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경쟁·부익부빈익빈 심화...현실극복 대안 못찾아
|현장르포-서울 강남 개원가를 가다|강남의 개원가가 흔들리고 있다.
웬만한 시도의사회의 규모를 능가하는 의료기관의 초밀집지역인 강남 개원가. 극도로 과열된 이지역을 두고 '강남 불패론' ,'붕괴론' 등 전혀 상반된 견해가 공존한다. 한동안 비보험의 천국으로 통했던 강남 개원가의 실제 현실을 조명해본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강남개원가의 위기
2.강남 보험과의 비애
비보험과의 '실리콘 밸리'라며 전국의 개원의들이 모여들던 강남이 높은 임대료와 과열경쟁, 상호간의 고소고발로 얼룩지고 있다.
가장 최신화된 기술의 경연장이면서도 불법 시술의 온상이라 지목받는 강남의 개원가는 이제 포화상태를 넘어 버블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돈 벌어서 부동산업자와 광고업자만 먹여살린다"는 강남 개원가의 자조는 더 이상 기우가 아니었다.
전국 성형외과, 절반은 '강남구 소재'
현재 강남구에 소재한 의원급 의료기관은 950여곳(의사회 등록 의원은 9월 현재 672곳). 거기다 치과 480여곳, 한의원 280곳 등을 1700여 곳이 넘는다.
면적 39.55㎢, 인구는 53만 5138명(2002년)에 불과한 강남구에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의 2만5천여곳의 4%가량이 모여있는 셈.
특히 성형외과를 진료과목으로 내건 곳은 400여곳(등록 의원은 163곳, 의사회 파악 성형외과 전문의는 240여명). 미표시과목을 감안하더라도 전국 성형외과가 545곳임을 감안하면 40~50%가량은 강남에 집중하고 있다.
강남 집중은 의약분업 시기와 맞물려있다. 강남구 의사회 관계자는 "6년전만 해도 강남의 전체 의원 수가 300여개에 불과했으며 내과와 성형외과의 수가 비슷했다"면서 "짧은 시간내 거의 3배 이상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남이 포화상태라는 지적이 나옴에도 개원의들의 강남진출은 여전하다. 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서울에서 지난해 순증한 117곳의 의원 중 강남지역 순증 의원은 43곳(37%)으로 서울지역에서 개원수가 가장 많았다.
강남구 보건소와 강남구의사회 등도 "병원을 개원하는 숫자가 폐업하는 수보다 많다"면서 꾸준히 늘고 있다고 이를 뒷받침했다.
이에 대해 한 개원의(성형외과)는 "미아리는 지역구이지만 강남은 전국구다"면서 "성형외과의 입지는 타과와 달리 인근 아파트 단지 등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성형외과의 강남구 진출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
다른 개원의 역시 "비보험만 하는 과들은 강남이 아니라면 안된다는 정서가 강하다"면서 "강남의 소득수준이 높은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덧붙였다.
상호간 고소고발, 동업자 의식은 '실종'
개원의가 몰리다 보니 강남의 개원가는 극도로 과열돼 있다. 이러다 보니 광고전, 환자 유치전, 불법진료, 상호간의 고소고발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
강남구 보건소 관계자는 "하루에도 수십통의 병의원 민원전화를 받고 있다"면서 "민원 전화를 하는 쪽은 동종업계 아니면 환자다"고 말했다. 특히 성형외과전문의와 성형외과를 진료과목으로 표방하는 타과 전문의간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코헥시브겔, 가짜 주름제거실, 중국산 밀수 보톡스 유통 사건도 강남이 중심이 된 사건. 특히 중국산 보톡스와 관련해서는 동종업계 개원의가 고발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광고경쟁도 당연하다. 잡지나 신문광고로부터 시작해 온라인 광고, 지하철 광고 까지 모든 광고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
신사동 S클리닉 신모원장은 "한달에 고정 광고비로만 4천~5천만원을 사용해 1년에 5억가량을 사용한다"면서 "광고를 안 하는게 당장 수입은 많겠지만, 향후 미래를 생각하면 꾸준히 광고로 이미지를 다져놓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남 지역의 미용실과 연계한 성형외과도 있다. 유명 미용실에서 환자를 소개시켜주면 일정비율 수수료를 주는 방식. 역리베이트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상담실장도 필수다. 한 개원의는 "비보험과마다 상담실장이 없는 곳이 드물 것"이라면서 "엄밀히 따지면 의사대신 면허가 없는 실장이 상담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강남 비보험 개원가는 주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이번 국감에서 정화원 의원(한나라당)은 강남의 모 성형외과에서 태반주사를 1회에 80만원을 받는 등 강북과 비교했을때 투약 가격차가 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양한방 분쟁으로 인해 한의사협회로 부터 강남 수백곳의 개원가가 고발당해 보건소가 조사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익부 빈익빈 심화.... 야간진료는 필수"
높은 임대료도 개원의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성형외과가 밀집한 신사, 논현 일대는 매매가가 평당 3천만원을 웃돌고 임대료를 월 1천만원을 넘어서는 곳까지 적지 않다.
강남의 한 개원의는 "부동산 업계에서는 강남의 병의원 매물이 많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환자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지역은 이미 포화상태이며 변두리 지역의 매물만 남아있다"고 말했다.
특히 "좋은 위치를 차지하려다 보니 같은 건물에 여러개의 성형외과가 동시에 들어서는 현상은 다반사"라면서 "특히 건물에 대한 의사의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건물 한 층을 다 써서 엄청난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 개원의는 "예전에는 강남에서 개원하려면 3억에서 5억이면 개원한다고 하는데, 요즘은 10억가량이 든다는 말도 나온다"면서 "강남은 의사들의 부익부 빈익빈의 격차가 가장 큰 곳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직장인 환자를 겨냥한 야간 진료를 택하는 비보험과도 예사롭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H피부과 원장은 “과거, 편하게 일하기 위해 피부과를 택했다던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강남 개원가, 동시 붕괴 이뤄지나
금융계, 증권가에서는 강남의 부동산 시장, 특히 아파트 시장이 조만간 폭락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오를 만큼 오른 부동산 시장이 금리인상 등 외부요인의 미묘한 변화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상황에 빠질거라는 것.
마찬가지로 성형, 피부미용 등 비보험과로 대표되는 강남의 개원가의 모습도 비슷하다. 환자 수는 늘어날 조짐이 없는데도 높은 임대료와 엄청난 광고비로 허덕이고 있다.
금리인상, 경기악화, 언론의 불법 시술 보도, 등 강남 개원가를 붕괴시킬 변수는 다분하다. 또한 무분별하게 개발되고 적용되는 성형 시술이 언젠가는 연이은 의료사고를 통한 대규모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게 업계의 지적이다.
과다한 광고를 줄이고, 거품을 제거할 자구 노력이 요구되지만, 엄청난 빚으로 개원한 개원의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강남구의사회 박홍구 부회장은 "딱히 이 난관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면서 "종합병원이 성형으로 치고 나오던가, 금리 인상이 되면 강남은 큰 변화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 김영진 회장은 "지금은 의사의 직업관, 정체성, 윤리의식이 대혼란기인 시기이며 그 중심이 강남"이라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