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시스템 구축, 지방부터 출발해야

강윤희 위원
발행날짜: 2022-08-31 05:00:00 수정: 2022-08-31 08:38:55
  • 강윤희 전 식약처 임상심사위원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의 뇌출혈 사망사건 이후로 필수의료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그럼 필수의료란 무엇일까? 보건복지부의 정의에 따르면 필수의료란 1) 생명에 직접적인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의료분야, 2) 지역적 특성 또는 시장수요의 부족으로 제대로 제공되기 어려운 분야, 3) 미래 전문인력인 전공의 충원율이 평균에 미달하는 과목 등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필수의료란 해당 의료가 부존재할 때 수시간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분야로 판단된다. 즉, 필수의료에는 시간의 개념이 들어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반일 생활권이 됐기 때문에 웬만한 진료는 지역을 뛰어 넘어 가능하고, 국민의 선택권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수시간내 처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선택권이란 없으며 근처에 필수의료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필자는 지역 의료서비스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지역 맘카페 글들을 종종 확인하는데, 코로나로 확진된 소아가 40도 이상의 고열이 발생했지만 주사 및 수액 처치가 가능한 병원을 알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내용이 있었고, 그 댓글에는 어느 병원은 수액을 놔주고, 어느 병원은 진료를 아예 안해주고 등등의 내용이 있었다. 이 댓글을 보면 어느 병원은 수액 처치가 가능한데, 즉 해당 지역에 필수의료가 부존재하는 것은 아닌데 이에 대한 정보가 지역주민들에게 제대로 공지되지 않으므로, 환자는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수진료란 단순히 인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며, 시스템의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데도 공공의대 증설 등 인력의 측면만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방향이고,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15년 뒤에나 배출되는 인력들은 오히려 해당 시점의 인구를 생각하면 과잉 인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소위 3D 과로 불리는 외과계열에 전공의 지원자가 없는 점에는 기형적인 수가 문제도 당연히 크지만, 우리나라에 잘못 도입된 의학전문대학원의 폐해도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의대교육에서 예과를 아예 없애고 본과를 6년 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의사를 아예 비인문학적 기계로 취급하는 사람들인가. 또 상급종합병원의 분원 만들기 경쟁 또한 지역의 필수의료시스템에 흩어질 수 있는 인력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매우 부정적이다. 그러므로 필수의료시스템 구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한두개가 아니고 본질적인 부분도 많기 때문에 우선 순위 결정을 위해서는 지방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해 지역의 의사회, 간호사회, 지역 종합병원 등등이 모여서 지역 내 필수의료 시스템을 점검해 문제점을 돌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해당 지역에 절대적으로 필수의료 인력이 없는 문제인지, 필수의료 인력이 있으나 정보와 소통의 문제인지, 해당 지역에는 없으나 근거리 지역 시스템과의 협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건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부분과 국가 시스템, 즉 중앙정부 차원에서 바꿔야 할 점들을 분류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지방에서 중앙으로 상향식 접근이 아니라 하향식 일방적 접근이 된다면 필자가 추정하기에 지방의 필수의료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과거 여러 차례 칼럼에서 언급했지만 코로나 초기 신천지 집단감염이 대구에서 발생했을 때 대구뿐만 아니라 국가적 위기였다. 그런데 이 위기를 놀랍게 극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대구에 의료인연합이라는 조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아는 한 대구에는 의사, 간호사 등등 보건의료인들의 연합조직이 있었고, 이 연합조직에서 그 당시 상당히 빠른 의사결정과 시행이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위기를 기적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아는 한 이런 보건의료인연합조직이 있는 지역이 거의 없다. 지역의 필수의료 시스템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보건의료인연합 조직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각 지역에 보건의료인 연합 조직이 생기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너무 협의와 협치가 안되고 있는데, 보건의료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분열된 조직에서 각자 자기 조직의 유익을 위한 발언들을 하고, 진정 국민들을 위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세금만 낭비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대가가 중요하다지만, 의미와 보람의 가치가 없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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