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화된 간판 차별성 없어…신환 점점 줄어"

# 강남의 메디컬 테마 빌딩에 입주한 A성형외과도 간판을 바꿨다. 건물 전체에서 다 바꾸는 거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막상 간판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건물에 입주한 10여 개의 병원 간판 사이에서 자기 병원을 찾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 모두 고만고만한 디자인이었다.
디자인서울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간판 정비 사업. 서울을 세계적인 고품격 디자인도시로 육성한다는 취지다. 정비 후 건물이 깔끔해지고 어지럽던 간판이 표준화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의견이다.
반면 획일화된 서체와 크기로 개성과 활력을 잃었다는 지적도 있다. 영세한 의원에서는 정비 후 오히려 환자가 줄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차별성 없는 간판 디자인과 읽기 어려운 서체가 가독성을 헤쳤다는 지적이다.
"길 건너 자율 지역은 무법지대…간판 정비 지역만 손해"
관악구의 한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J성형외과 원장은 간판 정비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1년 전에 간판을 바꿨다는 그는 시범 거리 지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범 지역 외에는 자율적이라는 것. 실제로 이 병원 모퉁이만 돌면 돌출형 간판도 많고 크기도 커서 아무래도 환자들은 그쪽에 시선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쇼핑몰은 돌출 간판이 없어 건물 자체의 깔끔함은 좋았다. 하지만 비슷한 디자인으로 쭉 늘어선 간판들이 밀집돼 있어 눈에 띄기 어려웠다. 길 건너 편, 비 간판 정비 구역의 돌출된 형형색색의 간판들과 큰 대비를 이뤘다.
근처 S피부과는 별도의 타이포그래피 로고가 있지만 그 디자인을 사용할 수 없었다. 서체와 색채, 크기 가이드라인을 맞추려면 고유 디자인을 버려야 했다. 고유의 로고를 살려본다고 노력했지만 가이드라인에 맞추자 영락없는 다른 간판이 돼버렸다. 서체와 색채 규정이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붕어빵 간판'을 찍어냈기 때문이다.
비슷한 디자인과 작은 크기 간판…"사람들, 병원 존재 몰라"
D이비인후과의 원장은 크기 규제에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간판은 각 의원의 생명인데 규제하면 어떡하냐"고 반문했다. 작은 간판을 단 이후부턴 사람들이 병원의 존재 자체를 모르게 됐다는 것.

가만히 손 놓을 수 없어 도로에 이동식 간판을 세워보기도 했지만 단속에 걸려 이내 포기했다고 한다. 한때는 궁여지책으로 병원 유리창에 스티커로 병원 이름을 붙여도 보았지만 구청에서 경고장이 나온 후엔 띠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규제가 풀린다면 이전의 간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전하며 "통일성과 표준화도 좋지만 지금은 환자들도 길을 물어서 올 정도로 불편을 겪는다면 그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에 관해 강남구청의 도시디자인과 관계자는 간판 표준화 작업으로 획일화된 측면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한 업소당 3~4개의 간판을 달기도 해 어지럽게 난립해 있었던 점이 해소된 것은 분명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그는 현재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가이드라인 안에서 개성을 표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디자인 공모전과 시민이 뽑은 좋은 간판 디자인을 공모 하는 등 개선에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