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와 두려움에 대하여

최혜란
발행날짜: 2014-04-11 06:08:08
  • 조선대 의전원 4학년 최혜란 씨

무슨 글을 쓸 것인가?

처음 메디칼타임즈에 연재 제의를 받았을 때 과연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1년 전부터 '의대생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기사와는 사뭇 다르게, 주제에 대한 특별한 제한도 없고 온전히 나의 역량으로 채워나가야 하는 것이니 고민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어차피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도 특별한 방향이나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은 편안하게 풀어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첫 글은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죽음의 공포가 초5를 엄습하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엔가 자아의식이 점점 발달하면서 결국에는 그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불러 일으켰다. 자고 있는데 문득 ‘언젠가는 내가 죽고 없어지는구나, 죽는다는 것이 뭘까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한동안 그렇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급기야는 이불을 막 발로 차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주의 근원을 밝히고자 하는 이론인 ‘빅뱅이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그런 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우주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너무너무 넓고 오래된 우주는 아직까지도 팽창하고 있고, 100년 남짓한 시간을 살다가 가는 인간의 삶이란 그에 비하면 '먼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우주영화 광팬이 되었다. '아폴로 13'이나 '스타워즈'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contact' 같은 영화들이다. 광활한 우주에서 조그맣고 파랗게 빛나는 지구를 영화 속에서 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작년에 보게 된 영화 'Gravity'.

그래비티 주인공이 극복한 두려움..

그래비티는 충분히 '눈이 즐거운' 영화이지만, 나는 기술적인 것 보다는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 보이는 플롯에 흠뻑 빠져들었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내가 줄곧 생각해왔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우주의 먼지 같은 인간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주인공이 살기 위해서는 캡틴과 연결되어 있는 선을 분리해야만 한다.
사고로 딸을 잃고 의욕 없는 삶을 보내다가 우주인이 되어 허블망원경을 고치고 있는 주인공은 지구에 있을 때 '대화가 나오지 않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드라이브'하는 것이 여가시간에 하는 일의 전부였다. 그리고 우주가 좋은 이유는 역시 '고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구에서의 삶은 빈사상태나 마찬가지였고, 지구상의 어떠한 관계도 거부하는 삶이었다. 그녀는 지구가 그리울 리 없을 것이다. 어쩌면 돌아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혹독한 위기상황을 겪으며 우주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처음에는 미지의 세계에서 자신을 위협으로부터 지켜주고 임무를 마치도록 이끌어준 어머니 같은 존재가 있었다. 임무를 총괄 지휘하는 캡틴이다. 그는 주인공이 우주미아가 될 위기에 처해지자 그녀를 구출해내고, 죽음이 닥쳐올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법도 알려준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태아가 뱃속에 있을 수 없듯, 서로 연결되어 있던 그 둘은 사고로 인해 떨어지고 만다. 주인공은 혼자 살아남게 되고,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나간다. 주인공이 불타는 모선에서 탈출에 성공하여 지구로 돌아가려할 때 연료가 바닥 나버려서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어머니 같았던 캡틴과의 상상 속 재회로 인해 다시 삶의 의욕을 찾게 된다. 삶의 의지는 무서운 것이었다. 그녀는 지구로 돌아갈 궁리를 한 끝에 영리한 방법으로 지구를 향해 낙하하는 중국의 인공위성에 도달한다. 그리고 우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중력'(gravity)이 그녀를 지구로 인도한다.

이 단순한 서사 안에서, 온갖 종류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간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읽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나는 여기에서 머릿속에 오랫동안 엉켜있던 실타래를 조금은 풀었다. 우주는 광활하고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먼지 같은 나의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고 그래서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괜찮을까? 이따금씩 이렇게 생각하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지구로의 복귀'를 통해, 결국 답은 '두려움은 잊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나에게 알려준 것 같았다. 왜냐면 주인공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맞닥뜨린 수많은 난관 중 가장 먼저 극복해야 했던 것은 우주 공간에 '홀로 남겨져있다는 두려움'이었기 때문이다. 정

신과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인간이 느끼는 가장 최초의 불안이자 두려움이 바로 출생하는 사건, 이른바 'birth trauma'라고 했다.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편안했던 모체에서 쫓겨나 미지의 세상과 마주하는 공포. 주인공이 느낀 공포가 바로 이런 출생의 공포와도 같지 않았을까? 주인공은 그렇듯 엄청난 심리적인 압박감을 이겨내고,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결국 우주에서 새로 태어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라는 작은 우주 안의 나

무슨 일을 하든 처음이고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참 많이 두렵다. 내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공부량, 부족한 수면, 엄한 선배들.. 말로만 듣던 모든 것이 다 두려웠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에서 하루씩 살아가다보니 벌써 4학년이 되었다. 공부할 것이 많아도 걱정만하고 있을 때 보단 시작해서 몰두하다보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길이 보였고, 어려운 사람과의 만남도 계속 반복되다보면 조금씩 편안해지게 됐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름대로 애쓰면서 지냈던 지난 4년간의 학교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학교라는 작은 우주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며 새롭게 태어났다고 느끼게 됐다. 결국에는 죽음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저 미지의 세계 중 하나일 뿐 그 두려움에 압도될 필요가 없고 그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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