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와 산부인과의사들의 충돌을 바라보며

강윤희 위원
발행날짜: 2021-12-06 05:45:50
  • 강윤희 전 식약처 심사위원

미프지미소라는 임신중절의약품의 허가를 둘러싸고 식약처와 산부인과의사들(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이 흥미진진한 충돌이 우리나라의 의약품/의료기기 허가에 의사들이 책임감있게 관여하는 좋은 선례가 되기를 바라며 지켜보고 있다.

처음 논란은 산부인과의사회가 식약처에 미프지미소 도입시 가교임상이 필요하다는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가교임상은 인종적 차이에 따른 안전성/유효성 차이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약식의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서양인을 대상으로 한 pharmacokinetic data가 있는 경우 한국인을 대상으로도 유사한 data 가 나온다는 것을 입증하면 되지만 이런 pharmacokinetic data가 없으면 임상시험 규모를 축소하더라도 제대로 된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 일본은 신약의 허가를 위해 가교임상이 아니라 제대로 된 자국내 임상시험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배경에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대의는 자국내 안전성/유효성을 허가 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교임상 요구는 과한 것이 아니며, 가교임상을 면제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의 자료를 통해 한국인에서도 안전하고 유효할 것이라는 확증적 근거가 충분해야 한다. 미페프리스톤의 안전성은 비교적 입증된 것으로 보이나 미소프로스톨과의 복합제 안전성은 아직 입증이 덜 된 것으로 추정되며 산부인과의사회는 이를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식약처의 어떤 발표에서도 가교임상 면제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들어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미페프리스톤, 미소프로스톨 각각이 한국인에서 안전할 것이라는 근거와 더불어 이 두가지 성분 사이 약물상호작용(drug drug interaction)이 없다는 근거가 있으면 되는데 이런 발표를 전혀 찾지 못했다. 심지어 가교임상면제에 대한 중앙약사심의위원회 결과를 다룬 기사들에서도 그런 과학적 근거를 찾지 못했다. 다만 참석자 다수가 가교임상 면제에 찬성했다는 내용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록을 찾아보았는데, 아니나다를까 9월2일에 진행한 회의의 회의록이 11월26일까지 올라오지도 않았다. 필자는 식약처의 이런 무책임한 행태에 분노한다.

필자가 식약처에서 일할 때 국내 제약회사가 개발 중인 항암제 임상시험 중 약물 투여 후 2개월 이내에 약물이상반응으로 4명이 사망하는 사례들을 검토하면서 비록 약물과의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다고 해도 임상시험의 안전성을 면밀하게 검토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잠시 중지(partial hold)하는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2개월은 말기암환자에게 주어진 여명보다도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약물과의 인과관계와 상관없이 약물 투여군에서 사망 환자가 증가하는 경우 임상시험을 잠시 중지하는 사례는 해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타그리소의 임상시험 중 심장 독성 모니터링 요청을 무시당한 바 있었던 필자는 이번에도 partial hold 요청을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돼 이번에도 거절하면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경고했다(타그리소의 심장독성이 아시아인에게 더 빈번하다는 결과는 이후에 확증됐다). 그러자 식약처는 필자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일요일에 졸속으로 개최하더니(회의에 참석했던 위원에게 확인하니 회의 자료도 회의에 참석해서 받았다고 함)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회의록도 올리지 않다가 필자가 1인 시위를 하면서 이 문제를 제기하자 그 때서야 회의록을 부랴부랴 올리는 행태를 보였다.

미국의 FDA는 생중계하는 회의를 왜 우리나라는 회의록조차 제 때 올리지 못하는가, 이는 규제 후진국임을 증명할 따름이다. 어쨌든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다수가 가교임상 면제에 찬성했고, 허가에 문제가 없어 보였던 이 건이 다시 이슈가 된 것은 국정감사에서 문제제기가 됐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과학적 근거보다 외부 압력에 의해 일하는 단체가 틀림없어 보인다.

결국 국정 감사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1월 24일 전문가 회의가 개최됐다. 그런데 산부인과의사회는 합법적인 낙태 범위 등을 명시한 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회의 30분만에 박차고 나가버림으로써 파행으로 치달았다고 한다. 필자도 그러하지만 비논리적인 논의를 견디지 못하는 것은 의사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아닌가 싶다.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미국도 FDA가 자문위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치매치료제 아두카누맙을 허가하자 이 약물의 허가를 반대했던 FDA 자문위원 3명이 사퇴해버렸다. 필자를 포함 의사들은 성격을 좀 고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향후 식약처가 어떤 행보를 취할지 사뭇 궁금하다. 과거 인보사 허가를 논의한 1차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도 이 치료제의 허가가 부적절함에도 회의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일부 의사들이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버렸다고 들었다. 그런데 식약처는 이 의사들은 제외하고, 의사들의 참여는 배제한체 2차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다시 열어 인보사를 허가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물론 필자는 무조건 산부인과의사회 편을 드는 것도 아니다. 과학적 근거를 원할 뿐이다. 그런데 식약처가 가교임상 검토를 한두번 해본 것도 아닌데 가교임상 면제를 머뭇거리는 것을 보면 면제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오히려 가교임상을 빨리 진행하고 이 기간 산부인과의사회가 요구하는 법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이도저도 결정을 못내리는 동안 회사만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게 생겼다.

※칼럼은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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