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몰아내더니 뒤늦게 시범사업 참여 결정 "반대 명분 없다"
2012년 11월. 한의사들이 한의협 회장실을 점거하고 회장 퇴진을 요구했다. 회장이 회원들의 뜻에 역행해 첩약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 3월. 첩약 시범사업 철회를 공약으로 내세운 김필건 회장이 56%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다.
그리고 현재. 회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의협 대의원들이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첩약 시범사업 참여를 결정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8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한의협에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 대의원회가 한약조제약사와 한약사가 포함된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자 이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재점화되고 있다.
첩약 시범사업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김필건 한의협 회장은 "임총의 무효를 선언한다"고 강경한 어조를 전달한 반면 대의원이 중심이 된 첩약 급여 TF팀은 "집행부와 별개로 복지부와 논의해 나가겠다"고 맞서고 있다.
첩약 시범사업에 맹렬한 반대 목소리를 내던 한의사들이 왜 돌연 입장을 바꿨을까.
22일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TFT 발대식을 가진 임장신 위원장은 "지난 해 회원들이 극심한 첩약 반대 주장을 했던 것은 성급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면서 "특히 김정곤 회장의 탄핵건과 관련해 첩약의 파급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부족했다"고 전했다.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에 한의사뿐 아니라 한약조제약사(한조시약사), 한약사도 참여하게 되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아예 첩약의 중단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는 것.
김정곤 회장의 횡령 의혹 등이 탄핵안으로 급부상하면서 김정곤 회장의 '성과물'인 첩약 급여화에 대한 반대 주장이 힘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임 위원장은 "당시 반대 목소리들이 득세하던 상황이라 대부분의 회원들이 한쪽 주장만 듣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의 구체적인 평가를 내리지 못했다"면서 "첩약 사업이 잠정 중단된 이후 내부에서 이를 아쉬워 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전했다.
3년간 총 1조 2천억원이 소요되는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을 정치적인 이유로 반려하기에는 한의사 전체의 손실이 너무 크다는 것이 TF팀의 판단.
실제로 지부 회의를 통해 민심을 접한 결과 많은 회원들이 첩약에 긍정적이거나 적어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는 전향적인 자세로 변화된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한의학이 국가 필수 의료가 되면 한의사도 필수 인력으로 생존해 나갈 수 있다"면서 "첩약 급여화를 통해 국민들의 접근성과 이용률을 높이면 급여부분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와 명분이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조시약사와 한약사들의 참여 여부는 TF팀의 사업 추진에도 잠재적인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임 위원장은 "한조시약사와 한약사들의 임의 진단을 배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면서 "이는 자격없는 자들이 첩약을 남발해 국민 건강권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고 덧붙였다.
첩약 급여화 반대의 '뇌관'이 됐던 한조시약사와 한약사들의 참여를 최대한 배제하는 쪽으로 민심을 잠재우겠다는 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