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구제법의 불가능한 요구

안용항
발행날짜: 2007-09-11 09:17:45
  • 안용항 의료와 사회포럼 정책위원

우리가 이성적 사회를 추구한다면 ‘아무런 이유 없이 폭력을 당해야 하는 사람’들을 구제해 주어야 할 것이다. 법의 존재 이유가 타당하지 못한 폭력 방지임을 생각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의료사고 구제법은 의료 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료 지식이 상대적으로 많은 전문가(의사)에 비해 의료 지식이 부족한 환자의 피해를 보호하기 위해서, 의료 사고의 원인을 전문가(의사)에게 규명하라는 것이 중요한 취지 일 것이다. 의료 사고 시 전문적 의료 지식의 불평등으로 ‘환자가 사고의 원인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은 상당히 공감이 가는 이유이다.

하지만 ‘의사가 모든 의료 사고를 입증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도 검토해보아야 한다. 만약 ‘의사도 의료 사고를 입증할 수 없는 경우’는 없는가를 검토한 다음 그 경우라면 ‘의료 사고를 의사와 환자 둘 만의 입증 문제’로 바라보는 의료 사고법들은 재검토되어야 함이 분명하다.

의사와 환자 모두 의료 사고를 입증할 수 없는 경우, 두 사람 중 하나에게 무조건 의료 사고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결정해야하는 법은, 의사나 환자 중의 한사람에게 ‘이유 없는 폭력을 가하는 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은 이성적 법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로 법은 당연히 ‘명확한 의료 사고의 원인과 결과’에 기초한 판결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야한다. 그래야 이성적이며 공정한 법이 되는 것이다.

의료 사고는 1.의사의 잘못 2.환자의 잘못 3.현대 의학의 한계로 인한 불가피한 사고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의료 사고 중 3번의 경우는 현대 의학의 한계로 명확한 사고의 원인을 입증할 수 없으며 누구의 잘못인지 확인할 수 없다. 환자는 물론이고 전문가인 의사도 자신의 잘못이 없음을 입증할 수 없는 경우이다.

현대 의학의 한계로 인해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의료 사고의 예를 들면, 통상적인 진단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질병의 진단이 실패한 경우, 특수한 환자에게서 약이 과민반응을 유발한 경우 등이 제일 흔한 경우 일 것이다. 의료 사고 구제법에서 누가 입증 책임을 지든 간에 ‘양측 모두가 입증할 수 없는 경우를 명시’하지 못한다면, 그 법은 입증 책임을 지우는 측(의사이든 환자이든)에 이유 없는 폭력을 가하는 법이 되는 것이다.

또한 환자 치료를 자연과학에 기초한 원칙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의사는 가난한 환자가 올 경우 환자의 사정을 고려하여 교과서적 검사과정을 생략하고 의사의 경험에 따른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검사부터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환자의 여러 가지 입장을 배려하는 진료에서는, 비과학적이라고 비난받을 지라도, 의학 학문적 진단 순서보다 의사의 경험에 의존한 진단 순서를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을 치료함에 있어서 자연과학적 입장만을 고려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과학에서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문화적, 경제적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구제법 등과 같은 법률이 다양한 인간의 입장을 배려하는 유연성을 갖지 못한다면, 의사는 환자를 배려하기 보다는 오직 자연과학적 입장의 진료라는 경직된 진료를 통하여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경직된 법이 만들어지면, 의사와 환자 사이는 더욱더 ‘배려하는 관계에서 의심하는 관계’로 바꾸어 가는 법이 될 것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이러한 불신 관계는 의료의 가장 중요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려서 양자 모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의료는 '불확실성, 불확정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서 사고의 위험이 항상 전제되고 있는 직업이다. 200년 전 미국에서 전염병이 돌때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보다도 잘못된 치료로 죽인 사람이 많았다는 통계가 있다. 잘못된 치료라는 것을 알게 된 시기는 많은 사람이 죽고 난 한참 뒤이다.

현대 의료도 여전히 '불완전'하므로 200년 전 미국 상황과 같은 것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의료의 불완전성을 의사와 환자 모두 인정한다면, 입증할 수 없는 의료사고의 경우를 서로 인정하고 그러한 사고시 '상호 배려하는 이해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의료 사고 구제법이 이러한 의료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만들어, 표퓰리즘적 선택을 한다면 이성적이고 미래지향적 법이 될 리가 없다.

▶이 칼럼은 메디칼타임즈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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