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④이용민 후보 "진정성과 열정으로 승부"
|기획-동행취재| 제39대 의협 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표밭을 향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발로 뛰는 선거를 표방하는 후보자들(기호 순)의 하루 일과 스케치를 통해 누구를 만나, 어떤 전략으로 표심을 공략하는지 들춰봤다. ※기호 5번 송후빈 후보는 개인 일정을 이유로 동행취재에 불참했습니다. -편집자 주-대한의사협회 제39대 회장 선거에 나온 이용민 후보를 보면서 항상 드는 의문이 있었다. 즐기듯이 선거운동을 한다는 점이다. 네거티브 공격이 들어와도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웃어 넘긴다. 전국을 오가는 합동토론회 일정도 "휴가를 온 듯이 즐겁다"고 말한다. 자신감일까? 자신감이라면 그 근원은 무엇일까? 이용민 후보와 14시간 동안 동행취재를 하면서 어렴풋이 그 해답을 엿봤다.
코끝이 아리다. 입김이 나온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목도리로 중무장을 했다. 영하 5도의 꽃샘추위라고는 했지만 바람은 더 매섭다. 11일. 하필 이용민 후보(기호 4번)와의 동행취재가 기획된 날이다.
오전 8시 30분. 금융위.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금융위원회를 찾았다. 이용민 후보가 실손보험 제3자 청구제에 항의하기 위해 1인 시위를 기획했다. 곧 이용민 후보가 나타났다. 한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피켓. 오히려 한 겹에 불과한 트렌치코트가 눈에 띈다. 악수를 청하는 손이 단단하면서 차다.
"춥지 않겠어요?"
"할 건 해야죠."
금융위 직원들의 출근시간에 맞추느라 오전을 택했단다. 이 후보의 수행비서(?) 역할을 하는 이주성 씨도 나타났다.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옆에 나란히 서니 "커피숍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등을 떠민다. "추우니까 나 때문에 괜히 고생하지 말라"는 말의 우회적 표현이다.
근처 커피숍에 들어갔다. 따라 들어온 이주성 씨와 마주했다. 그와는 구면이다. 정견발표장이나 합동토론회에서 여러 차례 눈도장을 찍었다. '얼굴이 명함'인 타 후보들의 선거캠프 관계자와는 다르게, 아직도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다.
"이용민 후보와는 형님, 동생하는 사이입니다."
1958년생인 이용민 후보와는 18년 터울. 그런데도 형님, 동생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실은 이주성 씨의 아내가 이용민 후보의 아내와 지인이라 서로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기타(Guitar) 디자이너라는 생업까지 포기하고 선거캠프에 합류했다.
그 만큼 '인간 이용민'에게 이끌린 것이냐고 묻자 "딱 선비같은 분이다"는 말이 돌아왔다. 10년 넘게 알고 지내면서 소신에 대한 실천, 언행일치를 보고 과감한 선택을 했다고 한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얼굴이 새빨개진 이 후보가 들어왔다. 몸을 녹일 새도 없이 손을 잡아 끈다. 첫 행선지는 대구. 우선 서울역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10분. 서울역. 서울역으로 향하는 차 안. 이용민 후보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타 후보 동향뿐 아니라 유권자의 민심까지 수시로 선거캠프 관계자와 통화를 나눈다. 뒷 자석에는 두툼한 선거인명부가 놓여있다. 앞 페이지는 손때로 까맣다. 그간 선거운동의 행적이다.
대구행 KTX 티켓을 끊었다. 열차 시간인 11시까지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근처 식당에서 허기를 달랬다. 이용민 후보의 메뉴는 국밥. 선거운동에 돌입한 이후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장점 하나 때문에 국밥만 찾고 있단다.
열차에 올라서야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 노곤해질 만도 한데 그런 기색이 없다. 피곤하지 않냐고 묻자 "솔직히 즐겁다"고 웃는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용민 후보는 검정고시 출신. 일당 1300원의 광산 갱도 노동자에서 막노동, 야간 주점 아르바이트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제대 이후 공부를 시작해 2년만에 경희대 의대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학비를 버느라 졸업은 2년 더 뒤쳐졌다. 그 흔한 전문의도 취득하지 못했다. 경제적인 압박이 무엇보다 컸다.
1991년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이후에도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봉직의, 당직 아르바이트, 개원의로 뛰어다닌 24년 동안 고작 3박 4일의 휴가가 전부였다. 선거운동을 하는 두 달의 기간이 그에게는 휴가와 같다고 말한 이유다.
