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기업일 뿐 오해하지 말자

발행날짜: 2022-04-04 09:10:00 수정: 2022-04-04 17:56:08
  • 의약학술팀 이인복 기자

최근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놨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15개 국가 의료기기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설문 조사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무려 150개 기업들이 참여한 이번 설문은 의료기기사들의 애로사항이 골자였다. 결국 기업을 이끌어 가는데 무엇이 제일 힘드냐는 질문에 대한 속 깊은 답변들이라는 의미다.

이번 보고서가 흥미로운 점은 15개 국가, 150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인데도 유독 우리나라만의 특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가마다 산업 생태계가 다른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4개 국가의 기업들과 우리나라 기업들간에는 선명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는 뜻.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명확한 차이를 보인 부분은 사실상 이번 조사의 핵심 중 하나였다. 사업하는데 제일 힘든 부분에 대한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14개 국가의 기업들은 하나 같이 제1순위 당면 과제로 자본과 차별성을 꼽았다.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시장에서 점유율을 키워나가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답변이다.

실제로 조사 결과를 보면 14개 국가 기업들은 39%가 시장 진입과 차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고 35%가 자본 마련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땠을까.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은 87%가 시장 진입과 차별화에 자신이 있다고 답했고 83%가 자본 마련에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투자를 받고 내수는 물론 세계 시장에 나갈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대체 이러한 기업들이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부분은 뭘까. 우리나라 기업들의 답변은 하나로 모아졌다. 바로 정부와 공공기관이다. 다시 말해 규제기관이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 각 정부 부처들이 앞다퉈 의료기기 산업 지원책을 내놓고 각 공공기관들과 지방자치단체들도 잇따라 지원책을 쏟아내는 시점에 우리나라 기업들은 왜 14개 국가들과 달리 이러한 고민들을 안고 있는 것일까.

최근 규제 기관 퇴직 공무원과 박사급 통계 전문가를 영입한 A기업의 사례를 보면 이들의 고민들을 절실하게 엿볼 수 있다. 이 기업이 이들을 영입한 가장 큰 이유가 정부 과제, 연구·용역 보고서 단 두가지 이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석에서 만난 이 기업 대표는 이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털어놓았다. 실제로 연구와 R&D를 진행하는 것보다 과제를 따기 위해 제안서를 쓰고 또 이에 맞춰 보고서를 쓰는 일에 더 시간을 쓰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국내 최고 권위의 의학 단체 대한의학회 임원인 B교수의 말도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그는 최근까지 모 정부 기관의 요청으로 의료기기 실증 및 검증사업을 맡았다가 지금은 손을 놓아 버린 상태다.

이유는 하나였다. 본인이 작성한 보고서가 세번이나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의료기기를 검증해 작성한 보고서가 퇴짜를 맞은 것보다 이를 되돌려보낸 정부 기관의 태도에 학을 떼고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그는 에둘러 전문가에 대한 존중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정리했다.

이러한 사례들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기업은 기업대로,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그들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 가운데 어느 바퀴 하나가 홀로 헛돌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 바퀴가 수조원대 자금을 들고 방향성을 정하는 앞바퀴라는 점에서 국내 의료기기 산업이 산으로 가고 있는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산업은 기업이 키운다. 이에 대한 검증은 전문가의 몫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기업이 만들고 국내 최고 석학이 검증한 보고서를 양식에 맞지 않는다고 돌려보낼 시간에 핸들을 잡은 책임감을 되돌아볼 일이다. 고성능 스포츠카일수록 잘못된 핸들 조작 한번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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