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심병원 전욱 원장 "환자는 가족보다 우선이죠"
초등학교도 아직 들어가지 않은 한 꼬마는 산에서 잡아온 개구리의 배를 갈랐다. 그리고 엄마에게 된통 혼났다. 어린 아이가 너무 잔인하다고.
그는 단지 개구리가 어떻게 살아서 움직일 수 있는지 배를 갈라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이는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전욱 병원장(화상외과)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는 그때부터 외과의사의 길이 예정돼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외과 분야는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그 중 화상은 외상의 한 파트로 환자군이 다양합니다. 의사가 결정하는 것도 특히 더 많습니다. 환자 나이, 화상 부위가 모두 다르고 화상원인도 다릅니다."
전욱 병원장은 외과 중에서도 화상외과의 매력을 이같이 설명했다.
그가 위암과 화상 환자를 함께 보다가 화상외과의 길을 선택하기로 한 것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동차 화재로 부모를 잃고,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일곱살 남자아이가 한강성심병원으로 실려왔다. 피부의 50~60%가 화상을 입었다. 그냥 두면 감염으로 24시간 안에 죽을 아이였다.
"당시 아이의 보호자였던 할아버지의 피부를 떼어 내 손자에게 이식했습니다. 당시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를 이식하는 것에 대해 윤리적 질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생명이 소중했습니다."
전욱 병원장의 과감한 선택으로 동종피부이식수술을 받은 그 아이는 이제 18살이 됐다.
이후 전욱 병원장은 소아 화상환자에게 부모의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로 9명의 생명을 살렸다.
그는 "화상 범위가 넓은 환자들에게 기존 치료는 무방비했다. 당시에는 (동종피부이식술에 대한) 의료수가도 없었고, 정상인의 피부를 왜 떼어내냐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전욱 병원장은 환자 9명의 데이터로 정부와 동료들을 설득하면서 동종피부이식술을 적극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여왔다. 2005년에는 인체조직에 관한 법률까지 생기면서 '피부은행'도 만들어졌다. 피부이식이 보다 더 용이해진 것이다.
그는 병원장 업무와 함께 연구에도 몰두하고 있다. 세계 최초인 바이오인공피부는 동물실험을 하는 중이며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진피 국산화를 위한 개발 연구에도 매진중이다.
그가 이처럼 화상환자 치료와 연구에 매진하는 원동력은 바로 '애국심'이다.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는 1971년 개원한 후 급성기 화상환자 수술만 4만건 이상입니다. 단순히 사립병원에 속한 기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한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러나 전쟁이 나더라도 이 자리에서 계속 화상환자를 치료하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은 2011년 화상센터를 특화시키면서 진료과목을 축소하고 화상전문병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전문병원 신청도 할 예정이다.
"외과의사라는 자부심 가져야…수가는 곁다리일 뿐"
전욱 병원장은 2011년 2월부터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장을 거쳐 2012년 9월 병원장을 맡아 취임 2년차를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한달에 세 번씩 당직을 서고 꾸준히 수술을 하며 메스를 놓지 않고 있다.
"2~3년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찾아왔습니다. 한 줄로 누가 정리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떤책을 봐도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공지영 씨의 <지리산 행복학교>라는 책을 읽었죠."
책에서 도시생활에 지쳐 귀농, 귀촌한 문화예술인들이 지리산학교를 만들어 자신의 재능을 일반인들에게 기부하고 거기서 행복을 찾고 있었다.
전욱 병원장은 "혼자 만족하는 인생보다는 내가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삶을 살 때 잘 살았구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외과의사인 나의 재능은 환자를 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과 인연을 맺은 그는 그 길로 직접 지리산을 올랐고, 등산의 매력에 빠졌다. 덕분에 지리산과 설악산을 한해 2번씩 찾고 있다.
그는 외과를 기피하고 있는 요즘 후배들에게도 직언했다.
"외과의사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자부심을 갖고 하세요. 수가는 곁다리일 뿐입니다. 진짜 환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외과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상'에 푹 빠져사는 그에게 '환자'란 어떤 의미일까.