"의쟁투에 참여했다가 검찰, 공정위 고발과 행정처분 때문에 폐업하고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했었습니다. 회생한 것도 최근 일이죠."
경제적인 압박 때문에 진료를 못하는 두 달이라는 기간이 아쉽기는 하지만 휴가 비용으로 낸 셈 치겠다는 게 그의 말.
"회장이 되는 게 수단이나 목표가 아니다 보니 회원들과 생각과 비전을 공유하는 기회를 얻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제가 지치지 않는 이유는 사실 이거에요."
오후 1시. 대구. "동대구역입니다." 이야기를 끊은 건 KTX 안내 음성이었다. 날씨가 조금 누그러졌다. 부서지는 햇살을 받으며 파티마병원까지 걸어갔다.
오늘 표밭 공략지는 파티마병원을 시작으로 영남대병원, 경북대병원, 대구시의사회 합동토론회까지 예정돼 있다.
파티마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난관에 봉착한다. 교수연구실이나 의국, 인턴 숙소를 알려달라는 요청에 안내원의 표정이 떨떠름하다. 전화를 몇 번이나 돌린 다음에야 허가(?)가 났다. 익숙하다는 듯 이용민 후보가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교수연구실에 도착하니 출입구가 잠겨있다. 출입카드를 가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한 5분여를 기다려 방문자의 틈에 섞여 연구실로 진입했다. 마치 영업사원같다고 하니 껄껄 웃는다.
"인사 여쭙겠습니다." 이용민 후보가 각 방문을 한 번씩 노크했다. 인기척이 들리는 곳이 열에 한 곳이나 될까. 응답이 없는 곳엔 문 틈으로 명함을 끼워 넣었다.
홍보 전략은 '가내 수공업'에 가깝다. 병원장과 같은 높은 분 대신 전공의, 인턴, 교수를 직접 대면한다. 문이 열리면 "안녕하십니까. 이용민 후보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외친다. 그리고 이주성 씨가 홍보 팸플릿을 건넨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 후보의 멘트. "우편투표 용지가 많이 쌓여있습니다. 선거에 동참하도록 꼭 좀 관심 부탁드립니다."
5층에서부터 시작해 11층까지 한 시간을 돌았다.
오후 2시 50분. 영남대병원.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영남대로 향했다. 또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온라인 민심을 확인한다. 슬쩍 보니 SNS 밴드에 40명이 넘는 사람이 가입돼 있다. 중간 중간 지지를 부탁하는 전화도 돌린다. 기어이 보조배터리가 등장한다.
영남대병원에서도 '가내 수공업'이 다시 등장했다. 발품이다. 이번엔 12층부터 의국과 인턴 숙소 탐방에 나섰다. 각각 떨어져 있다보니 장소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길목에서 '흰 가운'을 만날 때마다 이용민 후보가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이용민 후보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도무지 반응이 없다. 억지로 명함을 쥐어든 전공의, 인턴들이 눈길을 피한 채 종종 걸음으로 도망친다.
한 시간을 돌고 마침내 경북대병원을 향했다. 시계는 벌써 4시 30분.
경북대병원은 이미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다들 선거에 관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발품의 힘은 든든했다. 몇몇 교수들이 "지난 번에 봤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전공의도 홍보물을 봤다고 거들었다. 얼마나 돌았을까. 준비해간 300장 여장의 명함이 어느새 동났다.
오후 7시 30분. 대구시의사회.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합동 토론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대구시의사회로 향했다. 토론회는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일과를 마쳤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용민 후보가 "같이 가자"고 재차 손을 잡아끈다. 이번 행선지는 대구·경북 일반과개원의협의회 공부 모임. 이용민 후보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걸음걸이와 목소리에 여전히 힘이 들어가 있다.
택시를 타고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역 안에 있는 세미나실에 도착하니 시계는 이미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세미나실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인지 추무진 후보도 뒤따라 들어왔다.
세미나 중간에 어렵사리 후보자 안내 시간이 주어졌다. 또박 또박, 강단 앞으로 걸어간 이용민 후보가 입을 열었다.
"저 이용민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 아닙니다. 향후 의료계의 3년을 또 다시 지금처럼 그냥 흘려 보내실 겁니까. 지금까지 진정성 하나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 진정성, 한번 믿어주십시요. 판을 뒤집겠습니다."
여전히 목소리는 우렁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