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료 전산시스템, 먹통·분통·울화통

손의식
발행날짜: 2015-10-05 12:00:05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수진자 조회 프로그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요양기관포털의 이의신청 프로그램, 금연치료 청구 프로그램, 질병관리본부의 노인인플루엔자 등록 프로그램.

이들 프로그램의 공통된 특징은 의료를 기반에 둔 전산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을 하나 더 찾을 수 있다. 의료진들이 '먹통', '분통', '울화통' 등 3통을 겪어야 했다는 점이다.

지난 2012년 공단 수진자 자격확인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한 것은 4번. 4월 전기설비 정기검사로 인한 서버 과부하에 이어 8월과 10월, 11월에도 조회량 폭주에 따른 서버장애로 인해 전국적인 서비스 차질이 발생한 바 있다. 2013년에도 무려 1시간 30분 가량 먹통이 됐었다.

금연치료 프로그램은 금연 참여자의 기본정보를 입력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홈페이지가 멈춰버리는 진풍경을 낳기도 했다. 처방 등록도 먹통이었다. 상담부터 입력까지 10분이면 충분할 것을 시스템 먹통으로 40분 넘게 진료실에서 환자와 의사가 모니터와 씨름을 해야했다.

지난 3월에는 컴퓨터 운영체제 윈도우8.1 64비트 체제에서 심평원의 요양기관 업무포털 서비스 중 이의신청을 이용할 때 프로그램 작동이 중지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노인 독감 무료접종이 시작된 지난 1일에는 예방접종 등록 시스템인 '질병보건 통합관리 시스템'에 접속이 거의 안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기다리다 못한 접종자를 돌려보낸 의료기관도 다반사였다.

정부의 의료 전산화 시스템의 '먹통'으로 인해 의사는 의사대로, 환자는 환자대로 '분통'을 터뜨려야했고 아무 잘못도 없이 환자의 분통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던 의사들은 '울화통'이 터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이번 노인독감 등록 프로그램의 접속 지연은 미연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질병관리본부는 사업 시행을 앞두고 서버를 4대 준비했다. 시행 첫날 오전 9시가 넘으면서 시스템에 2만 8000명이 동시 접속하다보니 서버가 감당을 못한 것이다. 등록을 마치고 시스템을 종료하는 이들이 있으면 새로 접속하는 이들이 많아도 문제가 없겠지만 접속한 상태에서 마냥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 접속하는 이들 역시 같은 양상을 보이니 서버가 먹통이 될 수 밖에 없다.

질병관리본부는 부랴부랴 당일 저녁 서버를 긴급 수배해 총 5대로 늘렸다. 다행히 지금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하룻밤이면 구할 수 있는 서버를 왜 미리 준비하지 못했는지 질병관리본부에 묻고 싶다. 시행 첫날 접종자가 대거 몰릴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도 묻고 싶다. 비용이 문제였는지 안일한 생각이 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대기 환자뿐 아니라 요양기관 역시 물질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정부의 의료 전산화 프로그램에서 발생하는 일부 문제점을 살펴보면 사전에 조금더 철저한 검증 및 보완 과정을 걸쳤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왜 정부는 그 과정을 생략한 채 성급히 시행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모를 일이다.

'선시행 후보완'은 방식은 정부의 전통적인 운영 방향이다. 덕분에 의료기관 및 의사들과 환자는 정부의 의료전산화의 모르모트(marmotte)가 되고 있는 셈이다.

성과에 급급하기 보다 시행에 앞서 한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투자하는 자세야말로 의사와 환자를 진정한 수혜자로 만드는 길이 아닐까 싶다. 먹통, 분통, 울화통의 '통'이 아닌, 진정한 소통을 향한 정부의 자세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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