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가는 해외여행

양기화
발행날짜: 2015-01-05 05:45:53
  • 우리는 스페인으로 간다[7]

알람브라궁전의 추억(2)

뒷팀으로 나사리에스 궁전에 입장해 기다리고 있던 조형진 가이드와 앞팀과 만나 구경을 시작했다. 나사리에스궁전에는 메수아르궁, 코마레스궁 그리고 사자의 궁이 있다. 제일 먼저 만나는 메수아르궁은 이스마일1세와 무함마드5세가 세워, 왕의 집무실로 쓰던 곳으로 코란을 암송하거나 각료회의를 열던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벽면과 천정에서 '돋을새김'으로 정교하게 장식된 이슬람 장식과 처음 만나게 된다. 이슬람예술을 설명한 나스르(Nasr)는 이슬람장식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슬람 예술은…… 신성한 책, 코란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구현시키는 캘리그라피의 형태에 결합하고, 기하와 꽃패턴을 이용해서 물질을 고상하게 만드는 한 방법이다." 비잔틴과 사사니언 문화에서 유래한 이슬람 장식은 아라베스크, 기하, 캘리그라피로 구성되며, 서로 연관돼 건축의 아름다움과 상징을 극대화시킨다.

이희숙박사가 쓴 <이슬람 캘리그라피>에서 "비문은 각이 진 기하학적 형태로 바싹 죄고, 식물 아라베스크는 집중적으로 혹은 나선형으로 싸여 있다. 기하의 네트워크는 꽃봉오리나 잎을 사용하여 그것의 각진 면을 예리하게 하였다. 한마디로 이슬람 장식의 특수성은 세 장르가 서로 침투하여 그들의 기능에 모호를 만든다.”라고 설명돼 있다.

아랍 정신의 독창적 창조로 간주되는 아라베스크는 스타일화된 식물 형태로 동지중해에서 자라는 아칸투스와 바인 스코롤에 기원을 두고 있다. 계속된 한 줄기에서 갈라지는 대신, 한 특수 식물이 어떤 방향으로 서로 성장하는 기하학적 패턴이다. 아라베스크는 리듬을 가진 조화로운 움직임과 전 표면을 채움이라는 원칙이 있다.

기하에서는 틀짜기, 채우기 그리고 연결하기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단일성을 은유하는 것으로 '하나'이며 '다수'를 나타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펜으로 그들이 쓴 것'으로 시작하는 코란 68장이나, '하나님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을 펜으로 가르치신 분'이라고 한 코란 96장을 보면, 이슬람 캘리그라피는 상징적 의미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체라고 하겠다. 따라서 훌륭한 문자로 발전시키는 일이야말로 무슬림의 의무인 것이다. 알람브라궁전의 거의 모든 벽에는 "하나님이 없이는 승리도 없다"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메수아르궁을 나서면 코마레스궁전 사이에 있는 황금의 안뜰로 이어진다. 이곳은 술탄이 백성들에게 강연을 하던 곳이다. 60개의 반원모양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원반 모양의 낮은 분수가 뜰의 중앙에 놓여 있다. 분수의 중심에 놓여있는 화두로부터 졸졸 흘러내리는 물이 원반의 가장자리로 넘쳐서 흘러내린다. 이 낮은 분수를 비롯해서 나사리에스궁전에는 각양각색의 분수를 볼 수 있다.

분수를 흐르는 물은 멀리 시에라네바다산으로부터 끌어오는데, 만년설이 녹은 물을 끌어와 다음에 소개할 헤네랄리페의 정원을 장식하는 분수를 통과한 다음 이곳으로 흘러내린다. 이 모든 수리시설이 기계의 도움 없이 지형의 높낮이를 이용한 수압의 차이만으로 물흐름이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해서 이슬람의 놀라운 수리능력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분수 뒤편으로는 스투코 판넬로 정교하게 세공된 아케이드도 볼만하다.
황금의 뜰은 코마레스궁으로 이어진다. 코마레스궁은 유수프 1세와 그 아들인 무함마드 5세에 걸쳐 건설됐는데, 중앙에 있는 아라야네스 정원의 가운데에는 긴 연못이 있고 그 주위에 잘 다듬어진 아라야네스 나무가 서있다. 허브의 일종인 아라야네스는 향수나 로션의 원료로 쓰이고, 약용으로도 쓰인다.