"내 인생이죠. 환자가 가족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과의사는 환자의 마지막 생명 지킴이이니까요."
그는 단지 개구리가 어떻게 살아서 움직일 수 있는지 배를 갈라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이는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전욱 병원장(화상외과)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는 그때부터 외과의사의 길이 예정돼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외과 분야는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그 중 화상은 외상의 한 파트로 환자군이 다양합니다. 의사가 결정하는 것도 특히 더 많습니다. 환자 나이, 화상 부위가 모두 다르고 화상원인도 다릅니다."
전욱 병원장은 외과 중에서도 화상외과의 매력을 이같이 설명했다.
그가 위암과 화상 환자를 함께 보다가 화상외과의 길을 선택하기로 한 것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동차 화재로 부모를 잃고,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일곱살 남자아이가 한강성심병원으로 실려왔다. 피부의 50~60%가 화상을 입었다. 그냥 두면 감염으로 24시간 안에 죽을 아이였다.
"당시 아이의 보호자였던 할아버지의 피부를 떼어 내 손자에게 이식했습니다. 당시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를 이식하는 것에 대해 윤리적 질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생명이 소중했습니다."
전욱 병원장의 과감한 선택으로 동종피부이식수술을 받은 그 아이는 이제 18살이 됐다.
이후 전욱 병원장은 소아 화상환자에게 부모의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로 9명의 생명을 살렸다.
그는 "화상 범위가 넓은 환자들에게 기존 치료는 무방비했다. 당시에는 (동종피부이식술에 대한) 의료수가도 없었고, 정상인의 피부를 왜 떼어내냐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전욱 병원장은 환자 9명의 데이터로 정부와 동료들을 설득하면서 동종피부이식술을 적극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여왔다. 2005년에는 인체조직에 관한 법률까지 생기면서 '피부은행'도 만들어졌다. 피부이식이 보다 더 용이해진 것이다.
그는 병원장 업무와 함께 연구에도 몰두하고 있다. 세계 최초인 바이오인공피부는 동물실험을 하는 중이며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진피 국산화를 위한 개발 연구에도 매진중이다.
그가 이처럼 화상환자 치료와 연구에 매진하는 원동력은 바로 '애국심'이다.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는 1971년 개원한 후 급성기 화상환자 수술만 4만건 이상입니다. 단순히 사립병원에 속한 기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한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러나 전쟁이 나더라도 이 자리에서 계속 화상환자를 치료하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은 2011년 화상센터를 특화시키면서 진료과목을 축소하고 화상전문병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전문병원 신청도 할 예정이다.
"외과의사라는 자부심 가져야…수가는 곁다리일 뿐"
전욱 병원장은 2011년 2월부터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장을 거쳐 2012년 9월 병원장을 맡아 취임 2년차를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한달에 세 번씩 당직을 서고 꾸준히 수술을 하며 메스를 놓지 않고 있다.
"2~3년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찾아왔습니다. 한 줄로 누가 정리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떤책을 봐도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공지영 씨의 <지리산 행복학교>라는 책을 읽었죠."
책에서 도시생활에 지쳐 귀농, 귀촌한 문화예술인들이 지리산학교를 만들어 자신의 재능을 일반인들에게 기부하고 거기서 행복을 찾고 있었다.
전욱 병원장은 "혼자 만족하는 인생보다는 내가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삶을 살 때 잘 살았구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외과의사인 나의 재능은 환자를 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과 인연을 맺은 그는 그 길로 직접 지리산을 올랐고, 등산의 매력에 빠졌다. 덕분에 지리산과 설악산을 한해 2번씩 찾고 있다.
그는 외과를 기피하고 있는 요즘 후배들에게도 직언했다.
"외과의사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자부심을 갖고 하세요. 수가는 곁다리일 뿐입니다. 진짜 환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외과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상'에 푹 빠져사는 그에게 '환자'란 어떤 의미일까.
"내 인생이죠. 환자가 가족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과의사는 환자의 마지막 생명 지킴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