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도박…빚쟁이 몰린 의사<3-完 >

조형철
발행날짜: 2003-09-29 06:23:00
  • "환자 눈높이 맞추려면 어쩔 수 없어" 막다른 선택

[현장르포] 붕괴직전의 개원가 현장을 가다

개원가가 사상최악의 불황에 신음하고 있다. 환자수는 급격히 감소한채 좀처럼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각종 정책으로 개원가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돌파구가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1차의료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1차 의료의 위기는 의사인력의 과잉배출에 따른 과당경쟁도 한몫 거들고 있다. 메디칼타임즈(www.medigatenews.com)는 현장르포를 통해 개원가의 현주소를 3회에 걸쳐 진단한다.<편집자 주>

--------------------<<<글싣는 순서>>>---------------------
<제1부>환자감소와 과당경쟁에 신음
<제2부>불황 부추기는 정부 정책
<제3부>과다한 투자, 빚에 쪼들리는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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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늦은 오후, K내과를 들어서면서 기자의 눈은 내부 인테리어의 화려함에 깜짝 놀랬다. 어림잡아 80평은 족히 넘어보이는 병원 내부는 고급 소파와 탁자로 꾸며져 있어 마치 고급 커피숍을 방물케 했다.

또 진료실 앞 안내 데스크에는 은행에서나 볼수 있는 대기표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차례가 되면 대기번호가 선명하게 찍히는 스크린까지 갖췄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인테리어에도 불구하고 대기실에는 서너명의 환자가 여성지를 뒤적이고 있을 뿐 썰렁했다. 이 병원은 부동산매물 리스트에 올라있다.

개원 1년차에 하루 40여명의 환자가 찾는다는 이 병원에는 임상병리사 1명과 간호사, 그리고 원장의 직계가족인 간호 조무사 1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의료장비, 임대보증금, 여기에다 대기실 인테리어 등 환자들의 눈 높이를 맞추는데만 8억을 쏟아부었어요."

김모 원장은 "봉직의로 12년을 근무하면서 모은 돈으로 조그맣게 개원하려 했지만 주위에서 영세한 의원은 환자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말에 은행에서 3억을 빌리고 전재산을 털어넣는 도박을 벌였지만, 결과는 처참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은행 빚은 매월 상환해야 하는데 수입은 이자 메우기에도 벅찬 수준이다. 환자는 늘지 않는데 인건비와 세금 등 고정비용은 계속 늘어 이대로 가면 파산"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사람의 인건비라도 줄이기 위해 병원일을 보고 있다는 김 원장의 아내 이모씨는 "아직 갚아야 할 돈이 산더미인데 자리도 잡지 못했다"며 "차라리 봉직할 때가 좋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김 원장뿐만 아니라 개원한지 얼마되지 않은 젊은 의사들에게는 공통된 현상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젊은 의사들은 자본금이 없기 때문에 부모나 처가에서 지원해 주지 않으면 개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대출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조흥은행 자료에 따르면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호스피털 론' 대출상품이 지난 20일까지 1,660건이 팔려 대출상환 예정액은 2천250억을 기록했으며 한미은행은 초기 개원자금 지원상품인 '닥터론'의 대출상환 예정액이 약 2천800억에 이르러 의사들이 순수은행권에서 대출한 금액만 총 5천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대출이 많은 이유로는 개원시 필요한 자금 외에 의료기관의 월별 적자도 한몫을 하고 있다. 김 원장의 경우 하루에 평균 40명 정도의 환자를 본다고 한다.

하루에 본인부담을 포함해 8000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8000 X 40명= 320,000 한달이면 320,000 X 30 = 9,600,000 으로 대략 추산된다.

그러나 인건비 직원 2명, 3백만원에 임대료 3백만원, 재료값, 의료장비 리스료, 세금(관리비), 홍보비, 은행상환 등을 빼면 거의 수익이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와 관련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27일 개최한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 의료정책포럼에서 발표한 경영분석에 따르면 진료과목별 동네의원의 급여수입이 원가보다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내과는 급여수입이 3억887만원인 반면 급여원가가 3억4138만원으로 무려 3,250만원이 차이가 났다.

또한 외과 -2,257만원, 소아과 -4,647만원, 일반의 -3,885만원 등에 달했다.

환자 수 감소, 임대료 감당 못해

강남지역 역세권인 서초, 삼성, 압구정, 반포, 강남 등지는 엄청난 임대료 때문에 상황이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요사이 경기불황으로 수술환자들이 급감한 가운데 강남의 한 안과의 경우 평당 분양가 550만원에서 600만원에 이르는 고가의 빌딩에 입주해 월별 고정지출 60% 해당하는 임대료를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다.

R 안과 원장은 "초기 개원시에는 수술환자가 많아 그럭저럭 운영이 되었는데 보시다시피 현재 단순질환자가 대부분"이라며 "단순질환 수가로는 하루에 100명을 진료해도 투자대비 수익을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식이면 학회에서 하지말라고 권고한 사항이지만 무료수술 행사 등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고서라도 환자를 유치하는 수 밖에 없다"며 "이렇게라도 병원을 유지한 뒤 계약기간을 채우고 유지비가 덜 드는 다른 곳으로 이전할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최근 의료기관 컨설팅전문 플러스클리닉이 부동산114와 공동으로 분석한 9월 개원후보지 동향을 살펴보면 강남권 개원후보지의 매물이 38.9%로 8월에 비해 0.5%포인트 증가해 강남지역 의원 매물이 계속 증가세를 유지했다.

이와 관련 의료계 한 관계자는 요사이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병의원들이 분양받은 매물을 팔기 위해 빚 내서 병원을 유지하면서 팔리기만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며 이에 속고 입주한 병의원들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불황 속 홍보비용은 오히려 더 늘어나

압구정동 H 성형외과는 최근 한달간 인터넷을 비롯한 잡지에 병원 광고비용으로 총 4천만원정도를 지출했다.

H 성형외과 원장은 "환자가 떨어지면 더욱 홍보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며 "최근 인터넷 모 싸이트에 2주간 2천만원을 주고 배너를 걸었고 지하철과 버스 잡지 등 오프라인에 2천만원을 투자해 홍보활동을 벌였다"고 말했다.

또한 B 피부과의 경우 추석을 전후로 언론매체에 보도자료 등을 송부하면서 대행업체에 지불한 돈만해도 한달 운영비에 20%를 차지한다며 빚을 내서라도 병원을 살리기 위해 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고 박 모 원장은 전했다.

박 원장은 "요새 인터넷 홍보는 기본이고 고급스러운 홈페이지로 환자들의 이목을 끌어야 한다"며 "고용량 서버와 홈페이지 제작업체 쪽에 매월 업데이트 비용으로 2백만원 정도를 지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환자 수는 줄어드는데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은 계속해서 늘어만 간다"며 "이러한 악순환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직원들 월급을 줄이기 보다 원장 자신이 허리띠를 졸라메서 홍보라도 한번 더 하는 것이 그나마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또 "최근 국감에서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벌고 있으므로 적정수준의 급여수준 책정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여기서 더이상 무엇을 어떻게 더 줄여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간다"며 "의사들이 매출은 그대로 노출되지만 그것이 순수익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설립한 병원이라지만 개업의사라고 환자에 애착이 없겠습니까? 정말 돈 없어도 유지되고 의사가 일한만큼 대접받는 사회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그에 따른 보람으로 평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현재 처한 의료현실의 굴레를 벗겨주길 고대하고 또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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