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벡 약가인하 이끈 환자활동가의 죽음

안창욱
발행날짜: 2006-05-27 07:35:08
  • 김상덕 씨 백혈병으로 26일 사망...시민단체장 장례

백혈병 환자들이 중심이 된 2002년 글리벡 보험약가 인하 투쟁을 이끌었던 한 시민활동가가 골수이식 후유증에 시달리다 끝내 세상을 떠났다.

백혈병 환자이면서 한국백혈병환우회와 건강세상네트워크에서 환자권리운동에 헌신해 왔던 김상덕(향연 34세.사진) 씨가 26일 새벽 10여년 자신을 괴롭히던 골수이식 후유증의 고통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던 고 김상덕 씨는 1997년 백혈병 판정을 받았고, 노바티스사가 혁신적 신약인 글리벡을 출시하면서 현장 활동가라는 새로운 인생의 길로 들어섰다.

김상덕 씨가 현장 활동가로 들어선 것은 2000년 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공동대표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강주성 공동대표는 골수이식을 위해 서울의 모대학병원에 입원한 상태였고, 김상덕 씨는 골수이식 부작용으로 입원치료를 받으면서 강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두 사람은 모두 평범한 환자였다.

그러던 중 노바티스사가 2001년 글리벡을 국내에 시판하면서 보험약가로 1정당 2만5647원을 요구하자 혁신적 신약 약가 인하를 요구하는 ‘환자 당사자운동’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이 국내에서 싹 뜨기 시작했다.

노바티스사의 보험약가 요구에 대해 강주성 대표를 포함한 백혈병환자들은 글리벡 약가 및 본인부담 인하를 요구하는 당사자운동을 시작했고, TV를 통해 이를 지켜보던 김상덕 씨는 강 대표를 찾아가 약가인하투쟁에 합류하게 된다.

글리벡 약가 인하를 요구하는 환자들의 반발은 더욱 확산 일로로 치달았고, 강주성 대표와 김상덕 씨는 이듬해 한국백혈병환우회라는 환자단체를 창립, 조직적인 대응에 나섰다.

결국 복지부는 2003년 김상덕 씨 등이 국가인권위원회 농성에 들어가자 환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복지부는 2003년 1월 백혈병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글리벡 외래 본인부담률을 30∼50%에서 20%로 일괄적으로 인하하고, 노바티스사는 약값의 10%를 추가로 무상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글리벡 약가인하 투쟁은 백혈병환자들이 직접 약가인하투쟁에 나섰다는 점 이외에도 선진 7개국의 평균 약가를 기준으로 하는 혁신적 신약의 가격결정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고,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이 과도하다는 여론을 확산시켜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을 크게 낮추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후 김상덕 씨는 건강세상네트워크에 합류해 혈액질환자를 위한 혈소판 대책 마련, 선택진료제 폐지, 병실료 및 입원보증금 문제 등 환자권리운동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그는 활동가로서 왕성한 삶을 살았지만 매순간 병마에 시달려야 했다.

골수이식 후유증으로 침이 말라 치아가 모두 빠지고, 백반증 등의 합병증으로 엄청난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결국 그는 지난해 말 활동가의 삶을 접었다.

강주성 대표는 “늘 함께 하던 동지를 잃었다”면서 “백혈병으로 인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모든 환자의 권리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며 슬픔에 잠겼다.

건강세상네트워크,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1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시민사회단체 합동장으로 장례를 주관했고, 그의 유해는 27일 마석 모란공원 납골당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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