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20]
보령, 바쁜 도시를 벗어나기
본과 4학년 때 가정의학과 실습을 돌면서 홍대 입구에 개원한 선생님을 뵈러 원외 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진찰실에서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보던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선생님은 학생 때부터 아담한 의원을 개원해 10년이고 20년이고 동네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환자를 보듬어주는 의사가 꿈이었다고 했다. 종합병원에는 중환자와 어려운 질환을 돌보는 의사들이 있고 소위 '동네의원'이라 불리는 1차, 2차 의료기관에는 경한 질환을 돌보는 의사들이 있다.
일반인들이 바라보기에는 종합병원에 있는 선생님들 실력이 더 뛰어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의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경한 질환을 적절하게 처치하며 지역 의료를 담당하는 동네 의원들도 종합병원만큼 중요하다.
지역 의료의 매력을 피력했던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5월은 보령병원으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에는 인수인계를 위한 전달 인턴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응급실에는 새로운 인턴들을 겁주듯 기도 삽관을 해야 하는 중환자와 4미터 높이에서 작업하다 떨어진 환자 세명이 누워있었다. 서울 본원에서 근무하다 내려오니 보령병원은 종합병원임에도 이방인 의사에게는 아담해 보였다.
하루빨리 정을 붙이자 생각했다. 짐 정리를 하고 보령에서의 하루가 지난 다음 날이 되어서야 병원을 제대로 둘러볼 수 있었다. 새로운 환자들, 앞으로 두 달 동안 같이 일하게 될 간호사들과 인사를 하던 중 연락을 받았다.
노인 잔치를 하는 곳에 무료 진료소를 세워 봉사하기로 했는데 인턴 한 명이 동반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지역 병원 인턴들은 이런 일도 하나 싶었다.
비가 추적거리는 일요일 원무팀에서 한 명, 간호조무사 한 명, 약사 한명, 그리고 의사인 나. 이렇게 병원구급차에 몸을 싣고 논길을 달렸다. 도착한 곳은 근처 중학교로 지역 청년회에서 동네 어른들을 위한 잔치를 마련한 자리였다. 교문 입구에서 학생들이 어른들 품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청년회 조끼를 입은 건장한 청년들은 짐을 옮기고 음식을 준비했고 동네 어른들은 강당에서 청년회에서 마련한 공연을 기다렸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생경한 풍경에 시골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무료 진료소로 마련한 교실 한쪽에서 선생님들과 짐을 풀고 어른들을 기다렸다. 느긋하게 볼까 싶은 마음과는 달리 많은 어른들이 무료 진료소를 찾았고 3분 진료가 아닌 1분 진료로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대부분 허리나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퇴행성관절염 증상이 많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진통소염제와 파스를 경품 받듯 받으러 오신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간호조무사가 혈압과 혈당을 재어주면 수치를 보고 고혈압이나 당뇨가 있을 경우 병원에서 외래 치료는 받고 계신지 물어보았다. 필요한 경우 병원방문을 당부하는 일이 중요했다.
"할머니, 어디가 불편하세요?"
"아이구, 다 아프지.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손도 아프고 안 아픈 데가 없어."
"병원은 다니세요?"
"응. 저번에 허리 아파서 수술했는데 수술하고는 병원에 안 가."
"이런, 언제 수술하셨어요?"
"몰라. 기억도 안 나, 언제였는지. 그냥 약이나 좀 줘."
"할머니 그럼 제가 손가락만 잠시 볼 게요. 또 드시는 약은 없으세요?"
"고혈압 약 아침마다 한 알씩 먹어."
"네, 잘하셨어요. 꼬박꼬박 챙겨 드시고요. 제가 허리 안 아프게 하는 약 하나 드릴 테니 드셔 보시고요. 옆에서 파스랑 이런 거 저런 거 받아가세요."
무료 진료소라 준비된 약 종류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기본 약제 덕분에 큰 혼선은 없었다. 가끔 피부가 가렵거나 붉게 올라온 환자들에게는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하고 마른 기침이 멈추지 않는 환자에게는 기침 시럽 정도를 처방했다. 약 2시간 동안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프고 소화도 안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 100명 정도를 진료했다.
무료로 나줘주는 액상 소화제와 파스, 로션 등을 받으러 오셨기 때문일까. 그렇게 챙겨드리는 것만으로도 다들 고마워했다. 새파랗게 젊은 의사인데도 내 말을 경청해주신 게 감사했다.
진료 봉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청년회에서 준비한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른들을 보았다. 양손에는 약봉지와 김 선물세트, 수건이 한아름 들려있었다.
"선생님. 오늘 수고 많이 하셨네유. 서울에 있다 여기 와서 이런 것도 하고 낯설쥬?"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들으며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 보령 시내 구경을 했다. 구급차를 타고 도는 색다른 관광이었다.
"보령에서는 엘리트 코스가 있어유. 대천초등학교, 대천중학교 그리고 대천고등학교까지 나오면 보령에서 공부 좀 했다, 어디 가서 인정받을 수 있어유."
재수고 삼수고 대학 하나에 목숨 거는 청춘들을 떠올렸다. 나 혼자 세상의 모든 시련을 짊어진 것처럼 삐뚤어졌던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사회가 강요하는 욕심은 너무 큰 것이 아닐까. 서울에서 2시간 거리인 이곳은 이렇게나 느긋하고 여유로운데. 내가 자란 곳은 여전히 바쁘고 욕심을 강요한다.
동네 의사의 매력을 설파하던 선생님의 여유로운 얼굴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 언제 이런 시골에서 지내볼 기회가 있을까. 나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알지 못한 채 시골 길을 달려 병원으로 돌아왔다.