연못에 코마레스탑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비치는 모습을 보면 좌우대칭이라는 이슬람건축의 원칙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높이 45미터에 달하는 코마레스 탑 아래에는 술탄의 집무실인 코마레스홀이 있다. 궁전에서 가장 넓은 이곳은 '대사들의 방' 혹은 '황제의 방'이라고 부른다. 기하학적 무늬로 조각된 창문을 통하여 빛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밖에서는 내부에 있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확인할 수 없는 구조라고 한다.

이방의 창문들은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돼 있었다고 하는데, 알람브라궁전이 함락된 다음, 이곳을 차지한 집시들이 모두 뜯어다 팔았다고 한다. 천장에는 알라만이 유일한 법이요, 힘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캘리그라피와 기하무늬로 장식돼 있다.
이어서 무함마드5세가 지은 사자의 궁이다. 사자의 궁은 사자들의 안뜰을 중심으로 왕의 방, 아벤세헤라의 방, 두 자매의 방 등, 왕과 처첩들이 기거하는 방들이 배치돼 있다. 당연히 왕과 가까운 친척 이외의 일반 남자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금남의 구역, 하렘이었다.

사자의 안뜰의 중앙에는 12마리의 사자가 새겨진 대리석 분수가 있고, 정밀하게 세공된 124개의 대리석 기둥이 뜰을 둘러싸고 있다. 12마리의 사자들이 등을 대고 서있는 모습으로 조각된 대리석 분수는 유대인 12부족의 대표들이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 시간 마다 사자들이 돌아가면서 입으로 물을 내뿜어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사자상에서 흘러나온 물들은 사자의 안뜰에 연해있는 방으로 흘러든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 옛날에 벌써 대리석 기둥의 중간에는 납으로 된 판을 끼워 넣어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내진설계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벤세헤라의 방과 두 자매의 방에 들어서면 화려한 내부의 장식에 우선 놀라게 된다. 특히 천장의 장식은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서로 마주하고 있으면서 비슷한 모습을 한 두 방의 천장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아벤세라헤스의 방 천장이 별모양에 조금 추상적이라면, 두 자매의 방은 팔각형에 우아하면서도 화려하다는 느낌이 든다.

김희곤 교수는 아벤세라헤스의 방 천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방에서 가장 눈부신 장관은 팔면이 뾰족하게 별을 형성하는 모카라베(Macarabe)양식의 궁륭이다. 팔면의 고창으로 파고 들어오는 햇빛의 농도에 따라 무채색의 천장장식은 실제 우주의 변화처럼 시간의 조율에 따라 춤을 춘다. 우주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팔면 홍예는 다변형으로 하늘을 상징하고 지구를 상징하는 낮은 평면 즉 사각의 홀 평면으로 연결된다."

모카라베양식은 종유석 모양에서 영감을 얻은 복잡한 장식이다. 아벤세라헤스의 방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나스르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이 왕비와 정분이 난 귀족 아벤세라헤스가문의 남자 36명을 이 방으로 유인해 참수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흘린 피가 궁 밖으로 흘러넘칠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왕과 대립하던 귀족가문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두 자매의 방을 지나면 린다라하의 망루에서 알바이신 언덕을 조망할 수 있고, 린다하라 안뜰의 출구 앞부분에 조성돼 있는 파르탈정원을 볼 수 있다. 중앙에 높은 분수대를 배치하고 주변으로는 굵고 쭉 뻗은 나무들이 흩어져 있는데, 기하학적으로 나뉘어진 구획에 잘 다듬어진 나무들과 풀들을 심어놓아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하면 참 좋겠다는 느낌이 든다.

이곳은 고고학적 자료와 건축유물을 바탕으로 20세기 들어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린다하라 망루를 지나면 황제들의 방을 만나게 되는데, 황제들의 침실로 들어가는 대기실 옆방에는 앞서 말한 워싱턴 어빙이 머물면서 <알람브라 이야기>를 집필했다고 표시돼 있다. 미국 최초의 단편소설 작가로 불리는 워싱턴 어빙(1783-1859)은 19세기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 소설가이자 전기작가이다. 1826년 초 알렉산더 H. 에버릿의 초청을 받아들여 스페인 주재 미국 공사관의 일원이 됐다. 스페인에 체류하는 동안 콜럼버스와 무어인들에 관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소설로 써냈다.

혼이 나간 듯 조형진 가이드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사리에스 궁전 밖이었다. 일행들이 참았던 생리문제를 해결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면서 일진광풍이 휘몰아친다. 멀리서 천둥소리도 들리는 듯하자, 조형진 가이드는 일행을 급히 불러 모아 알카사바로 이동하도록 했다. 아무래도 아침에 좋은 날씨를 위해 기도하자는 이봄 인솔자에게 돗자리를 깔아드려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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