 의료전달체계를 재구축하고, 의원과 병원, 종합병원이 서로 환자를 두고 경쟁하는 구조가 아니라 각자의 역할에 따라 협력하는 의료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민간보험 제도 역시 이러한 의료전달체계를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보험이 특정 검사와 치료, 입원에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여 환자를 대형 의료기관으로 이동시키는 효과가 있다면 이를 금융상품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평가하여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의료에 필요한 것은 더 큰 병원을 만드는 경쟁이 아니다.

국민이 살아가는 곳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의료기관을 지키는 일이다.

필수의료를 살리고자 한다면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병원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중증환자가 되기 전에 환자를 관리하는 1차 의료부터 살려야 한다.

지역의료를 살리고자 한다면 지역 대학병원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주민의 삶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동네의원부터 지켜야 한다.

대한민국 의료의 붕괴는 거대한 병원의 문이 닫힐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동네의원의 불이 하나둘 꺼질 때 이미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출발점은 1차 의료이다.

관련기사

오피니언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