<21편에서 계속>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본과 4학년 때 가정의학과 실습을 돌면서 홍대 입구에 개원한 선생님을 뵈러 원외 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진찰실에서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보던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선생님은 학생 때부터 아담한 의원을 개원해 10년이고 20년이고 동네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환자를 보듬어주는 의사가 꿈이었다고 했다. 종합병원에는 중환자와 어려운 질환을 돌보는 의사들이 있고 소위 '동네의원'이라 불리는 1차, 2차 의료기관에는 경한 질환을 돌보는 의사들이 있다.
일반인들이 바라보기에는 종합병원에 있는 선생님들 실력이 더 뛰어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의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경한 질환을 적절하게 처치하며 지역 의료를 담당하는 동네 의원들도 종합병원만큼 중요하다.
지역 의료의 매력을 피력했던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5월은 보령병원으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에는 인수인계를 위한 전달 인턴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응급실에는 새로운 인턴들을 겁주듯 기도 삽관을 해야 하는 중환자와 4미터 높이에서 작업하다 떨어진 환자 세명이 누워있었다. 서울 본원에서 근무하다 내려오니 보령병원은 종합병원임에도 이방인 의사에게는 아담해 보였다.
하루빨리 정을 붙이자 생각했다. 짐 정리를 하고 보령에서의 하루가 지난 다음 날이 되어서야 병원을 제대로 둘러볼 수 있었다. 새로운 환자들, 앞으로 두 달 동안 같이 일하게 될 간호사들과 인사를 하던 중 연락을 받았다.
노인 잔치를 하는 곳에 무료 진료소를 세워 봉사하기로 했는데 인턴 한 명이 동반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지역 병원 인턴들은 이런 일도 하나 싶었다.
비가 추적거리는 일요일 원무팀에서 한 명, 간호조무사 한 명, 약사 한명, 그리고 의사인 나. 이렇게 병원구급차에 몸을 싣고 논길을 달렸다. 도착한 곳은 근처 중학교로 지역 청년회에서 동네 어른들을 위한 잔치를 마련한 자리였다. 교문 입구에서 학생들이 어른들 품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청년회 조끼를 입은 건장한 청년들은 짐을 옮기고 음식을 준비했고 동네 어른들은 강당에서 청년회에서 마련한 공연을 기다렸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생경한 풍경에 시골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무료 진료소로 마련한 교실 한쪽에서 선생님들과 짐을 풀고 어른들을 기다렸다. 느긋하게 볼까 싶은 마음과는 달리 많은 어른들이 무료 진료소를 찾았고 3분 진료가 아닌 1분 진료로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대부분 허리나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퇴행성관절염 증상이 많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진통소염제와 파스를 경품 받듯 받으러 오신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간호조무사가 혈압과 혈당을 재어주면 수치를 보고 고혈압이나 당뇨가 있을 경우 병원에서 외래 치료는 받고 계신지 물어보았다. 필요한 경우 병원방문을 당부하는 일이 중요했다.
"할머니, 어디가 불편하세요?"
"아이구, 다 아프지.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손도 아프고 안 아픈 데가 없어."
"병원은 다니세요?"
"응. 저번에 허리 아파서 수술했는데 수술하고는 병원에 안 가."
"이런, 언제 수술하셨어요?"
"몰라. 기억도 안 나, 언제였는지. 그냥 약이나 좀 줘."
"할머니 그럼 제가 손가락만 잠시 볼 게요. 또 드시는 약은 없으세요?"
"고혈압 약 아침마다 한 알씩 먹어."
"네, 잘하셨어요. 꼬박꼬박 챙겨 드시고요. 제가 허리 안 아프게 하는 약 하나 드릴 테니 드셔 보시고요. 옆에서 파스랑 이런 거 저런 거 받아가세요."
무료 진료소라 준비된 약 종류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기본 약제 덕분에 큰 혼선은 없었다. 가끔 피부가 가렵거나 붉게 올라온 환자들에게는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하고 마른 기침이 멈추지 않는 환자에게는 기침 시럽 정도를 처방했다. 약 2시간 동안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프고 소화도 안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 100명 정도를 진료했다.
무료로 나줘주는 액상 소화제와 파스, 로션 등을 받으러 오셨기 때문일까. 그렇게 챙겨드리는 것만으로도 다들 고마워했다. 새파랗게 젊은 의사인데도 내 말을 경청해주신 게 감사했다.
진료 봉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청년회에서 준비한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른들을 보았다. 양손에는 약봉지와 김 선물세트, 수건이 한아름 들려있었다.
"선생님. 오늘 수고 많이 하셨네유. 서울에 있다 여기 와서 이런 것도 하고 낯설쥬?"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들으며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 보령 시내 구경을 했다. 구급차를 타고 도는 색다른 관광이었다.
"보령에서는 엘리트 코스가 있어유. 대천초등학교, 대천중학교 그리고 대천고등학교까지 나오면 보령에서 공부 좀 했다, 어디 가서 인정받을 수 있어유."
재수고 삼수고 대학 하나에 목숨 거는 청춘들을 떠올렸다. 나 혼자 세상의 모든 시련을 짊어진 것처럼 삐뚤어졌던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사회가 강요하는 욕심은 너무 큰 것이 아닐까. 서울에서 2시간 거리인 이곳은 이렇게나 느긋하고 여유로운데. 내가 자란 곳은 여전히 바쁘고 욕심을 강요한다.
동네 의사의 매력을 설파하던 선생님의 여유로운 얼굴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 언제 이런 시골에서 지내볼 기회가 있을까. 나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알지 못한 채 시골 길을 달려 병원으로 돌아왔다.
<21편에서 계속>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